서민금융 ‘햇살론’ 고소득 자영업자에 허용 논란 금융과 경제이야기

공부해 보자!  이러한 자금을 활용하여 높은 금리의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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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민금융 ‘햇살론’ 고소득 자영업자에 허용 논란
박병률·이호준 기자 mypark@kyunghyang.com

입력 : 2013-02-01 06:00:01수정 : 2013-02-01 09:23:19

서민금융 ‘햇살론’ 고소득 자영업자에 허용 논란

ㆍ2월 한 달간… ‘저소득자 지원’ 취지 어긋나
ㆍ대출과정서 상환능력 심사 없애 부실 우려

정부가 2월 한 달간 고소득 자영업자에게도 서민 금융상품인 ‘햇살론’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출 한도는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확대했고,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고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한다는 햇살론 취지와 맞지 않는 데다, 대출된 자금도 ‘서민 지원’으로 분류돼 실적 부풀리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대출과정에서 상환 능력 심사를 생략해 햇살론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중소기업청의 ‘설 명절 전후 자영업자에 대한 햇살론 특별지원 시행’ 공문을 보면 중기청은 신용보증재단에 ‘저신용자 연간 소득 금액 제한요건(연 4000만원 이하)’을 생략해 햇살론을 대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소기업청이 신용보증재단에 보낸 공문.


햇살론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저신용 자영업자라도 연간 소득 4000만원 이하에 대해서만 대출할 수 있다. 국세청에 신고하는 연간 소득이 4000만원을 넘는 자영업자는 ‘영세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자산관리공사의 전환대출 상품인 바꿔드림론도 연간 소득 4000만원 이하인 사람으로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중기청은 또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상환 능력을 심사하지 말고 대출 계획서를 제출하면 3000만원 한도에서 전액을 지급하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상환 능력을 평가해 2000만원 이내에서 차등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특별지원은 ‘사업을 하고 싶은데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지원’이라는 서민금융의 당초 취지와 다른 것이다. 지역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대출기준을 이렇게까지 완화해준 적이 없다. 정권 말기에 선심이나 쓰자는 것 아니냐”며 “최소한의 심사도 하지 말고 대출을 해주라는 것이어서 연체율이 크게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햇살론은 신용보증재단이 95% 보증을 서고 저축은행, 농·수·신협, 새마을금고는 5%의 책임만 진다. 대출 금리가 연 10% 안팎이어서 이자를 한 번만 받아도 금융회사의 부담은 없다. 문제는 보증을 선 신용보증재단이다. 부실이 생기면 재단의 자금으로 부실을 막아야 하는데 연체율이 상승해 출연금이 소진되면 대출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정작 지원이 필요한 영세 자영업자는 햇살론을 이용할 수 없다. 지난해 말 현재 햇살론의 연체율은 9.9%로 4대 서민금융 상품 중 가장 높다.

은행권도 햇살론 기준 완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통상 연소득이 4000만원을 넘는 자영업자는 시장에서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며 “서민금융 체계를 건드릴 것이 아니라 다른 정책자금으로 설 지원을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햇살론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가 비슷한 서민금융 상품인 새희망홀씨대출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원과의 실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햇살론 대출 확대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햇살론은 6109억원이 대출돼 새희망홀씨대출(1조9897억원)의 절반에 그쳤다.

금융위 관계자는 “설 같은 대목에서는 (고소득) 자영업자라도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유동성이 부족할 수 있어 한시적으로 풀어준 것”이라며 “2월 한 달 동안 120억원 정도가 더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병률·이호준 기자 mypark@kyunghyang.com>

입력 : 2013-02-01 06:00:01수정 : 2013-02-01 09: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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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서민금융과 행복기금… 부실 땐 책임 안 져 ‘도덕적 해이’ 금융과 경제이야기

공부해 보자! 이러한 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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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292120235&code=920301


경향신문

<박병률·김지환·이호준 기자 mypark@kyunghyang.com>


입력 : 2013-01-29 21:20:23수정 : 2013-01-31 15:03:29



국민 돈으로 ‘퍼주기 대출’… 부실 땐 책임 안 져 ‘도덕적 해이’


ㆍ이명박 정부 ‘4대 서민금융’ 연체율 두자릿수 육박

이명박 정부의 ‘4대 서민금융’ 연체율이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 등 ‘퍼주기’에 따른 부실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자기부담이 적은 기관일수록 상품 연체율이 급등해 ‘기관의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말 정부는 서민금융 공급을 많이 했다며 연체율이 높은 자산관리공사(캠코), 미소금융중앙재단, 새마을금고중앙회 등에 대해 포상했다. 감사원은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자 최근 서민금융을 운영하는 주요 기관에 대한 감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 자체 자본 한푼도 없는 캠코
바꿔드림론 자격 요건 완화
대출 늘자 대통령 표창 받기도


29일 금융위원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캠코가 운영하는 바꿔드림론 연체율은 9.1%로 6개월 만에 2.0%포인트 뛰었다. 바꿔드림론의 재원은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 중 당초 은행이 받아갔어야 할 7000억원이다. 이 재원으로 신용회복기금을 설치하고 캠코가 운영하고 있다. 캠코 자체 자금은 한 푼도 없다.

캠코는 바꿔드림론의 자격요건을 완화하고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대출을 늘렸다. 바꿔드림론은 2009년 1431억원 나갔지만 지난해 대출액은 5배인 6727억원이었다. 캠코는 이 공로로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자격요건 완화는 연체율 급등으로 이어져 1년 만에 5.9%에서 9.1%로 치솟았다. 캠코 관계자는 “대출이 늘면 연체율도 당연히 느는 것”이라며 “서민 지원을 위해 만든 상품인 만큼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캠코가 연체율 급등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는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용회복기금이 고갈돼도 캠코 출자액이 없어 경영성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은행 돈을 가져다 대출하고 그 성과로 상을 받고도 부실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작 불똥이 튄 쪽은 국민행복기금이다. 당초 국민행복기금은 신용회복기금 8700억원과 캠코 출자금 7000억원 등으로 종잣돈을 마련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바꿔드림론 부실과 채무조정 운용과정에서 신용회복기금이 55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박근혜 당선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에서는 캠코가 3000억원을 더 출자해 1조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햇살론도 지난해 12월 말 연체율이 9.9%에 달해 두 자릿수를 목전에 뒀다. 햇살론 연체율은 1년 전 4.8%였지만 1년 새 2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햇살론 대출액은 26% 늘었다. 햇살론은 지역신용보증재단이 95% 보증을 선다.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농·수협 등 대출 금융회사는 5%만 책임을 진다. 사실상 금융사 부담이 거의 없는 셈이다. 햇살론의 정부 보증은 당초 80%였으나 상호금융권이 대출을 줄이자 정부가 담보비중을 높여줬다.

새마을금고는 취급 금융기관 중 햇살론을 가장 많이 대출한 공로로 지난해 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휴면예금과 시중은행 및 대기업 제조업체의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미소금융도 연체율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연체율은 5.7%로 1년 전보다 2.6%포인트 높아졌다. 연체율이 높아지자 지난해 대출량을 전년(3107억원)보다 줄인 2746억원으로 제한했다. 현장에서 대출심사를 깐깐하게 한 셈이다. 미소금융은 재원이 고갈되면 재단 자체가 해체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체율에 민감하다.

이들 서민금융과 달리 은행권 자체 재원으로 운영되는 새희망홀씨대출은 연체율을 2%대로 유지하고 있다. 신한·국민·우리·하나 등 시중은행 자금 100%가 투입된 새희망홀씨대출은 3조5211억원을 대출해 서민금융 중 가장 많은 대출을 해줬다. 그러면서도 연체율은 2.4%에 그치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새희망홀씨는 정부 보증이 없다 보니 아무래도 은행들이 신용조사와 대출심사를 더 성실하게 하는 측면이 있어 연체율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기 돈을 쓰는 금융회사는 자신들 책임이니까 직접 사업장에 가서 상환가능성을 살펴보는 등 꼼꼼하게 챙기는 것 아니겠느냐”며 “추가적인 재정투입이 힘든 시점에서 상품의 연체율이 급등하면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우려”라고 말했다.

<박병률·김지환·이호준 기자 mypark@kyunghyang.com>

입력 : 2013-01-29 21:20:23수정 : 2013-01-31 15:03:29


연비 착한데 17년 타야 본전? "뚜껑 열리네" 자동차


자동차를 사고자할 때 연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연비가 좋은 차를 사는데는 조금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단다. 일반차량에 비해 부품을 더 좋은 것으로 사용했다고 하면서....  가격이 비싼대신에 연비가 좋아 기름값을 절약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좋은 연비가 나오는 차를 사게 될 것이다. 단 연비가 높아 절약되는 이득이 비싼 차 값을 회수하는데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고 한다면 생각을 달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있어 스크랩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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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 착한데 17년 타야 본전? "뚜껑 열리네"

[하이브리드·에코플러스·디젤 연비 좋다는 車 손익 계산서]기름값이라도 아끼고 싶은데 연비 좋은車, 값은 비싸고…산다면 얼마나 타야 이득일까 모닝 에코플러스, 액센트 디젤 최소 4년 6개월은 타야 본전 쏘나타 하이브리드 6년 6개월… GM알페온 17년 타야 손해 안봐 경제적인 車, 정말 경제적입니까?

조선비즈|최원석 기자|입력2013.02.01 03:09|수정2013.02.01 08:02

최근 연비(燃費·연료소비효율) 높은 차에 대한
소비자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기존 차량에 연비 향상 기술을 더한 추가 모델을 내놓거나, 아예 연비에 초점을 맞춘 하이브리드나 디젤 차량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연비 향상기술이 들어간 차의 경우, 그만큼 비싼 부품을 더 많이 썼기 때문에 차값도 비쌌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연비가 높은 차를 사는 게 당장 연료비 면에서는 경제적이지만 일반 모델보다 더 비싼 값을 주고 사는 것이 결국 경제적으로 이익인지는 따져 봐야 한다.



차를 구입해 어떤 목적으로 얼마만큼 탈 것인지에 따라 경제성은 달라질 수 있다.

◇에코플러스 기능 장착 차량, 디젤 차량 5년 이상 탄다면 경제성 유리

경차인 기아자동차 모닝의 경우, 일반 모델보다 연비가 더 좋은 모닝 에코플러스 모델이 따로 판매된다. 차가 정지했을 때 자동으로 엔진을 껐다가 다시 출발할 때 자동으로 시동을 걸어주는 ISG(Idle Stop & Go) 기능, 그리고 일반 모델의 4단
자동변속기와 달리 CVT무단변속기)를 달아 일반 모델보다 연비가 6~7% 좋다. ISG는 신호대기 등으로 공회전이 많아지는 복잡한 시가지 구간에서 공회전을 줄여줌으로써 연료 소모를 막아준다. CVT는 톱니바퀴를 연결해 변속구간에 끊김이 있는 자동변속기와 달리, 엔진과 바퀴 사이를 무단(無段)으로 연결, 동력전달 효율이 자동변속기보다 약간 높다.

그러나 모닝 에코플러스 모델은 같은 등급(트림)의 일반 모델보다 52만원이 더 비싸다. 2011년 기준 국내 자가용 승용차 연간 평균 주행거리 1만3088㎞, 올해 1월 넷째주 국내 평균 휘발유 가격 1922원을 적용해 계산해 보면, 에코플러스 모델을 타면 연간 11만2000원의
기름값을 아낄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국내 평균 주행거리를 탄다고 가정했을 때, 모닝 에코플러스 모델을 사면 4.6년을 타야 일반 모델보다 많이 지불한 값을 회수할 수 있다.

가솔린과 디젤 모델의 차이는 어떨까. 국내에서는 디젤 가격이 휘발유보다 L당 200원 정도 싼 데다 연비도 디젤 모델이 동급의 가솔린 모델보다 좋기 때문에 당장 연료비 부담은 디젤 모델이 낮다. 그러나 차값은 디젤 모델이 훨씬 비싸다. 같은 방식으로 현대차 엑센트 가솔린과 디젤 모델을 계산해 봤다. 이때에도
엑센트 디젤을 샀을 경우, 4.6년을 타야 차값 차이만큼을 회수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이상 타겠다고 마음먹으면 경제성에선 디젤이 앞선다고 할 수 있지만 디젤값이 휘발유값보다 더 오를 수도 있고, 디젤 모델이 가솔린 모델보다 힘은 좋지만 소음·진동은 큰 경향이 있어 단순비교는 어렵다.

또 엔진의 연료분사 계통이 고장날 경우, 디젤엔진 수리비가 휘발유 엔진보다 최소 3~4배 비싼 것도 감안해야 한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더 지불한 차값을 회수하는 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계산됐다.
알페온은 17년이나 걸렸다. 다만, 동급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하이브리드 모델에만 일부 추가 옵션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어 100% 동일 사양의 비교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연비향상 모델의 구입 효과, 소비자 주행패턴 따라 달라

연비향상 모델 구입을 원할 경우에는 본인의 주행패턴을 잘 파악해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연간 주행거리 1만㎞ 이내의 소비자는 연료비를 아끼겠다는 목적으로 연비향상 모델을 살 필요는 별로 없다.

또 연간 주행거리가 1만5000㎞ 이상 되고 특히 시내주행이 많은 소비자라면, ISG 기술이 들어간 차량이나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입해 볼 만하다.

이들 차량은 특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에서 일반 차량보다 연료를 많이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행거리가 1만5000~2만㎞ 이상이고, 고속도로 주행을 많이 하는 소비자라면, 디젤차량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디젤차는 어떤 구간에서도 휘발유차보다 연비가 좋지만, 특히 시속 80~100㎞ 대로 정속주행할 때 연비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연비 향상 못하면 중소형차 시장까지 위험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앞으로 더 저렴하고 연비가 좋은 차를 내놓지 못할 경우, 수입차 업체에 중소형차 시장까지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자동변속기(CVT 포함) 휘발유차 기준으로, 공인연비 1등급(L당 16㎞ 이상)인 국산 경차나 중소형차가 단 한 차종도 없다. 디젤차까지 포함해도 엑센트·i30 디젤 단 2개 차종에 불과하다. 휘발유·디젤을 합쳐
연비 좋은 차1~10위는 전부 수입차가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차그룹부설 자동차산업연구소 박홍재 소장(부사장)은 "연비가 좋은 차를 내놓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국내 시장만을 위해 다양한 차를 생산·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은 구조"라면서 "수익성을 낼 만큼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수입차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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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다르더라


조선비즈 입력 : 2013.02.01 03:06

연비향상 기능 장착해도… 車가격 큰 차이 없어
한국, ISG등 연비향상 옵션 단독 선택하는 것 불가능
여러가지 옵션 묶어서 판매… 당연히 가격 높아질 수밖에
日, 8곳 회사 연비·가격경쟁 소비자들 합리적 구매 가능

국내 일부 연비향상 모델의 경우, 불필요한 옵션을 추가해 차값을 더 올려받는다는 비판도 있다. ISG 기능을 추가한 기아차K3 에코플러스 모델은 일반 모델보다 1년에 6만원가량의 기름값을 절약할 수 있지만, 차값은 113만원이나 비싸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ISG 기능에 더해서 버튼 시동 스마트키 등 다른 옵션을 대거 장착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정도 가격 상승 요인이 있다고 인정한다 해도 다른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 ISG만 추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ISG 기능을 넣은 현대차 i30 블루세이버(기아차의 에코 플러스와 같은 개념), 쏘나타 블루세이버 모델도 마찬가지 이유로 일반 모델보다 각각 120만원, 150만원이 더 비싸다.

일본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이다. 일본 경·소형차는 CVT(무단변속기)를 달았다고 해서 자동변속기 모델보다 차값을 더 받는 경우가 별로 없다. 물론 일본에는 CVT 적용 차량이 많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이뤘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는 있다.

일본은 승용차 제조회사만 8곳이나 되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이 값을 거의 올리지 않고 연비를 대폭 높인 차를 내놓으면 경쟁사도 연비를 높이거나 차값을 내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경·소형차 시장은 아직 2~3개 국내 업체의 독무대인 한국 시장과는 시장 환경이 전혀 다르다.

일본 닛산자동차의 소형차 ‘마치’. CVT(무단변속기)를 기본 장착하고 각종 연비향상 기술을 넣어 휘발유 1L로 17~18km(한국 신연비 기준)를 달릴 수 있다. 일본 현지 가격은 1200만~1400만원. /닛산 제공
일본의 대표적인 소형차인 닛산 마치(March·엔진 배기량 1.2L)는 전 모델에 CVT가 적용돼 있다. 마치의 기본형 가격은 103만엔(1200만원)으로 국내 소형차 가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한 수준이다. 기본형을 제외한 다른 모든 등급의 차량에 ISG 기능도 기본으로 제공된다. CVT와 ISG가 기본인 마치 주력모델 가격은 123만엔(1400만원)에 불과하다. 일본 공인연비인 JC08 모드 기준으로 휘발유 1L(리터)당 21.4~23㎞, 한국의 신연비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L당 17~18㎞를 달린다. 한국 완성차 업체의 경·소형차 가운데 1등급(L당 16㎞)인 차가 한 차종도 없는 것과 달리, 무난하게 1등급 기준을 충족한다.

도요타의 소형 하이브리드카 아쿠아는 국내 신연비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L당 24㎞ 정도를 달릴 수 있지만, 차값은 기본형의 경우 169만엔(2000만원)으로 일반 소비자들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아쿠아는 지난달에만 일본에서 2만여 대가 팔려, 일본 내 자동차 모델별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연비 좋은 디젤차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유럽 수입차 업체들도 영리한 판매전략으로 한국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디젤차가 동급의 가솔린 모델보다 비싸지만, 디젤차의 옵션 품목을 가솔린보다 낮추는 방법 등으로 디젤차값을 가솔린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다.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에 있는 자연재배농장 <너도나와같다면> 자연농업 유기농업

가까운 곳에서 자연재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조만간 찾아보고 공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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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배 농장 소개 | ▒ 자연농업 자료실
농욱 | 조회 196 | 2009/12/09 18:53:51

자연재배 농장 소개용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무척 개념적입니다만 그때는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에 있는 자연재배농장 <너도나와같다면>

 


4,000여평 밭에서는 기존의 관행농, 유기농법과 달리

- 밭을 갈지 않고 (무경운 無耕耘)

-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도 사용하지 않으며 (무비료 無肥料)

-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무농약 無農藥)

- 풀을 뽑지 않는 (무제초 無除草)

  즉, 농작물과 잡초, 벌레가 서로 공생하며 자연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생명 순환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 땅을 가는 것은 밭의 자연스러운 생명 순환을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기계로 땅을 갈지 않더라도 식물의 뿌리, 미생물 그리고 땅속의 작은 동물들의 활동으로 물리적, 화학적 땅갈이가 저절로 행해지게 되어 밭이 필요로 하는 배수성과 보수성은 날로 좋아지게 됩니다.

  둘째,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를 쓰지 않는 것도 역시 밭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위한 것입니다. 밭에서 나지 않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밭에 넣을 경우 밭의 자연스러운 생명 순환은 깨지게 됩니다. 작물이 필요로 하는 최적의 영양분은 밭이 스스로 만들어 갑니다. 조금이라도 더 수확하기 위하여 비료를 주는 얄팍한 인간의 마음이 밭 본연의 순환을 해쳐 약탈농업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셋째, 농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은, 자연은 항상 완전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병충해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비료나 퇴비, 미생물 등을 인위적으로 투여할 때 밭 본연의 순환이 깨져 작물은 병약해지고 병충해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풀을 뽑지 않는 것은 그들의 중대한 사명과 역할 때문입니다. 풀로 인하여 밭의 영원한 생명은 유지됩니다. 아니 지구전체의 생명도 그럴 것입니다. 작물에 있어 풀은 적절한 습도와 빛 가림, 때로는 온도까지도 유지해 작물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또한 풀은 많은 미생물과 벌레에게 먹이를 제공하여 작물에 끼칠 피해도 줄입니다. 풀을 뽑아내지 않습니다. 다만 작물이 풀에 의해 당하지 않도록 때때로 잘라줌으로써 작물과의 공생을 유지합니다.


  자연은 인간 이전에 이미 완전합니다. 풀밭 가운데에 작물이 성장할 자리를 마련하여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옮겨다 심고, 풀에 의해 당하지 않도록 때때로 풀을 제어하면서 밭의 자연스러운 생명의 순환에 의해 작물이 자라도록 도와주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여 재배하는 것입니다.


  지금 연천군 백석리 자연재배농장 <너도나와같다면>에서는 그 첫해의 농사를 지으면서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 길들여진 땅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기 위한 흙의 복원작업과 다양한 풀과 작물들 사이의 조화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다양하고 많은 양의 농작물을 생산하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앞으로 3~5년 후에는 땅의 원기를 살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위한 이치를 더욱 깨달아 사람을 살리고 삶을 진정으로 이롭게 하는 값진 먹거리가 우리 앞에 다가올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2006년 6월

농부 홍려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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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가능성 망치는 엄마의 잘못 5가지는? 두런두런 생각들

어린 자녀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기 위한 부모의 노력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아들과 딸이지만 그들이 결혼하여 낳게 되는 손자 손녀에 대한
교육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생각해 보고자 스크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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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edia.daum.net/life/newsview?newsId=20121226090108361&RIGHT_LIFE=R9

아이의 가능성 망치는 엄마의 잘못 5가지는?


헤럴드경제|입력2012.12.26 09:01|수정2012.12.26 13:38
 

 

[헤럴드경제=남민 기자]부모들은 궁금하다. 왜 어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고, 매번 만점을 받고 1등을 도맡아 할까? 나는 부모로서 내 아이가 갖고 있는 가능성을 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부모들의 궁금증을 단번에 해결해주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받고 있다.

한솔교육문화연구원이 서울, 일산, 분당에 거주하는 18개월 유아 400명과 엄마들을 대상으로 5년간 방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연구원은 아이들의 언어 발달 과정을 관찰하고 청각 기억, 작업 기억, 읽기 능력, 지능 등을 측정했다. 또 아이들이 각각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수집했다. 그렇게 해서 400명의 아이 중에서 42개월에 지능검사를 받은 아이가 300명, 그 중 지능 상위 8%에 속하는 30명을 추려 그 이유를 연구한 것이다.

연구 결과, 아이의 가능성을 망치는 엄마들은 아이들의 질문을 부담스러워했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와 아이의 행동에 대해 '제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반응해주지 않았다. 같이 놀아달라는 아이의 요구에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해줄게~'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아이들에게 천사표 엄마를 자처하면서도 놀이와 공부에 있어서는 절대로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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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특별한 아이를 키워낸 30명의 부모는 일찍부터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이를 알아보는 눈과 귀를 단련한 사람들이었다. 마치 준비된 강태공이 작은 입질에도 고기를 낚아 올리듯, 다른 이들이라면 무심코 지나칠 만한 작은 가능성도 놓치지 않았다.

아이가 책을 물고 빨면 책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고, 글자를 물어보면 한글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또 아이가 어리다고 '아직 아니야', '아직은 이르지' 하며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주면서 교육에 대한 준비는 일찍부터 시작하되, 실제 교육은 아이가 드러내는 배움의 욕구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그에 맞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솔교육문화연구원의 원장으로 재직하며 종단 연구를 주도한 장유경 박사는 이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평범한 아이들에게 숨겨진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지를 밝히는 책 '아이의 가능성'을 집필했다.

'아이의 가능성'은 유아 영재들과 그 부모들의 생생한 자녀교육법을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소위 영재라고 불리는 아이들에 대한 관찰보고서는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아이들의 숨겨진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엄마들의 이야기다. 유아 영재들에게서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공통된 특징을 비롯해 기억력을 높이는 놀이, 아이와 제대로 놀아주는 법, 효과적으로 벌주는 방법, 학습의 효과를 높이는 대화법, 방문 학습지를 고를 때 유의할 점, 영어 유치원을 고르는 요령 등 예비 부모 혹은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라면 꼭 알아두어야 할 여러 가지 노하우를 담았다.

장유경 박사는 한국의 부모들에게 말한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진심으로 믿고 아이에게 맞는 방법으로 꾸준히 실천하면 모든 아이들이 영재 못지않은 특별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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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복주산자연휴양림: 도심 가까운 곳에서 남몰래 즐기는 망중한 건강과 취미

귀농희망지역중의 한 곳인 철원지역에 대한 글이 있어 스크랩하였다. 좋은 정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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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휴양림ㅣ철원 복주산자연휴양림]
도심 가까운 곳에서 남몰래 즐기는 망중한

http://media.daum.net/life/outdoor/leisure/newsview?newsId=20121214171611719

월간마운틴
|글 곽정혜 기자 사진 편집부|입력2012.12.14 17:16|수정2012.12.14 17:17

http://durl.me/43unj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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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의 복주산(1157m)은 주발을 의미하는 '복주께'에서 이름은 따온 것으로 그 이름에 관한 유래가 독특하다. 먼 옛날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켜 온 천지가 물에 잠겼는데 이 산의 끝머리 봉우리만 물 위에 주발만큼 남았다는 것. 복주산 자연휴양림은 이처럼 하늘의 복스러운 기운을 가득 담고 있는 복주산을 중심으로 용탕골의 맑은 계곡과 천연림이 조화를 이룬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휴양림 전체면적에 비해 숙박시설이 적은 편이라 주말에도 사람들로 인한 번잡스러움이 없다. 순수하게 휴식만을 취하러 온 목적이라면 한가롭고 조용하게 쉴 수 있다. 무엇보다 거리가 가깝다는 큰 장점이 있는데, 수도권에서 약 2시간, 춘천・포천 등지에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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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림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숲 해설가 2명이 교대로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1시에 무료 숲 해설을 실시하며, 생태관리인들은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5시까지 관리사무소 옆 공터에서 간벌과 가지치기로 버려진 동백나무를 이용한 나무곤충 만들기 프로그램 진행한다. 또 휴양관 앞 벤치의 독서대에는 각종 잡지와 도서들을 비치해 누구나 이용하도록 했다.

휴양림 주변에는 숲길을 따라 탐방로가 나 있지만, 휴양림에서 복주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아직 정비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복주산을 오르려면 하오터널을 지나 도로변에 나 있는 등산로를 이용해야 한다. 이 등산로는 약 1.2km로 1~2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는 북녘의 산야가 바로 펼쳐 보이고 대성산, 백적산, 화학산, 백운산 등의 근방의 산과 잠곡리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산은 하오터널로 다시 되돌아오거나, 화천 방향인 실내고개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복주산에서 복계산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도 인기 있다. ⓜ

◎ information

시설

2003년 6월에 개장한 복주산 자연휴양림은 77.1ha의 드넓은 면적에 1일 최대 3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지만, 전체 면적에 비해 숙박시설이나 놀이시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숙박시설로는 8인용 숲속의 집 3동과 콘도형식으로 된 4인용 산림문화휴양관의 10실, 수련관에 5인실 2개와 15인실 1개 그리고 식당 및 회의실이 있다. 숙소에는 취사도구와 침구류가 구비되어 있고 화재방지를 위해 가스레인지 대신 전기레인지가 있다. 세면도구와 휴지 등의 소모품은 따로 준비해야 한다. 숙박시설 이용시간은 오후 3시부터 다음날 12시까지. 휴양림의 입장권은 성인 기준 1인 1천원이며, 주차료는 경형 1천5백원 중형 3천원 대형 5천원이다. 시설 이용 시 숙박요금은 주중요금 기준 2만1천원(3인실)~9만원(12인실)이며, 주말과 성수기에는 약 두 배 가까이 할증된다. 숙박 시 입장료와 주차료 면제. 복주산 자연휴양림에는 야영시설은 없다. 기타 시설로는 온 가족이 함께 놀기에도 안전한 물놀이장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평상(수변데크)이 있다.

033-458-9426,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하오재로 818

교통

자가용 이용 시 서울에서 구리를 지나 퇴계원~진접~일동~이동~김화로 이어지는 47번 국도를 이용한다. 이동면을 지나 24km쯤 가면 자등리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회전해 56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잠곡3리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300m간 다음 다시 좌회전, 다리를 건너 3.3km 들어가면 복주산 자연휴양림 표지판이 보인다.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와수리행 버스를 타서 종점에 내린 후, 하루에 4번 운행하는 방화동행 시내버스를 갈아탄다. 방화동에서 휴양림까지는 도보로 5분. 짐이 많을 경우 휴양림에 전화하면 픽업을 해주기도 한다.

주변 볼거리

매월대

매월대는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의 복계산(1075m) 기슭에 우뚝 솟은 높이 40m의 절벽바위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비분해 관직을 버리고 은거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매월대 일원에는 울창한 숲과 깊고 맑은 계곡이 펼쳐지는데, 특히 매월대 맞은편 산기슭에서 쏟아져 내리는 선암폭포가 절경이다. 선암폭포는 높이 10m위 기암절벽을 타고 장쾌하게 내리꽂히는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철원 안보관광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접전지였던 철원군에는 제2땅굴, 월정리역, 아이스크림고지 등 분단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철원군에서는 하루에 4차례 안보관광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철원평화전망대에 오르면 비무장지대, 평강고원, 북한선전마을이 보인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이스크림고지(삽슬봉)와 동송저수지가 보인다. 그 외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월정리역과 뼈대만 남은 북한 노동당 당사 건물도 한번쯤 둘러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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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만원 갤럭시S3' 6만원 요금제의 비밀 '충격' IT와 컴퓨터,전자상식

과소비를 부추키는 한국의 통신정책

과소비를 부추키는 한국의 통신정책에 대하여 나온 기사인데 정말 대단한 마케팅인 것 같다. 
당하지 않으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싸게 파나

약정에 따른 통신료 할인을 단말기값 할인으로 포장해 매달 1만원 넘게 더 받는 셈

소비자 선택권이 없다

평균 데이터 사용 1GB인데 1GB 넘는 요금제 무제한뿐 … 결국 비싼 약정 선택해야

중앙일보|김창우|입력2012.11.06 01:29|수정2012.11.06 06:42

 

정보기술(IT) 업체에 근무하는 이형주(44)씨는 올 9월갤럭시3가 17만원'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회사 근처 이동통신 대리점을 찾았다. 판매원은 "당연히 그 가격으로 드린다"며 "24개월 약정으로 6만2000원 요금제를 쓰면 단말기 값으로 월 7000원씩만 추가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제대로 스마트폰을 산 것일까? 아니다. 약정할인을 단말기 값으로 내고 있기 때문이다.

6만2000원 요금제로 24개월 약정을 하면 통신사는 월 1만6000원의 요금을 할인해준다. 결국 이씨는 38만4000원(1만6000원×24개월)과 17만원을 합쳐 단말기 값으로 55만4000원을 내는 셈이다. 출고가인 99만원보다는 싸지만 원하는 만큼 저렴한 것은 아니다. 이씨가 제대로 샀다면 매월 통신요금 4만6000원과 단말기 할부금 7000원 등 5만3000원(세금은 별도)만 내면 되는데 6만9000원을 부담하게 됐다.

 이처럼 고가 단말기와 함께 통신 과소비를 부추기는 요인은 약정과 결합한 정액요금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3000만 명의 91.7%는 정액요금제를 이용한다. 이들은 대부분 약정할인을 받게 된다. 취재팀이 서울 강남역·용산 등의 판매점 10여 곳을 둘러본 결과 대부분의 판매원이 90만원짜리 단말기를 꺼내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 "LTE62요금제 쓰시면 38만원, LTE72요금제는 43만원 할인해 드리니 단말기 값 절반만 내시면 된다"는 식으로 영업을 했다. 일부 판매원은 보급형 단말기를 보여주며 "정액요금제만 쓰면 단말기는 공짜"라고 권하기도 했다. 비싼 단말기를 구입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을 줄이는 효과다.

 약정할인은 요금 인상을 숨기는 '커튼 효과'도 있다. 이통 3사의 LTE 정액요금제는 3G와 요금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3G용 5만4000원 요금제는 음성통화 300분을 주는 반면, LTE용 5만2000원 요금제는 250분으로 줄였다. 약정할인을 적용하면 더 차이가 난다. 3G 요금제를 쓸 때보다 LTE에 적용하는 할인폭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음성통화 1분당 요금으로 나눠보니 3G에서는 1분에 121원, LTE에서는 154원으로 27%나 올랐다. 약정할인금을 줄이는 식으로 LTE 요금이 비싸지 않은 것처럼 소비자를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통신업계 관계자는 "수조원의 투자가 이뤄진 LTE는 기존 3G와 전혀 다른 서비스"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요금이 올랐다고 느낄 수 있지만, 퀄리티가 다른데 같은 요금을 적용하라면 통신사 입장에선 억울하다"고 말했다.

 정액요금제는 구성에도 거품이 끼어 있다. 음성과 데이터 양을 통신사 편의대로 묶어놓은 것이라 필요 이상의 요금을 내게 된다. SK텔레콤 가입자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은 3G에서 1.09기가바이트(GB), LTE에서 1.75GB다. 애니팡 게임을 하루 1시간(월 163MB) 즐기고 짧은 동영상을 보고, e-메일·웹검색·카카오톡을 사용하면 이 정도를 쓰게 된다. 그런데 이통 3사의 3G요금제에는 1GB 요금제가 없어 무제한요금제를 써야 한다. LTE는 요금제에 따라 음성과 데이터 양을 '180분에 1.1GB' '350분에 5GB' '600분에 13GB' 같은 식으로 조합했다. 음성통화나 데이터 중 어느 한쪽만 많이 쓰는 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상위 요금제를 골라야 한다.

 올 7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김희정(새누리당) 의원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매월 115분의 음성통화와 201건의 문자메시지가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월 쓰지도 않은 요금 1만6000원을 내는 셈이다. 이통 3사에는 '맞춤형 요금제'도 있다. 음성·문자·데이터를 각각 분리해 고르는 방식이다. 하지만 데이터 최대 제공량은 2GB로 제한해 놓아 이보다 더 쓰려면 1GB에 5만2000원을 내야 한다. SKT의 경우 월 1GB에 1만5000원, 2GB에 1만9000원을 내는 별도의 데이터 정액제도 있다. 그런데 선불폰과 LTE 단말기에서는 가입할 수 없다.

 이같이 비싼 정액요금제를 선택하게 한 뒤 할인해주는 방식에서 또 하나의 제약이 생겼다. SKT가 이번 달부터 위약금3'를 도입한 것이다. KT도 다음 달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약정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해지할 경우 그동안 받은 약정 할인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내놓아야 하는 제도다. SKT 관계자는 "버라이즌 같은 해외 통신사도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 통신사의 위약금은 이제껏 받은 할인을 '토해 내는' 식이 아니라 사용기간이 늘수록 부담이 줄어든다. 버라이즌은 2년 약정 시 요금 종류와 관계없이 스마트폰은 350달러, 피처폰은 175달러의 해지 위약금을 책정한다. 1개월 사용할 때마다 여기서 10달러씩 차감돼 쓸수록 위약금이 줄어든다. LTE 스마트폰을 월 10만원 요금제로 2년 약정 가입해 23개월간 사용하고 해지할 경우 무는 위약금은 국내 이통사에서는 21만원, 버라이즌에서는 10만원이다.

◆위약금3

=약정 기간을 채우지 않고 해지할 경우 할인받은 금액의 37~100%를 반환하는 제도. 24개월 약정 가입자가 12개월 사용하고 해지할 경우 그때까지 적용받은 할인금액의 80%를 내야 하고, 20개월 사용해도 52%를 내야 한다. 원래 위약금은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폰 단말기에 붙이는 제도였다. 수십만원의 위약금을 책정하고 매월 일정액을 차감하는 방식이어서 중간에 해지할 경우 남은 위약금만 내면 된다. 하지만 가입자들이 할부원금이 낮은 단말기를 몇 달만 쓰고 해지하는 경우가 생기자 이통사들은 지난해부터 위약금2라는 명칭으로 스마트폰에도 5만~10만원의 위약금을 붙였다. 이번에 도입한 위약금3는 쓸수록 늘어난다는 점에서 기존 위약금과 다르다.

김창우.정선언.심서현 기자kcwsssk@joongang.co.kr

송광일박사 자연재배농장 견학 후기 자연농업 유기농업

자연재배에 관한 글을 읽고 궁금해하는 것을 잘 정리해준 블러그의 들이 있어 스크랩한다.
정리하고 의견을 주신 농욱님에게 감사한다. 너무 좋은 자료로서 자연농업을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원문 : http://cafe.daum.net/gookiksu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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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일박사 자연재배농장 견학 후기

농욱 | 조회 573 |추천 0 |2010.10.03. 11:32   http://cafe.daum.net/gookiksuho/JXsm/223

귀농 1년차... 농사가 참 어렵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뭣도 모르고 덤벼든 농사가 처음엔 해볼만한 만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만,

파보면 파 볼수록... 간단치가 않고, 그 끝이 어데인지 모를만큼 깊이가 한이 없습니다.

수 많은 농법들은 이 첨단 과학사회에 여러 분야를 다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광대무변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머릿속이 정리되기 까지... 손발이 잘 움직이질 않습니다.

내년 농사도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아직 정리된 것이 미흡하다 보니 공부할것만 많아 져서요.

이 글은 짧지만 그동안의 제 고민과 사색을 응축시켜서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 농장견학을 계기로 느낀점을 솔직담백히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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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대체 무엇을 자연재배라 할 것인가?

신비한 밭에서서의 주인공인 가와구치 요시카즈, 기적의 사과 주인공 기무라씨, 현대판 노자 후쿠오카 마사노부... 자연농에 입문하시는 다른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이분들의 영향으로 농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출발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태평농법의 이영문씨, 호밀농법 이동춘씨, 기타 자연농을 하시는 여러 선배님들을 찾아뵈며 귀동냥과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자연농이란 것이... 그 경계와 원리적 이치가 잡힐듯 말듯 머릿속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더군요.

도대체 자연농이 뭐람? 이렇게 질문해 보죠.

특히 유기농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비교해 보는것이 쉬울것 같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것이... 무투입과 무경운일것 같습니다.

무농약(살충과 살균의 문제)을 넣을 수는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 이건 할수도 있고 안할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고... 건강한 식물을 재배한다는 입장에서는 지엽적인 문제입니다. 요즘 무해한 친환경적 약재들이 많습니다. 작물에 있어서 완전하게 병이 없고 벌레도 없는 환경은 이 지구에서 불가능하니까요.


자연농에서는 무경운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풀을 웬수같이 여기지 않고... 오히려 고마운 정도를 지나서 존중해야 할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왜그런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생태환경의 복원 때문이죠. 이글 아래에 토양과 근권미생물에 관한 도서들을 소개해 놨습니다만... 관행농법(유기농 포함)에서는 특히나 이 미생물들을 중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식물들이 생명활동을 해 나아가는데 미생물들과 공생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더군요. 즉, 콩과식물에서 보듯이... 콩은 자신이 필요한 양분을 뿌리혹박테리아를 통해 얻고, 대신 박테리아가 필요한 먹이를 자신이 생산(합성)한 탄수화물/유기산 등을 제공함으로서 서로 함께 삶을 영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똑같은 방법으로 대장에서 소화작용을 미생물들을 통해 하고 있는 중입니다. 수십억년을 통해 발전시켜온 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조화와 균형을 통해 적절히 작물을 키워내는 것이 농사이더군요. 그러니... 앎이란것을 취득해 나아가는 공부란 것이...얼마나 끝도 없는 행위란 말입니까? 이것을 간략하게 하는 방법이 자연이치를 잘 따르는 것이겠죠.

횡설수설 하지말고... 좀 요약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공부해 온 바로는... 일본판 자연농과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가 좀 차이가 납니다. 그점을 중점적으로 다뤄 보겠습니다.

*일본판 자연재배(특징요약)

무경운/무투입/잡초와 작물의 공생 강조

자연환경과 유사한 환경구축에 목표를 둠. 지상 식물군의 다양성 중시. 땅속 미생물/각종 벌레들의 역할 중시

하지만 아직도 시도되고 있는... 완성되지 못한 농법의 하나로 여겨짐. 특히 작물과 잡초들간의 경합으로 벌어지는 영양쟁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 대단위 경작지로의 농사가 어려움. 문학적으로는 원리가 정립되었으나... 과학적으로는 원리정립이 아직 미흡함. 여타 국내 자연재배 농법들은 이의 아류들로 생각됨.

이에반해 호밀농법은 이러한 일본의 자연재배 농법을 한단계 더 발전시킨 획기적 성과로 평가됨. 특히 호밀을 이용한 잡초의 타감작용은 대규모 농사에도 적용이 가능한 획기적 방안이 될것임.

수도작의 경우... 태평농법도 일본의 방법을 한단계 끌어올린 좋은 방법으로 사료됨.


*송광일 자연재배의 특징

송광일박사의 농장을 견학한 후 제게 큰 인식의 전환이 발생했습니다. 상기한 일본발 자연재배도 유기농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이죠. 사실 유기농과 자연농의 경계가 매우 애매합니다. 무경운 한다고 다 자연재배로 봐야 하는지... 경운한다고 자연재배가 아닌건지.... 송광일박사의 농법에 비유하면... 이게 다 자잘한 말싸움에 그치고 맙니다. 글이 길어지니 요약해 보죠.

송광일박사의 주장과 농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작물을 고전압 생물로 변환시킨다.

이건 송박사 고유의 주장인데... 생명공학을 전공하여서 이 분야에도 매우 정통해 계시더군요. 농사를 과학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식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또 땅을 면밀히 이해해야 하는데... 식물을 알기 위해서는 생명공학이 필수이고, 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히 미생물 분야에 정통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송박사가 노력한 부분이 이 미생물 분야와 식물의 생리 역학 부분이다고 생각이 듭니다. 세포의 핵/미토콘드리아와 각종 효소의 역할/유전정보/미생물 등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 보입니다.

이분의 논문제목이 아래와 같습니다. 단서를 찾는 분들은 논문을 열람해 보시면 대충 아실것입니다. 생명공학과 농업을 연결하고.. 그것을 실제 농사에서 구현하고 있더군요.

Bacillus firmus SINBI의 분리동정 및 그 대사산물이 상추의 Anthocyanin 항산화활성과 페놀함량에 미치는 영향 : 미생물을이용한 안토시아닌발현, 송광일

제가 본 이분의 노하우를 통해서 이야기를 더 진행해 볼까요?


상기 사진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송박사가 육묘를 하는 모습입니다. 망친 육묘가 아니라... 이것에 비밀이 있습니다. 이분 말씀에 의하면...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유전정보의 5%만을 사용한답니다. 저도 얼핏 들은 기억이 납니다만... 95%의 유전자료들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 중이고... 이게 쓸데없는 쓰레기들이 아니라... 비상시 사용되는 특별한 정보/능력들 이라는 거죠. 좀 더 풀어보죠. 생명체들은 <효율>과 <생존>을 염두에 두고 생명활동을 한다 합니다. 생존에 문제가 없을 경우... 효율을 따지기 때문에... 생명체들은 본능적으로 달고(탄수화물) 고소하고(고지방) 부드러운것을 좋아합니다. 소화하기 어렵고 열량이 낮은것은 비효울적이기 때문에 우선 피하죠. 이것이 유전정보 중 활성화되어 있는 5%의 능력 영역입니다. 그러나 먹고살기 힘든 극한상황이 도래하면... 잠자고 있는 유전정보의 95%가 발현됩니다. 이 유전정보들은 생명체의 능력을 바꿀 정도로 강력합니다. 심지어 물없이 살수있는 식물로도 변신이 가능합니다. 송박사는 이점을 집중적으로 시험해 왔더군요. 흙도 없고 물도 없는 상태까지 생존하는 식물(작물)들을 직접 시현해 본거죠.


위의 사진들처럼 육묘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육묘단계에서 생존환경을 매우 어렵게 만들어 놓음으로서 5% 유전정보영역을 넘어 잠재된 95%의 영역으로 식물 자체를 바꾸도록 육묘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변화/적응된 식물들을 무경운으로 오래된 밭에 옮겨 심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비로소 비료나 퇴비등을 무투입해도... 물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강한 고전압 상태로변화시킨 무지막지한 능력으로 생명활동을 해 나아갑니다. 당연히 병이나 벌레들에 강할 수 밖에 없으므로 농약줄일도, 물줄일도, 거름줄일도 없고... 육묘단계보다 훨씬 좋은 여건의 밭에서 엄청난 생장과 소출을 해내는 것입니다.

(지금가지의 자연농법이 유기농과 원리적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바로 이분이 아닌가 합니다. 즉, 유기물이 없이는 작물의 성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무투입이라고 하나 식물의 능력이 바뀌지 않고서는 무투입은 힘듭니다. 전작물을 아무리 많이 깔아줘도 부족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대안 중 하나가 이 방법이고 두번째가 PGPR의 이용인것 같습니다.)

송박사의 농법에서 노하우 하나는... 95%의 잠재된 능력을 깨우는 것이 그 첫째 노하우입니다.


2)근권미생물들의 환경복원이 매우 중요하다.

송광일 박사의 두번째 노하우 입니다.

자! 재배할 식물 자체를 육묘 단계에서 초능력적(?)으로 변화시켜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식물이 성장할 본밭에 정식을 해서 성장을 시켜야 할 단계입니다. 성장에는 영양성장과 생식성장 두 단계가 있습니다. 영양성장은 골고루 양분을 훕수해서 무럭무럭 잘 크는 것이고... 괴채류나 근채류의 경우 농부에게 소득을 가져다 줄 최종적 목표인 열매를 잘 맺는 소출과 상품성은 생식성장에 있습니다.


<송광일 박사 자연재배농장의 파프리카. 자가채종한 파프리카 임에도 마디가 짧고 많은 양의 파프리카가 건강하게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맨땅에서 파프리카를 농약없이, 영양제 없이 저렇게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이 두번째 단계에서 송박사는 생육촉진근권세균(Plant Growth Promoting Rhizobacteria : PGPR)를 강조합니다.

무경운을 해야하는 중요한 점도 이 미생물군, 특히 PGPR의 형성을 들더군요. 자연적으로 이것이 회복도려면... 10여년을 기다려야 한답니다. 기무라씨의 기적의 사과도 그래서 10년이 걸렸나 봅니다. 만약 잘 선별된 PGPR이 있다면... 첫해부터 자연농이 잘 된답니다. 물론, 송박사는 이걸 해결했다는 군요. 비법은 아직 공개를 하지 않구요. 이 내용은 상기한 논문을 보시면 나옵니다.


3)시그널들을 이용한다.

이제 세번째 송박사의 노하우인데요....

PGPR을 이용해서 생식성장과 영양성장을 잘 한다 하더라도...

더 진보된 농법이 있다면... 마치 신과도 같이 작물의 모든 능력을 다 발현시키는 것일 겁니다.

(물론 이것이 자연철학 적으로 온전한 것이냐의 철학적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농사란 것이... 이치를 인위적으로 이용하는거 아닙니까? 이치를 거스른다면 문제겠지만... 마치 유전정보를 조작하는 GMO 말입니다.)

이 결정적 농사 노하우가 송박사의 '시그널농법'입니다.

봄에 가을배추와 같은 상품을 만들어 낸다든지... 매 입사귀마다 열매을 주렁주렁 맺게 한다든지... 기적같은 일이 이 시그널에 있습니다. 이것 역시 상기 논문에 살짝 내비치고 있지만... 한여름에 가을 상추처럼 안토시안이 풍부한 상추가 재배됩니다.


<사진설명 : 송박사 논문에 게재된 사진입니다. 촬영날자가 2009.7.2 한여름의 상추사진인데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가을상추처럼 색이 불게 착색되어 있습니다. 관행재배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2. 출구가 보인다


송박사 농장을 방문하며 제일 궁금한 부분이 바로 이 '시그널'의 정체 였습니다.

다행히도 이 시그널의 정체를... 방문한 우리 모두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송박사께서 작은 약병에 담겨진 어떤 액체를 보여 주었거든요. 물론, 그 물질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베일이지만... 이 정도 만이라도 힌트를 주신 송박사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현재 이것 저것 큰 구상과 큰 프로젝트를 진행중인지라... 아직 공개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감이 잡힙니다. 이정도 말슴드려도 이 글을 대하는 분들도 대충 감이 오시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저도... 그것이 송박사가 말하는 '시그널'의 정체의 전모인지, 또 진짜로 송박사의 말대로 잘 되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적의 사과 기무라씨가 이 농장을 방문하고 돌아간 것으로 보아... 또 실제로 믿기 어려운 작물들이 이곳에서 재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분이 기존 농사방법을 획기적으로 넘어선것 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만약 이것이 세상에 보급될 경우를 상상해 보죠.

농사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새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 많은 이론들이 새로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인류의 고질적 질병들이 대부분 해결되는 의료혁명이 일어 납니다.(이 부분은 아직 말씀 못드립니다.) 병든 지구의 자연생태계의 획기적인 변화가 옵니다.
 농약회사들이 망합니다. 비료회사 다 망합니다.

가장 즐거운 일은.... 인간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잡초들을 웬수로 보는 일...

벌레들을 해충과 익충으로 마음대로 구분하는 일...


공생과 상생을 하고있는 각종 미생물들도 유익균과 유해균으로 재단해서 주홍글씨를 마구 붙여 대는 일....

이런 모순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런 흐믓한 상상을 하며...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매우 흡족했습니다. 저도 어서빨리 시도하고 성공하여 모든 농부들이 자연재배를 도입할 때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되잡아 봅니다. 갈길은 멀지만... 큰 희망을 보고 옵니다.



여명12 10.10.03. 19:06
역시!!농욱님이시군요, 감사합니다. 정리를 너무나 잘해주셨네요.
뉴트리노 10.10.03. 19:07
농욱님 글 잘 봤습니다. 추석 이후에 자연재배 농장 방문일정을 공개한다고 해서 눈 꼽아 지둘렸는데 버스가 지나갔군요. 현장에 가보고 싶었는뎅...
뉴트리노 10.10.03. 19:14
송광일 박사님의 자연재배 농법 동영상을 보면서 농법에 획기적인 사변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는 과학적인 근거제시를 통해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지구가 변화함에 따라 식물이 적응해 오면서 살아 남아왔고, 이러한 생존의 비밀을 DNA에 축적시켜왔던 것을 다시 활성화 시켜내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뉴트리노 10.10.03. 21:40
금세기에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①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②북에서 개발한 열핵융합기술(또는 남의 K-STAR 핵융합장치), ③송광일 박사의 자연농법(초자연 농법)은 획기적인 것입니다. 이 세가지 기술들은 지구 문명사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최고 경지의 기술들로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뉴트리노 10.10.03. 19:18
송박사님이 말씀하시는 신호(Signal)농법에서 신호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기물(비료), 수분(물), 습도, 온도, 햇볕, ... 등으로 생각할 수 있고, 이중에서 제어 가능한 것은 유기물(비료), 수분, 온도, 햇볕이라고 봤습니다.
뉴트리노 10.10.03. 19:08
봄에 봄배추를 가을배추로 키울 수 있다는 신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서 물(수분), 햇볕, 온도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식물이 적응해온 낮과 밤, 춘하추동에 의해서 빛의 세기, 온도가 변하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데 물과 햇볕의 조절은 제어가 비교적 용이하나 온도의 조절은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농법에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송광일 박사님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뭔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뉴트리노 10.10.03. 19:38
송광일박사의 자연재배농법 동영상에도 근권미생물(PGPR)를 강조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제어신호가 바로 PGPR에 있었군요. 낮과 밤, 춘하추동이 변함에 따라서 땅속에 사는 미생물들도 다른 종류가 활성화될 것이고, 계절에 따라 미생물과 식물사이에 어떤 물질을 주고 받으면서 공생관계를 이루고, 그 영향에 따라서 식물이 광합성으로 생성한 유기물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구조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농욱 10.10.03. 22:46
뉴트리노님/ 안녕하시죠? 주곡리에 방문의사가 있으시다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현재 한옥신축 공사와 이런 저린 일들이 겹쳐서... 손님받을 상황이 못됩니다. 아무래도 다음달 까지 5,000평 콩수확과 한옥건축에 온 신경을 써야 할것 같아요.
농욱 10.10.03. 22:50
그리고 송박사가 말슴하시는 시그널이 꼭 PGPR을 말하는건 아닙니다. 사실 저도 장담할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이 부분에서 송박사가 설명을 회피하고 있기 대문인데.. 이번 방문시 주신 말씀으로 볼때, PGPR은 시그널과는 연관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저희에게 전혀 다른 액상물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이 시그널을 주는 물질로 보여집니다. 거의 맞을겁니다. 그런데 이 물질이... 상처에 바르면 몇시간에 피부가 정상으로 돌아올 정도로 치유도 한다네요. 대머리도... 얼굴 주름도 없어지는 임상사진들을 직접 보고 왔습니다. 무슨 물질인지는 공개하질 않더군요.
뉴트리노 10.10.04. 06:16
식물의 생장촉진과 생장억제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식물생장 조절제(植物生長調節劑, Plant Growth Regulator)>의 한 종류인지도 모르겠네요. 영양생장과 생식생장을 조절하는 방법일 수도...
아니, 세포의 자연치유능력을 촉진하는 기능이있다? .... 감이 안잡히네요.
혜윰 10.10.03. 23:53
95%의 잠재된 능력을 깨우는 것이라...극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발현될 필요가 없는 유전정보?...
참...대단한 연구이군요. 농욱님 글을 읽다보니 비단 식물계뿐 아니라 사람들 역시 아주 극적인 상황에서 초능력이 발현된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데요..글에서 언급한 설명처럼 환경에 따른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함이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해봅니다..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핵과 미토콘드리아에 비밀의 열쇠가 있는듯 한데..제가 농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보니 조금 어렵지만 시대가 농사의 길로 이끄는듯 합니다..ㅎㅎ아무래도 논문을 읽어보아야 할것같은데 국회도서관 전자책열람이 될까요?
횡재 10.10.04. 20:56
95%의 잠재능력을 깨우다...제게도 꼭 필요한 훈련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단군3 10.10.16. 11:07
이를 연장하여 인간에게도 의료혁명을 일으킬수 있다면 하는 바램입니다,
간단히 인간의 소화 기능만 봐도 그러 합니다, 소화제 각종 제산제는 먹으면 먹을 수록 본래의 장 기능을 약화 시킵니다,
일시적으로는 치료효과가 있는 듯 해도 끊는 그 순간부터 이미 본래의 능력은 거의 소멸된듯 합니다,시간이 흐를수로
더욱 악화되는 방향으로 진행 하구요
농사에서의 농약과 비료와 같아 보입니다,
위염에서 염증 치료제라고 항생제와 소염제를 투입하면 몸안의 미생물도 또한 같이 죽여버립니다

도올 김용옥, 투표 독려 시국선언 '혁세격문(革世檄文)' 발표 두런두런 생각들

현실정치에 한 말씀 하시는 인문고전의 대표적인 철학자중 한 사람인 도올 김용옥 교수가 발표한 '혁세격문'을 보니 그의 절절한 민중사랑의 정신을 읽을 수 있겠다. 농민이 잘 살고 젊은 이들이 찾아가는 농촌이 되기를 희망하는 한 사람으로 그의 글 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잘 새겨 음미하고자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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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민생의 감언에 도덕을 망각할 셈인가"

투표 독려 시국선언 '혁세격문(革世檄文)'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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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선생 ⓒ뉴스1


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가 17일 오후 '18대 대통령 선거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시국선언 '혁세격문'을 발표했다. 이 오디오 음성을 게재한 이상호 기자의 발뉴스 사이트는 워낙 많은 사용자들이 몰려 한때 다운되기도 했다.

김용옥교수는 "조선의 들판이 혁명의 불길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자고 있는 자들이여 모두 깨어나라, 새시대, 새정치의 함성이 그대를 부른다. 4천만 유권자, 남녀노소 남김없이 모두 투표장으로 가라"며 투표를 독려했다.

이어 김교수는 "농촌은 해체되고 도시 삶은 황폐화됐다. 서민 대중의 죽음을 현 정권의 치자들은 환호하고 재벌은 환희의 박수를 친다. 전국 골목골목의 상권을 대형마트라는 탱크와 기관총으로 후려 갈겨대고만 있다"며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우리가 지도자를 잘못 뽑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국민이 교사와 허언의 달인을 지도자로 떠받들 수 있는가. 민주라는 허명에 사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김용옥 교수는 "민중이여 또 당할 셈이냐. 현 정권의 죄악을 반성 없이 반복할 셈인가. 민중이여 두 손에 가슴을 얹고 잘 생각해보라. 정치는 민생을 해결하지 못한다. 민생은 어디까지나 민중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오늘과 같은 악랄한 대기업의 횡포는 정부와 공권력의 비호가 없다면 당장 민중의 힘으로 타도될 것이다. 기업과 정부 권력의 유착, 자본의 끝없는 폭리 확대, 공무와 행정 부패는 대중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선거 공약에서 민생을 우선시하는 자는 거짓말쟁이, 위선자일 뿐이다. 민생이 원하는 것은 도덕의 구현 및 정의의 확립이다. 위선의 심장에 종지부를 찍자. 더 이상 속지 마라. 민생이 아닌 도덕의 기강을 바로 잡자"고 호소했다.

아울러 그는 "도덕을 어떻게 바로잡는가? 너무도 쉬운 해결방안이 그대 손에 쥐어져 있다. 부패와 사악의 정권을 바꾸면 된다. 어떻게? 투표장으로 가라. 여러분들 손에 쥔 투표용지 하나로 전쟁과 대결의 국면을 평화와 화해의 국면으로 바꿀 수 있다. 기나긴 좌절과 절망에서 승리와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투표용지 하나로 반민족 행위자들의 작태를 일소할 수 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라고 말하며 투표를 독려했다.

끝으로 그는 "투표장에 국민이 오는 것을 꺼려하는 모든 반민족 행위자들에게 종말을 드리워라. 그것도 아주 평화롭게. 19일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 땅의 깨인 자들이여 모두 남김없이 투표장으로 가라. 그대들의 투표가 이 민족 모두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리라. 주변을 모두 설득하라. 우린 반드시 승리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돌아 갈 수 없다. 투표장으로 가라"고 외쳤다.

<혁세격문 (革世檄文) 전문>

지금 조선의 들판이 혁명의 불길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지금 조선의 먼동은 “다시 개벽”의 눈부신 햇살을 발하고 있다. 자고 있는 자들이여, 모두 깨어나라! 새 시대, 새 정치의 함성이 그대를 부른다. 깨어난 4천만의 유권자들이여, 남녀노소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투표장으로 가라! 19일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혁명의 물결이 이 아사달 신시를 휘덮으리라! 조선의 깨인 자들이여! 남김없이 혁명의 대오에 어깨를 엮어라!

환인 하느님께서는 이 신시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거룩한 건국 치세이념을 내리셨다. 그런데 지금 어떠한가? 지금 우리는 홍익弘益이 아닌, 홍해弘害, 홍살弘殺의 정치를 자행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해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광분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정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인의仁義를 망각하고 솔수식인率獸食人의 사리私利를 앞세우며, 진현進賢의 정도正道를 거부하고 착복과 부패의 한계를 없이 하며, 국고를 털어 치자治者 본인의 사욕을 충족시키며 주변의 승냥이들에게 떡고물을 분배하고 있다.

국토의 산수대강山水大綱을 파괴하고 4대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왜곡·오염시키며, 백두대간의 대혈인 국립공원에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케이블카의 설치를 획책하고, 인천공항과 같은 공익의 자산을 사유의 질곡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 농촌을 해체시키고 도시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양극화의 괴리는 재벌의 독재를 흥륭興隆케 하며 서민대중의 삶을 노예 이하의 나락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추락은 영락이요 죽음이다. 그런데 서민대중의 죽음을 현 정권의 치자들은 환호하고 재벌은 환희의 박수를 친다. 그리고 전국 골목골목의 상권을 대형마트라는 탱크와 기관총으로 후려 갈겨대고만 있다. 어찌 미국의 총기난사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쳐다보고만 있는가? 자기 가슴에 총알이 박히고 있는 바로 그대들이!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우리가 지도자를 잘못 뽑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될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국민이 교사巧邪와 허언虛言의 달인達人을 지도자로 떠받들 수 있는가? 민주라는 허명에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메이저 언론의
정보조작과 선거를 둘러싼 가치의 혼란이 민중의 너무도 정당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민중이 민주의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호도하는 온갖 정교한 부정이 민주주의라는 타자他者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민중이여! 또 당할 셈인가? 현 정권의 죄악을 반성 없이 반복할 셈인가? 이제 또 안보의 위협에 대책 없이 속을 셈인가? 마지막 순간을 앞둔 깜짝쇼에 대의大義의 정조情調를 굴복시킬 셈인가? 민생의 감언에 또다시 도덕을 망각할 셈인가? 민중이여! 두 손에 가슴을 얹고 잘 생각해보라! 누가 과연 그대들의 민생을 도와주었는가? 누가 과연 그대들에게 돈 한 푼이라도 거저 준 적이 있는가? 민생은 아사달의 신시로부터 지금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민중 스스로 해결해온 것이다. 착각하지 말라!

정치는 민생을 해결하지 못한다. 민생은 어디까지나 민중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민중의 간절한 염원이란 그 민생결단의 번영을 훼방하는 행위를 정치가 제발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일 뿐이다. 오늘과 같은 악랄한 대기업의 횡포는 정부와 공권력의 비호가 없다면 당장 민중의 힘으로 타도될 것이다. 기업과 정부권력의 유착, 자본의 끝없는 폭리확대와 공무행정의 부패의 연환連環은 대중민생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이 희생에는 이제 부르죠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 자산가, 임금노동자를 불문하고 모든 대중이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공약으로 “민생”을 우선시 한다 하는 자는 거짓말쟁이요 위선자일 뿐이다. 민중이 원하는 것은 민생이라기보다는 도덕의 구현이며 정의의 확립이요 인정仁政의 구체적 실천이다. 위장된 웃음의
눈꼬리를 가장하며, 정의와 도덕을 외면하고 반성과 실천을 거부하는 위선의 심장에 이제 종지부를 찍자! 더 이상 속지 말자! 민생이 아닌 도덕의 기강을 바로잡자! 그리하면 민생은 저절로 해결된다. 도덕이 바로서고 민생이 풍요롭게 되지 아니 하는 역사는 인간세에 있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도덕을 어떻게 바로잡는가? 그 너무도 쉬운 해결방안이 그대 손에 쥐어져 있다. 부패와 사악의 정권을 바꾸면 된다. 어떻게 바꾸는가? 투표장으로 가라! 그대의 신성한 혁명의 권리를 행하라! 나와 같이 수십만 권의 장서를 수십 년에 걸쳐 뇌리에 입력한 자나, 만 20세의 청순한 홍안의 유권자나, 동일한 한 표의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 인간 오성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신념은 반만년 인문정신의 기나긴 투쟁의 결과로서 획득된 것이다. 어찌 이 고귀한 권리를 나태와 냉소와 방임으로 포기할 셈인가?

혁명은 어렵지 않다. 유권자의 90%만 매번 투표에 참여한다면 역사는 항상 선을 지향하며 뒤바뀌게 되어있다. 그런데 유권자 한 명이라도 더 투표장에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치세력이 과연 수권受權의 자격이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국가기관이나 공영언론조차도 투표를 독려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직무유기를 일삼는 것이다. 국민이여! 분노하라! 분노하라! 실상을 직시하라!

과거에는 최고의 권좌, 그 천명天命을 바꾸는 혁신革新의 대업에는 수없는 인명의 희생이 있어야만 했다. 삼일운동을 기억하라! 동학의 우금치전투를 상기하라! 정주에서 폭파된 홍경래의 염원을 다시 한 번 상상해보라! 그 얼마나 처절한 고립무원의 항쟁이었던가? 그대들이 손에 쥐고 있는 투표용지는 이들 선열先烈의 잘린 모가지처럼 피가 흐르고 있다. 민주의 나무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랐다. 대한민국처럼 비서구권에서 서구 의회민주주의의 원칙을 수용하고 직접선거의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정권의 평화로운 교체를 이룩한 선례를 축적하여온 나라도 별로 없다. 이것은 오직 선현先賢들의 피흘림의 투쟁으로만 가능하였던 것이다.

체제 밖에서 천 리를 가는 것보다 체제 안에서 한 치를 가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체제 안에서 천 리를 갈 수가 있다. 우리 민중 모두가 19일 투표함으로 가기만 한다면 혁명은 이루어진다.

혁명은 왜 반드시 이루어야만 하는가? 이제 혁명은 폭력이 아니다. 이제 혁명은 광포한 영감이 아니다. 이제 조선의 혁명은 체제의 룰에 따라 도덕의 기강을 바로잡는 정의로운 상식적 작업이다. 그러나 이번 우리의 혁명은 바스티유감옥의 철창을 터뜨린 불란서인들의 인권선언보다, 차르왕정을 무너뜨린 러시아혁명보다, 아편전쟁 이래 열강의 침탈을 종식시킨 마오쩌똥의 공산혁명보다도 더 막중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는 혁명이다.

우리의 혁명은 열강의 모든 근대적 노략질과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결과물인 세계냉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진정한 세계평화의 출발이다. 동·서의 언어적 편견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며 남·북의 불필요한 이념의 기미羈를 절단하며,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회복하고, 도농都農의 균형을 꾀하고, 세조의 찬탈 이래 끊임없이 왜곡되어온 정의의 패배를 설욕하는 대업이다. 훈구파들의 끊임없는 득세, 선조의 파렴치한 임란책임회피, 그 뒤로 이어지는 노론의 장악, 세도정치, 일본제국의 식민지통치와 친일파의 발호, 이승만의 권력찬탈과 무능한 6·25전쟁대처, 일제 만군출신 박정희의 쿠데타와 유신폭정, 이 모든 흐름이 “불의라도 박박 우겨대면 역사의 정의가 된다”는 왜곡된 가치관에 대한 통렬한 국민적 반성의 기회를 박탈해왔다. 반성이 없는 역사는 미래가 없다.

올해가 임진왜란 일곱 환갑! 그 부끄러운 통치자들의 행위가 빚어낸 참혹한 민중의 삶을 일순간이라도 연상할 수 있다면 오늘 우리의 좌표는 명료해진다. 그대들은 아는가? 가도입명假道入明의 명분으로 이 땅을 짓밟은 토요토미 히데요시 침략군의 저주보다, 이 나라를 구해주겠다고 원정 온 명군明軍의 작태가 민중의 삶에 끼친 폐해가 구체적으로 더 심원했다는 사실을 그대는 정말 아는가? 임란의 극복의 원동력은 이순신의 서남해상권 제패와 수군의 활약과 의병의 분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무공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장렬한 최후의 진로를 선택해야만 했고, 의병장 김덕령은 모진 고문 속에 죽어야만 했고, 홍의장군 곽재우는 신선을 가장하고 소리 없이 스러져야만 했다. 선조는 이들 구국의 지도자들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직 명군의 “재조지은再造之恩”만을 찬양했다. 그리고 살아있는 이여송의 사당을 만들었고 명군을 위하여 동대문 밖에 관묘를 지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다시 만들어주었다는 은혜, 즉 재조지은의 찬양은 결국 불과 30년만에 정묘·병자의 양 호란胡亂이라는 처참한 비극을 다시 불러왔다. 이러한 민중의 비운의 역사의 배면에는 6·25전쟁 등 현대사의 명암이 겹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다. 그러나 우리의 친미는 미국과의 정당한 거리감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을 도덕적으로 만들어주는 인도주의적 친미가 되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남·북한의 화해를 돕도록 만들어야 하며, 역으로 우리는 남·북한 화해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여 세계평화를 이끌어가도록 만드는 21세기 인류 최대의 염원을 달성케 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민생民生이라기보다는 민본民本이다. 민중 스스로가 자결의 주체성을 갖는 역사를 갈망하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손에 쥔 투표용지 하나로 인류의 역사를 전쟁과 대결의 국면에서 평화와 화해의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사의 기나긴 좌절과 절망을 승리와 희망으로 회향시킬 수 있다. 보도연맹사건으로 학살된 30만 우국지사들의 원혼을 기억하라! 좌절된 반민특위의 역사를 반성하라! 이제야말로 우리는 투표용지 하나로 반민족행위자들의 작태를 일소할 수 있게 되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투표장에 국민이 오는 것을 꺼려하는 모든 반민족행위자들의 생애에 종막을 드리워라! 그것도 아주 평화롭게! 19일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 땅의 깨인 자들이여! 모두 남김없이 투표장으로 가라! 그대들의 투표가 이 민족 모두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리라. 주변의 모든 동포를 설득하여 투표장으로 가라! 이 민족의 기나긴 불의와 독선과 배타와 불인不認의 역사를 끝장내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돌아갈 수 없다! 모든 반동은 그 자체의 힘에 의하여 분쇄된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투표장으로 가라!

2012년 12월 17일

도올 김용옥



고 이광오씨 모교에 남긴 장학금 DS64

고교 동창으로 2년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구가 그 부인을 통하여 중학시절 재학하였

던 고향의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였다. 최근까지 그 소식을 몰랐었는데

친구를 통하여 들었던 내용이 한 블러그에 남아있기에 그를 기억하고자 가져와 기록해

둔다. 글쓴이와 블러거 경철수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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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cskyung74/15962866

고 이광오씨 모교에 남긴 장학금/ 철수의 노컷자료

경철수 2011.03.04 08:55

<괴산 목도중고등학교 교사 권오창 833-7180/833-7181>

□ 53세 나이로 시골 모교에 장학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인이 알려져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 화제의 주인공은 목도초.중학교를 졸업한 고 이광오씨이다. 이 씨는 1976년 덕수상고와 1987년 동국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2003년 이후 A은행지점장으로 근무해 왔다.

□ 미망인 전현수씨에 의하면 고인인 이 씨는 생전에 모교인 괴산 목도초.중학교를 어떻게 하면 발전시킬까 많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 그러나 이 씨는 지병으로 앓고 있던 심장병이 악화돼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났다.

□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전 씨는 가족회의를 열어 이 씨의 모교발전에 대한 관심과 후배사랑을 받들기로 결정하고, 지난해 8월 13일 괴산 목도중학교에 장학금 5,000만원을 기탁했다.

□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괴산 목도중.고등학교(중.고 통합교)가 운영하고 있는 이광오 장학금으로 지난 2월 17일 열린 괴산 목도중.고(교장 나용호) 졸업식에서 이광오 장학금 첫 수혜자가 나왔다.


□ 첫 수혜자는 목도중 3학년 이인안 군(20만원), 목도고 3학년 지광환 군(50만원)이 장학금을 받았다. 이 장학금은 지난해 8월에서 올해 2월초까지 6개월간 모여진 이광오 장학금 5,000만원의 이자로 만들어졌다.


□ 학교측은 장학금 전달을 미망인 전현수씨에 부탁했지만 전씨는 "장학금이 시골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격려가 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며 끝내 장학금 전달을 학교장에게 양보했다.

□ 학교측은 내년 졸업식부터는 1년치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에 올 해보다 더 많은 금액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이광오 장학기금 운영 규정을 제정한 괴산 목도중.고등교는  고인의 뜻에 어긋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대전일보 > DC 人 > 화제의 인물 편집 2011-03-04
                                                      2011-03-05 14면기사

 

故이광오씨, 괴산 목도중에 5000만원 기탁
모교에 장학금 남기고 떠난 ‘기부천사’
충북 괴산의 한 시골학교에 장학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졸업생이 있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주변을 웅클하게 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괴산군 목도초·중학교를 졸업한 고 이광오(53·서울 강남구 도곡동·사진)씨다. 이 씨는 목도초·중학교를 나와 1976년 덕수상고와 1987년 동국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A은행지점장으로 근무해 왔다. 부인 전현수씨는 고인이 된 남편이 살아생전 모교인 괴산 목도초·중학교를 어떻게 하면 발전시킬 수 있을까 많은 고심을 했다고 전했다.

결국 이 씨는 지병으로 앓고 있던 심장병이 악화돼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났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전씨는 가족회의를 열어 이 씨의 모교발전에 대한 관심과 후배사랑을 받들기로 결정하고 작년 8월 괴산 목도중학교에 장학금 5000만원을 내놨다.

학교측은 이광오 장학기금을 만들고 지난달 17일 목도중·고등학교(교장 나용호) 졸업식에서 첫 수혜자가 나왔다. 이광오장학금 첫 수혜자는 이인안(목도중 3학년)·지광환(목도고 3학년) 군으로 이들에게는 20만원과 50만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이번 장학금은 6개월간 모아진 5000만원의 이자로 만들어졌다.

학교측은 장학금 전달을 부인 전씨에 부탁했지만 전씨는 “장학금이 시골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격려가 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며 학교장에게 양보했다.

학교측은 내년 졸업식부터는 1년치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에 올 해보다 더 많은 금액을 장학금으로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나 교장은 “이광오 장학기금 운영 규정을 제정햇으며 고인의 뜻에 어긋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청주=곽상훈 기자 kshoon0663@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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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밤의 꿈......이럴수도 있구나 생각해봅니다... 귀농의 길

나보다 먼저 춘천으로 귀농하여 1차년도 배추밭 농사의 실패사례를 기록한 글이다. 참으로 안타깝기 한이없는 일인데 내년을 위하여 정리했다고 한다. 용기를 잃지말고 꼭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스크랩하여 게시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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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농부 귀농일기/ 달고나귀농열차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hicps04&categoryNo=40&skinType=&skinId=&from=menu&userSelectMenu=true


한 여름밤의 꿈......이럴수도 있구나 생각해봅니다...

올 농사는 대박이겠거니하고 새볔부터 밤 늦게까지 기나긴 여름 뜨거운 햇살아래 정말로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이만큼 이루어 놓은 배추 밭에, 그리고 산채 밭에 날로 힘이 절로 솟아났습니다...

밭을 갈고 비닐 멀칭을 씌우고...물론 거름을 듬뿍 뿌렸지요


그리고 저 넓은 밭에 심을 묘종을 보고 괞히 가슴 벅차오름을 느끼면서



아주머니 인부 10여명이 이틀에 걸쳐 정성껏 심엇습니다...

고맙게도 카페 회원님들도 많이 오셔서 도와주시고요....대접은 못해 드렸지만요.ㅋㅋ


때 맞추어 심기 전,후해서 적당량의 단비도 내리고 해서 그야말로 꿈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카페 회원님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고해서 피곤한 몸을 뒤로한 채 열심히 블로그에 카페에 귀농일기랍시고 적어 보았죠..




4년마다 찾아오는 윤달에는 예기치 않은 많은 기상변화가 있고 한여름 배추키우기가 쉽지 않은 일이고 추석 전 출하시기에 맞추어 잘 자라주는 배추가 웰빙농부의 가슴 속을 뻥 뚤어 줍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던 내 새끼들

누가 뭐래도 올 농사는 100% 잘 지었다고 확신이 서고 이러저러 여러가지를 상상해 봅니다...



우선 서울 집에 있는 마나님의 근심을 눈 녹듯이 없애 버릴 수가 있겠구나...그럼 산채도 잘 자라주고, 이제는 사업계획을 조금 더 확장해서 다시써도 되겠구나....그리고 내가 여지껏 살아오면서 알게 되었거나 새로 알게 될 모든 이들에게 정말로 몸에 좋은 산야초 맛을 보여 주고 견학도 할 수 있게하고 잘하면 관광농원의 꿈도 이룰날이 가까워지고....

이 참에 도메인 등록을 하고 나의 애마 쏘렌토에 달고나 로고를 입혀 운행을 해야겠구나...

내년 부터는 맘 편히 이 곳에서 산채에만 집중해야지...

이런 저런 꿈에 부풀어 잠도 못자고 혼자서 실실 웃어대곤 합니다..

그리고 잘 하지도 못하는 포토샵으로 만들어 놓았던 여러가지를 재 점검도 해 봅니다...

도메인 미름, 상호, 그리고 홍보 등등등..




홍천 내면 쪽에 추석 전 출하 예정인 무우가 평당 밭떼기로 1만원 이상 계약 했다는 말들이 들려오던 8월 중순 즈음해서 어르신에게 정중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배추는 평당 1만 오천원 정도에 판로를 한번 알아 보시죠?"

어르신이 답하시길 "올해는 야자대 배추가 모조리 죽고 고랭지는 이상기온 여파 땜시 추석 전 배추대신 추석 이후, 그리고 이모작으로 김장배추를 심었으니 잘하면 포기당 1만원은 갈텐데 평당 1만 오천원이면 정신나간 소리 아니겠는가?"

그건 아닌데..

갸우뚱 하지만 근 30년간 농사를 지으신 분의 판단을 조금은 과하지만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배추농사에 뛰어들어 처음 목표를 경매가 기준으로 했을 때 인건비 빼고 저는 포기당 1,500원,

어르신은 3,000원을 잡았습니다..

35,000포기에 농비 2,000만원 잡고 5,000만원만 해도 약 3,000만원 남으니까 인건비는 나올 것이다 시작을 한 것이죠.....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수확의 기쁨이 확인된 건 태풍 볼라벤이 오기 바로 전 가락동 경매시장에 들러 경매 현장을 둘러 보았을 때였습니다...

우리 배추보다 못한것이 8월 중순에도 상품기준 포기당 약 3,000원대입니다.

추석이 한달여 남은 시점에서 5년간 통계치를 보니 두배 내지 두배반 정도로 급등하더라고요...더군다나 가뭄끝에 태풍이 센 것이 온다니 폭등 할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으니까요...

가을 문턱에 들어서기 바로 전 한여름 태풍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이틀 밤을 비바람에 어쩔줄을 모르고...

이어 한 열흘간 비가 계속 쏟아집니다....

잠시 이틀 정도를 쉬고나니 다시 태풍이 몰려 온다고 매스컴에서 온통 난리가 났네요...

태풍에 대한 대비를 한답시고 태풍에 쓰러진 배추를 세워도 보고 더러는 솎아도 보고 하지만 속수무책입니다....급격히 망가져가는 배추....

빨리 출하해야겠다고 어르신께 조르기 시작합니다...

"우리 배추 하나가 망가지면 다른집 배추는 두,세개씩 망가지기 때문에 가격은 오르게 되어 있으니까 걱정 하지마...자네가 배추에 대해서 뭘 안다고,,,자넨 한시라도 빨리 농사를 접을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러다가 배추 값이 금값되면 책임질 수 있겠나?

바로 깨갱합니다...

9월 중순이되어 배추 출하가 돼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네요..

예정대로라면 9월중순에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일주일 후에 추석을 맞을려고 했는데 태풍 관계로 쓰러진 배추에 병충해와 어울려 급속히 망가져 가기때문에 출하시기를 조금 앞당겨야 맞는데 어르신은 계속 고집을 부립니다...

두번째 태풍이 지나가고 나니 회생불가일 정도로 급속히 망가져 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여기저기 아는 사람 다 동원해서라도 빨리 밭떄기로 넘기는 것 만이 정답인데 말 할때마다 핀챦 뿐이니 어찌 할 도리가 없내요...

태풍피해 조사 나올것을 대비해 농작물 신고를 하자고 하거나 태풍 피해로 인한 가격안정을 위해 정부 수매에 응하자고 하거나 카페 회원님들, 김치공장 등 여러 판로를 얘기 하지만 역시

"넌 초보라서 몰라서 하는 소리" 일 뿐입니다...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농비도 못 건지겠다 싶어 작업을 해 봅니다...

그러나 다 망가진 배추 밭 작업 하는데 들어가는 인건비, 운송비, 장난이 아닙니다...

평균 5천원짜리 배추를 5백원에 팔고 있습니다...경비를 제하고 나면 포기당 130원쯤 되는가 모르겠습니다...ㅋㅋㅋㅋ

춘천, 구리, 농협, 인천 등등으로 배추를 싣고 다녀 보지만 이미 망가진 배추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추석 전이라 배추 소매가는 포기당 7천원정도이고 경매가는 5천원정도 하니까 20분의1도 못 건지는 장사가 된 셈이죠,,,




한여름 밤의 꿈이 산산 조각나던 날..

9,25일 이틀간 작업한 물량을 싣고 가락동 경매시장을 어르신과 함께 직접 가보기로 하고 5톤차를 몰고 경춘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갑자기 타이어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서종 인터체인지 부근 터널 속에서 차량이 멈춰 섰습니다...

안전조치를 하고 수신호를 하다보니 터널 안이라 여의치가 않아 다시 차에올라 보험회사에 견인 서비스를 요청 하는 순간 엄청난 소음과 함께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비상라이트를 켜 놓았었는데도 모르고 뒤에서 5톤 장축에 보일러 같은 철제 짐을 가득실은 차가 우리 차 뒤 꼬무니를 와장창 받아 버렸네요...

보험사에서는 아가씨가 여보세요를 계속 외쳐대는데...그냥 끊어버리고 112에 신고하니 벌써 견인차 오는 소리가 납니다...

뒷 차 운전사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리도 않나고 대강 차량을 훑어보니 운전석이 휴지조각처람 구겨져 있고 소방대원들이 유압절단기로 근 한시간여를 작업한 끝에 사람을 끌어내 구급차에 실어 보냅니다...나중에 알아보니 생명만 붙어 있다고 보면 된다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나와 어르신은 그냥 추워서 벌벌 떨다가 인근(마석)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고....

배추실은 우리 5톤차는 견인차가 실어가고....실려있던 배추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네요....

병원에서 다음날 일하기로 했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카페 회원님들 무료 봉사활동 하신다는 것도 취소하고 병원신세 며칠 지고 바로 추석 연휴를 맞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나니 배추밭은 정말로 되 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이제 작업을 해도 하면 할수록 돈이 더 들어가야 합니다...

농협에서도 춘천 등 소도시 경매장에서도 제발 가져오지 말랍니다....

아래 사진 저 멀리 산쪽에 있는 아직 출하못한 배추를 버려둔 채 눈물을 머금고 보따리를 싸서 그냥 서울로 올라오는데.....

지금 서울온지 10일 정도 지났지만 이제사 조금씩 정신이 드는 듯 합니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해 미안하고 꾸준히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간에 사실 8월말 태풍과 씨름하며 일하느라 바쁘기도허고 컴도 고장이 나버리고 나중에는 패농으로 인해 많은 쇼크를 받고 해서 글을 올리지 못했었는데 지금부터라도 지난 일이지만 조금씩 기억을 되살려 일기를 써 볼랍니다....

내년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을 삼아가며 몸과 맘을 추스리고 있습니다.......


오가피 열매 먹는 법 약초&한방&산야초

집앞에 있는 밭에서 오가피 열매를 채취하였는데 보관법과 먹는 방법을 몰라 인터넷을 검색하여 웰빙농부의 네이버블러그에서 아래와 같은 상식을 얻었다. 사용해 보고 좋으면 그 소감을 게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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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icps04&logNo=30123395506


오가피 열매 먹는 법


<< 오가피 열매 >>

늦은 봄에 결실이 시작되고 낟알이 콩알만하며 편구형이다. 꽃이 진 후 낟알이 맺히며 푸른색을 띤다. (結細子) 푸른 열매는 점차 커져 7월경부터 흑색으로 완숙된다. 서리가 내릴 때 푸른색 열매가 자흑색으로 변하면 수확한다. 오갈피 열매를 추풍사(追風使)라 한다. (추풍사 : 중풍을 몰아내는 사자)


<< 주 의 >>

1. 음이 허하고 열이 심한 경우에 신중히 복용하여야 한다.

2. 아랫도리에 풍한습사가 없이 열이 있는 경우 적합하지 않다.

3. 간장과 신장이 허하고 열이 있는 경우에는 금한다.

4. 열성 질병, 전염병, 고혈압, 가슴할랑거림, 심장병에 조심해서 쓰고


<< 이 용 >>

01. 오가피술

오가피의 열매나 껍질을 삶은 물에 쌀밥과 누룩을 섞어 빚은 한국 전통의 약용주. 오가피주(五加皮酒)라고도 한다. 오가피의 열매나 줄기껍질이나 뿌리껍질을 물에 잘 씻어 물기를 말린 다음 잘게 썰어 용기에 넣고 소주, 설탕을 넣어 담근다.


오가피 400그램, 소주 1리터, 설탕 200그램 비율로 담가 시원한 곳에 놓아두면 약 1개월 후에는 마실 수 있게 되는데, 완전히 익으려면 3개월이상 두어야 한다. 마실 때 기호에 따라 설탕을 더 넣을 수도 있으며, 술 담글 때 오가피 삶은 물에 소주, 설탕을 넣어 담그는 방법도 있다. (장복하면 요통헤 탁월한 효과) 오가피술은 담황색, 아름답게 익으며 특유한 향기가 있어 약술로는 물론, 과실주와의 칵테일로도 좋다.


02. 음료수 처럼 달여서 수시로 마신다 (대추 2~3개 잘깨 쪼개어 함께)

<< 효 능 >>

오장육부에 좋고, 면역계, 내분비계, 신경계, 소화기계, 혈액순환계, 골격, 근육, 운동계 등 신체 전반적인 광법위한 약효로서 부작용이 없는 최상품의 약으로 장기 복용이 가능하다. 고혈압, 동맥경화, 중풍, 당뇨, 불면증, 치매, 성장과 안정, 장수에, 종기, 타박상에, 오장 육부를 튼튼하게, 어혈(나쁜피)에, 통증(다리, 근육, 신경, 뼈, 허리), 시력 회복에, 암(위암, 유방암, 대장암, 구강암, 직장암, 식도암)에, 정력증강등 두루 쓰이는 약재이다.


오갈피열매는 남자음위와 여자음부소양증을 치료하고 연년불로하게 하는 선약이다. 오갈피열매는 남자 발기불능과 여자 성욕감퇴를 치료하고, 노화방지로 생명을 연장시켜 신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명약이다. 민간에서는 요통, 신경통, 중풍 등에 사용한다.


진통, 진정, 강심, 타박상의 치료에 사용하며, 강정제,음위제,진경제,단독제,강장제,피로회복제로 쓰인다. 소변이 시원치 않거나, 고환아래 습하거나, 요통 등에 효과가 있고, 열매는 말려서 써야 효과가 높습니다.


귀농에 관한 환상과 진실 2 귀농의 길

귀농에 대한 현실을 알려주는 글 두번째 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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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인구가 매년 최고치를 기록중입니다. 2012년 상반기 귀농귀촌인구는 8706가구 1만7745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왜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것일까요? 귀농귀촌인 절반 이상은 4050세대이지만 2030 세대의 귀농귀촌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생태적 삶'을 살고자 귀농을 결심하는 이들도 많지만, 상당수는 자영업에 실패하거나 명퇴를 당했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귀농귀촌의 리얼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개인의 선택 차원을 떠나 뚜렷한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귀농귀촌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적 뒷받침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괴산군 칠성면 미루마을 어느집 마당에서는 눈깔사탕만한 대추가 맛난 빛깔로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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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울대학', 요즘도 입시철만 되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시쳇말입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런 경향이 전무한 상태는 아니겠지만, 과거 한 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상경(上京)'이란 말은 출세를 위한 세상나들이이자 질이 향상된 삶이 시작되는 출발점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관대작이나 대부분의 갑부들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역사적이거나 현실적인  배경을 배제하더라도 사실이 그랬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야 사시사철 거무튀튀하고 거친 피부였지만 서울로 올라간 사람들은 피부조차 희뿌연하게 변하는 게 눈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인지 뻥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서울 사람들의 생활은 시골 사람들과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하고, 넉넉하고, 풍족해 보이기 일쑤였기에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귀촌'과 '귀농'이란 말이 중년들이 그리는 선망의 대상, 노후의 삶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귀촌이라는 말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할 만큼 부담스러웠던 경쟁이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해방구 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맑은 물, 신선한 공기, 넉넉한 인심, 풋풋한 흙내음,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한숨 잘 수 있는 시계 없는 시간, 심장에 잡힌 주름조차 쫙 펴질 것 같은 여유로운 마음, 가족모두가 도란도란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먹는 식사, 텃밭에서 자라는 야채들, 햇볕을 잔뜩 머금고 정원에서 익어가고 있는 과일들.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그릴 수 있는 목가적인 풍경 속 주인공이 되는 게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 갖는 귀촌에 대한 기대이자 로망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대를 반영하듯,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상반기 귀농·귀촌 인구가 8706가구 1만 7745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2011년도에는 1만 503가구 2만 3415명으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귀농·귀촌 인구가 가장 많은 곳 가운데 하나가 충북 괴산군입니다.

괴산군에 따르면 올해만 6월기준으로 148가구 245명이 이주했습니다. 2009년 42가구 73명,  2010년 52가구 118명, 2011년 93가구 172명으로 괴산군 귀농·귀촌인구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귀농·귀촌인구가 많이 늘어난 곳은 칠성면입니다. 2011년부터 2012년 6월까지 54가구(106명)가 증가했습니다.

집단귀촌으로 지도까지 바뀐 사은리

 집단귀촌으로 지도가 바뀌었습니다. (위) 2008년도 사진 (아래) 최근사진 -<다음> 지도에서 추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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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일까요.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는 몇년 사이에 지도가 달라졌습니다. 비탈진 밭이 있고, 다랑이 논이 있던 구배원에 '미루마을'이 들어서면서 지도가 바뀐 것입니다. 사은리는 전체 가구 수가 50여 호 남짓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입니다. 이런 마을에 몇 년 사이에 57가구나 되는 미루마을이 들어선 것입니다.

미루마을은 사은리 북쪽, 고개라 할 것도 없고 산이라 할 만큼 높지도 않은 야트막한 안산 너머, 구배원이라는 곳에 흡사 신도시가 건립되듯 들어선 집단 귀촌마을입니다. 미루마을이라는 이름은 그곳에 커다른 미루나무 3그루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미루마을은 수도권의 한 대학의 동문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으며,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23억4000만원을 들여 커뮤니티센터, 도로, 상수, 오수, 하수처리시설 등 기반시설과 공공시설을 조성했습니다. 이 마을에는 단독주택 57채가 건립됐고 35가구 100여 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22가구가 귀농·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루마을 사람들이 사은리로 귀촌한 첫 번째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귀촌이나 귀농을 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몇 집 됩니다. 그들은 가구 단위로 들어왔고, 자연스레 마을사람으로 동화돼 지금은 집안의 대소사까지를 함께 꾸리는 동네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루마을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57세대라는 단위도 그렇지만 그들에겐 어느 대학 동문이라는 구심점이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세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도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두발로 걸으며 느낀 귀촌마을

 집단귀촌으로 형성된 미루마을 전경은 획일전인 건축물로 조금은 단조로워 보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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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미루마을을 찾았습니다. 마을입구 공터에 차를 세우고 타박타박 걸어서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집단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귀촌이다 보니 공사면적도 넓고, 파헤치거나 벌여놓은 일이 많으니 모든 게 마무리 되려면 아직도 적지 않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합니다.

즐비하게 늘어선 집들의 겉모습은 획일적이라 할 만큼 같은 모양에 같은 색깔입니다. 길을 걸으며 들여다보는 집들 중 일부에서는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그릴 법한 풍경들도 눈에 띕니다. 햇볕이 가득한 양지바른 마당, 잘 다듬어진 잔디밭, 마당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 가을배추와 화초들, 주렁주렁 매달려 당도를 더해가고 있는 곶감, 가을바람에 살짝살짝 몸짓을 하고 있는 그네, 배경으로 에두르고 있는 가을 산, 누룽지 맛처럼 구수하게 익어가고 있는 단풍들…. 정말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오매불망 그릴 법한 목가적인 풍경입니다. 

 숲속 작은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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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작은 도서관'이란 팻말이 달린 집에는 꽤나 많은 아이들이 북적대고 있습니다. 무대 아닌 무대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드럼을 두드리고 있고 어떤 아이는 바이올린을 연습합니다. 어떤 행사가 진행될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그 집을 지나니 적막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두 모녀가 짜랑짜랑한 햇살을 받으며 뭔가를 다듬고 있는 게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주워온 알밤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일상입니다. 노랗게 영글어 쪼글쪼글할 정도로 말라있는 밤에서 단맛과 고소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미루마을에서의 삶이 귀촌을 계획하며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지, 아니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우문현답입니다. 커다랗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꿈을 꾸듯이 그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지 별로 실망스러운 것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리를 뜨지 않고 이것저것을 자꾸 물으니 집에서 만든 것이라며 머그잔으로 가득하게 식혜를 가져다줍니다. 

그 집을 나와 조금 더 올라가니 백발의 할머니가 테라스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동생네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집주인 할머니는 인천에서 30년을 사시다 자식들이 이 집을 마련해 미루마을로 내려와 있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라 당연히 시골생활을 좋아하시겠지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불편하다고 하셨습니다. 아직은 아는 사람도 없고, 필요한 게 있어도 마음대로 살 수도 없어서 불편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주말에 드나들며 지었다는 콩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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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시계방향으로 돌아 내려오다 보니 모자(母子)로 보이는 두 사람이 콩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잔디마당에 대형비닐을 깔고, 베어 말린 콩대들을 그 위에 깔아놓고 도리깨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리깨질을 너무 능수능란하게 하기에 농사를 지은 적이 있는지를 물으니 왕년에 농사를 지었던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모자는 경기도 안양에 살면서 주말이 되면 내려와 쉬기도 하고 이렇듯 농사를 지어 거두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언론, 현실 제대로 보도해야"

마을을 거반 돌다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는 부부를 만났습니다.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부에게도 같은 질문, '미루마을에서의 삶이 귀촌을 계획하며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지, 아니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물었습니다. 허락을 받아 두 아이를 나란히 앉혀 놓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아내 되는 이의 반응은 아주 격정적이었습니다. 혹시 귀촌생활이 어쩌니저쩌니 하며 잔뜩 미화시켜 놓을 거면 두 아이의 사진을 절대 써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헛꿈을 꾸지 않도록 사실대로 전해야 하는데 언론을 통해서 보이는 미루마을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화일색이라며 언론에 대한 거부감까지 보였습니다.

▲ 텃밭이 있고 잔디마당이 있고 대개의 사람들이 그리는 전원주택이 이런 모습일 겁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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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미루마을은 지난 5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까지 다녀갔을 정도로 성공적인 귀촌 현장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뭔가를 경계하고, 어떤 사연을 감추기라도 하듯 머뭇거리거나 대답을 회피해 호불호를 판단 할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반응들과는 달리 부인 되는 이가 들려주는 귀촌에 대한 현실은 분명하고 단호했습니다. 갈 길을 채비하던 남편도 "내가 오자고 해서 온 거라 아내에게 참 미안하다"고 독백을 하듯이 한마디 합니다.

'가을 음악회'가 열리는 숲속 작은 도서관 마당에서도 몇몇 분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버섯농사를 짓고 있다는 분은 당신의 귀촌을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하며 점진적 발전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경쟁력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나름으로 선택한 귀촌에 어느 정도는 만족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선행자로서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물으니 "귀농학교쯤은 꼭 다니며 정신무장을 제대로 하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숲속 도서관 주인에게 귀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이민'쯤으로 생각하면 될 거라고 합니다. 물설고 낯선 타향, 문화와 가치는 물론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하나를 시작해야 하는 이민생활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루마을 집을 세컨드하우스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 세대는 미루마을 밖에도 집이 있고 삶의 터전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미루마을에 대한 절실함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미루마을 이장인 곽노관씨는 "2011년 9월에 내려왔는데, 사회생활을 하며 꿈꿨던 귀촌이 실현돼 좋다"면서 "각자 기대와 입장에 따라서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한 마을 속 두 동네, 그들만의 음악회

 미루마을 초등학생들이 벌이는 가을음악회에 참석한 미루마을 사람들. 가을음악회는 안타깝게도 그들만의 음악회로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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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회가 열리는 숲속 작은 도서관 마당에는 한기를 달래주고 고구마를 익혀 줄 모닥불도 피워졌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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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마을의 가을은 해가 짧았습니다. 산그늘이 길어지고,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니 숲속 작은 도서관 마당으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이들, 이미 와 있던 몇몇 어른들에 하나 둘 찾아드는 어른들까지 더해지니 마을잔치가 벌어집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음악회라고 했습니다. 재롱잔치라고도 했습니다. 미루마을에는 의외로 초중고 학생이 많았습니다. 유치원생이 2명, 초등학생이 12명, 중학생이 2명, 고등학생이 5명으로 총 21명이라고 합니다.

이날 열리는 음악회는 초등학생들이 학교 등에서 배운 각자의 실력을 때로는 홀로 뽐내고, 때로는 합주로 드러내는 아름다운 자리였습니다. 누룽지 빛깔로 익어가는 가을, 솜사탕처럼 감미로운 선율, 특별메뉴처럼 이따금 들려오던 어머니의 하모니카 소리, 직접 농사지은 표고버섯으로 조리한 표고버섯탕수육,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익어가는 군고구마 냄새는 미루마을로 귀촌한 사람이 아니면 차려질 수도 없고 차려지지도 않을 특권, 그들만이 누리는 미루마을표 행복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루마을 사람들이 특권처럼 누리는 행복은 어쩌면 거기까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그들만 있을 뿐 그들이 꿈꾸던 귀촌이나 귀농에 토양이 되고 용매가 되어 줄 이웃, 다른 사은리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해 딱 한분이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귀촌을 해 사오랑이(지역이름) 사람보다 더 사오랑이 사람이 되어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초대를 받고 참석해 있었습니다.

미루마을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삶의 터전으로 삼아야 할 곳은 미루마을 자체가 아닐 겁니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고, 보는 관점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미루마을 사람들이 잔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도 사오랑이 사람들이고, 미루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이웃사촌이 되어줄 사람들도 사오랑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집단귀촌'은 반대"

 미루마을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 바라본 군자산모습입니다. 산이 높으니 산그늘도 깊고 넓습니다. 미루마을의 현실이 커다란 산이고 산그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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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마을의 가을밤을 더 없이 행복하게 감싸고도는 음악소리를 뒤로하며 사은리 이장(노형열, 53)을 만나러 갑니다. 소위 불알친구지만, 일손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놓을 수는 없기에 저녁 시간에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아래동네, 외사리에 사는 친구(김덕한, 53)도 함께 만났습니다.

세 친구가 한자리에 앉아 미루마을의 귀촌을 이야기 합니다. 가구 단위로 귀촌하는 사람들도 지켜봤고, 집단으로 귀촌한 사람들도 지켜본 50년 지기 친구들, 장승박이처럼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두 친구가 내린 결론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은 귀촌은 반대"였습니다. 이런저런 형태로 집단적 세를 형성하려던 예를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갑론을박 할 것도 없이 단박에 모아지는 의견이고 결론입니다. 

어떤 손해가 있고, 어떤 문제가 있어서 반대가 아니라 미루마을을 보면서 느끼는 현실적인 결론이라고 하였습니다.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이 동네 저 동네로 나뉘는 것도 꼴 보기 싫고, 존재하지도 않는 알력이나 세 싸움을 미리 짐작하는 것도 싫다고 하였습니다.

평생 이곳에서 토박이로 살아온 A씨 의견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들어온 마을이야 어쩔 수 없지만 또 들어온다면 반대한다"면서 "토박이들이야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자기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를 하는데 그 사람들은 권리 주장이 더 강한 것 같더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오고가는 것 티 나지 않게 녹아들 사람은 녹아들고, 맹물에 더해지는 설탕처럼 단맛을 더해줄 사람은 단맛 더해주며 어울리다 보면 더불어 하나 되는 그런 귀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몽환적으로만 보였던 귀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현실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미루마을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에게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갈등이나 고통은 각자가 그려왔던 귀촌, 개개인이 기대하거나 설계 하였던 삶의 정도에 따라 다를 겁니다. 그들 모두가 겪는 아픔이나 상처 또한 그들이 꿈꾸던 귀촌으로 가는 여정이기에 더 큰 착오와 고통을 미연에 막아주려는 예방주사로 딱지 맺혔으면 좋겠습니다.

괴산군 귀농귀촌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괴산에는 미루마을 이외에도 집단적으로 귀촌이나 귀촌을 한 곳이 몇군데 있다"면서 "실질적으로 생계를 전제로 생활하고 있는 한살림이나 흙살림, 솔뫼마을 등은 자리를 잡았지만 귀촌지역의 경우 정착과정에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귀촌이 스스로가 선택한 삶이라면 귀촌을 해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거나 극복해야 할 모든 갈등, 아픔, 상처, 고뇌, 고통 역시 스스로의 몫임에 틀림없습니다. 적극적인 자세에 '세월'이라고 하는 유화제(乳化劑)가 더해지면 얼마의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꿈꾸듯 그리던 귀촌이 어느 날엔가는 실현 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미루마을 사람 모두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내 고향 사람, 사오랑이 사람들로 느껴지는 날이 성큼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올 봄에 고향 친구 한명이 귀농을 했다. 의외의 일이었다. '에잇, 시골 가서 농사나 짓던지 해야지 원'하는 푸념들은 많이 들었어도 실제로 다 때려 치고 농사를 짓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을 두고 고향 어르신들 사이에선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무슨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마흔일곱, '한창 젊은' 나이에 홀연히 단신으로 시골로 내려와 농사나 짓겠다고 덤빌 리가 없다는 것이 마을 어른들의 오랜 경험에 의한 판단이었다.

고향 친구의 귀농..."무슨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소문의 대부분은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귀향 행보에는 미심쩍은 요소가 다분했다. 대부분, 말년을 고향에 의탁하는 은퇴형 귀촌자들은 먼저 마을에다 으리으리한 새 집을 지어 존재감을 드러낸 다음에서야 비로소 화려하게 등장하곤 했다. 원주민들의 거처와는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신소재 건축 재료로 이국적인 풍모를 뽐내는 집을 짓는 것만으로도 집주인이 도시에서 쌓은 화려한 경력과 여유로운 경제력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친구의 귀향은 금의환향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보였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는 당장 몸을 의탁할 집 한 칸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로 텐트에 침낭을 멘 남루한 행색으로 고향에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근황은 크게 세 가지 가능성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승기 걔가 마누라한테 이혼 당했다더만'  '아니여, 사업이 쫄딱 망했다더랑께"  "큰 병이 들어서 가망이 없다던디'.

'마누라랑 이혼했다'와 '마누라한테 이혼 당했다'의, 능동태와 수동태의 현격한 차이는 불행의 강도를 가늠하는데 있어 중요한 척도가 된다. 친구의 경우 '마누라한테 이혼 당했다' 에 무게가 실려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연민의 감정을 자아냈다. 그의 귀향이 개인사적인 불행에 근거한다는 절대적 이유는 당연히, 부인의 부재였다. 자연스런 귀향이었다면 응당 옆에 있어야 할 부인이 그의 옆에 보이지 않은 탓에 뜬소문은 더욱 신빙성을 더해갔다.

마누라한테 이혼당해 쫓겨났거나 불치병에 걸려 오늘 내일 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사업이 망해서 빚더미에 오르지 않고서는 그런 몰골로 고향땅을 밟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나와 동갑인 그의 나이 마흔 일곱은 은퇴자 대열에 들기엔 아직 좀 이른 감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나, 승기다. 나 쌍봉에 와 있어. 어? 뭔 일 있냐고? 아니, 여기서 살려고 내려왔지. 나 참, 정말이라니까 아무 일 없고 우리 고향에서 농사짓고 살라고 왔다니까 그러네, 하하하하!"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마누라한테 쫓겨났거나 죽을병에 걸렸거나 쫄딱 망해서 도망 온 '놈' 치고는 지나치게 밝고 활기에 넘쳤다. 자신을 둘러싼 마을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목소리는 한껏 태연하고 여유로웠다. 마치 엊그제 고향 떠났다 돌아온 사람처럼 편안했다. 한 마을에서 자란 남자 동창이자 가까운 친척이기도 한 그와 실로 몇 십 년 만에 나누는 대화였다.

 친구가 옆 마을에서 어렵게 마련한 빈집. 처음엔 이런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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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보석세공기술자, 왜 고향으로 돌아왔나 했더니

그는 현재 친척의 빈집을 임시 거처로 삼아서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부부가 살집과 농사지을 땅을 부지런히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병아리도 사서 기르고 있으니 다음에 촌닭을 먹으러 오라고 미리 다짐을 두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고민했던 듯 그의 고향에서의 계획들은 알차고 막힘이 없었다. 간단한 전화 통화만으로도 그가 이 귀농을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고 계획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가정파탄을 겪거나 경제적 궁지에 몰려 고향으로 피신한 불쌍한 놈이 아니었다. 다만 농사를 지으러 고향에 돌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직업은 보석세공기술자였다. 숙련된 세공업자이자 보석상이었던 그는 그쪽 방면으로 나름 성공한 편에 속했다. 아들, 딸이 다 자라서 제 앞가림 할 나이가 되었다고 판단되자 그는 오랜 꿈이었던 귀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혼자 내려와서 거처를 마련하는 대로 부인을 데려오기로 계획이 잡혀있었다. 수도권에 번듯한 집도 있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귀농이었다. 이제 고향이 실거주지가 되고 서울에 있는 집은 가끔 한 번씩 들르는 용도로 사용할 것이었다. 그는 최근까지도 잘나가는 사업가였고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부인은 서울에서, 남편이 불러주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당분간은 큰댁 옛날 집 대충 고쳐서 지내고 있어. 워낙 오래 비워놨던 집이라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네. 어디 마땅한 집 나온 거 없나,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집도 집이지만 농사지을 논밭도 구입하고 그래야 돼.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 들떠 있었다.

지금은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나도 한때는 귀촌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시골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귀촌이었던 까닭이었다. 도시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친구들과 마당에서 잦은 술추렴을 벌여 조용한 시골 마을에 물의를 일으켰는가 하면 새벽마다 나오라는 울력에는 번번이 불참한 탓에 마을 이장님한테 단단히 찍혀 있었다. 급기야 이장님은 말 안 듣는 젊은 것들을 시골 지서에다 간첩이라고 신고하기에 이르렀고, 간첩사건은 일대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당시의 경험에 비춰볼 때 귀촌, 귀농이란 결코 함부로 덤빌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계획들을 차근차근 짚어나가는 친구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이번 그의 귀농만큼은 성공할 확률이 꽤 높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그는 다름 아닌 고향으로 귀농을 했다.  

"하하하하! 어떡하냐. 내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우리 마누라랑은 금슬이 너무 너무 좋거든? 흐흐흐. 그리고 하던 일도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었지. 그렇지만 딱 이때다 싶어서  접었어. 어쩌다가 농촌이 패가망신하거나 파탄난 놈들이나 숨어드는 유배지로 전락했을까나. 하하하! 어르신들한테 아무리 아니라고, 마누라한테 쫓겨나지 않았고 사업 망해서 도망다니는 거 아니라고 해도 글쎄 안 믿는 눈치시더라. 어서 빨리 집부터 마련해서 우리 예쁜 마누라를 데리고 와야지 안 되겠다. 귀농이 나한테는, 89년도에 결혼하면서부터 생각했으니까 자그마치, 이십년 넘은 꿈이었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 그의 큰집이자 나의 큰집이기도 한 임시거처를 벗어나서 비로소 영원히 정착할 집을 사서 수리를 마쳤다고 했다. 진짜, 서울에서 부인까지 내려왔는데 착하고 예쁘기가 그만이라는 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정착한 집은 옆 마을에 있었다. 고향 마을에서는 도저히 집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결국 옆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향마을과 집을 장만한 옆 마을을 오가며 부지런히 농사준비를 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고향으로 농사지으러 온 건데, 지원금 타내러온 사람 취급"

그런 그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해서 며칠 전에는 직접 고향 마을로 향했다. 가기로 한날 아침 일찍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 오늘 산골에서 작업하니까 그쪽으로 찾아와. 휴대폰은 안 터지니까 연락은 안 된다.'

'산골'은 우리 고향 마을의 수많은 골짜기 이름중의 하나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이름인가. 비로소 그가 고향에 정착한 농부라는 실감이 났다. '산골'이니 '뫼골'이니 '장자골'이니 '서당골'이니 하는 골짜기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까마득한 상상 속 이름인줄 알았는데 전화기에 찍힌 '산골'이라는 지명을 보니 비로소 고향의 골짜기 이름들이 실재하는 지명으로  되살아났다.

그가 작업 중인 블루베리 농장은 산골 골짜기 중에서도 저수지를 끼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나타났다. 고향마을에 위치한 골짜기라지만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수많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여기서 나고 자랐어도 내가 아는 골짜기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지점에서 주차를 하고 골짜기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비로소 밭 언저리에 움직이는 사람들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때까지 골짜기에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핸드폰은 진즉 서비스 지역을 벗어났음을 알리는 표시를 남긴 채 먹통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 마을은 어디서나 핸드폰이 잘 걸리지 않았다.

얼굴이 하얀 어설픈 농부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친구는 완연한 농부로 변신해 있었다.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친구지만 스스럼없이 반갑고 친근했다. 열심히 삽질을 하며 두엄더미를 뒤집는 가운데 그는 귀농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그는 주말이면 전국의 산과 들을 돌며 정착할 땅을 물색했다. 독실한 가톨릭교도로서의 삶도 귀농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피정을 떠나 자연을 접하면서 농촌과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또 봉사활동을 하며 목격한 도시노인들의 스산한 삶도 그의 귀농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했다. 몸과 마음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인생 최종 목표인 귀농을 완성시켜 놓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과감하게 귀농지로 고향을 선택했다.  

"왜 텐트에 침낭은 메고 왔나?"

"아, 서울에서 여기 집을 알아보니까 답답해서 그랬지. 일단 내려가서 집을 구해보자 그랬던 거다. 주택문제 해결해놓고 귀농하려면 한정 끝이 없겠더라. 정 안 되면 노숙이라도 할 각오로 텐트에 침낭을 메고 일단 내려오고 본 거지. 무턱대고 왔는데도 한데 잠은 안 잤다. 하하하. 고향이라 가능한 거야."

"빈집 구입해서 수리하고 논, 밭 장만하고 또 닭하고 가축들 키우고 몇 달 만에 참 많은 걸 한 거 같네."

"준비를 많이 해서 왔다. 그런데 주택문제가 가장 힘들었다. 빈 집들은 많은데 아무도 팔겠다는 사람이 없는 거야.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자신들이 딱히 고향에 돌아올 계획들은 없으면서 집만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겠다는 거더라. 그 마음 이해가 가지. 도시 생활이 힘들수록 시골에 쓰러져 가는 집이라도 한 채 남겨두고 싶은 그 심정 말이다. 그래도 난 계획한대로 순조로운 편이다. 같은 귀농학교 출신 동기들 귀농운동본부 회원들 거의 적응에 실패했다."

▲ 빈 집의 변신 그 황량했던 빈집이 친구의 손의 거쳐 아늑한 보금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친구가 입만 열면 자랑하는 친구의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네요.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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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해당 지자체의 귀농, 귀촌 대책이 전무하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각 지자체들의 귀농, 귀촌 대책이 천차만별인데 화순군의 경우 귀농자들을 위한 배려가 거의 없다고 했다. 

"군청 같은데서 귀농인 대하는 시선이 별로 곱지가 않아. 귀농인들 배려하는 정책은 하나도 없으면서 일정 여건을 갖추고 귀농한 사람조차 홀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난 순수하게 고향에 농사지으러 내려온 사람이잖아. 귀농자금이나 타내려고 머리 쓰는 사람 취급을 하는데 정말 괴롭더라."

그가 느끼기에 화순군의 경우는 대도시에 인접한 이점을 노려 위성도시형 인구정책에 중점을 두다보니 귀농, 귀촌에 힘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번거롭게 귀농, 귀촌 인구를 유치하느니 차라리 광주와 인접한 지정학적 위치를 살려서 개발과 택지조성에 주력하면 인구유입은 훨씬 더 효과를  거둘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위적으로 조성된 한옥마을이나 아파트단지에 입주한 주민들이 인구수는 늘려줄 수 있을지 몰라도 순수한 농업인구로서 기여도는 떨어질 것이다. 그것은 군 스스로가 농도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채 도시의 하숙촌 역할에만 안주하는 꼴이 된다.

"군내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귀농운동본부의 내실은 어떤 편인가?"

"귀농학교 출신 동기들 중에 실제 귀농, 귀촌으로 정착한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운동본부 주변을 기웃거리는 수준이다. 여전히 귀농, 귀촌에 대한 미련은 남겨둔 채 힘든 농사일은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 귀농에 대한 확신 없이 귀농운동 자체만을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사료공장 취업부터, 주말농장 체험까지..."나 많이 준비했다"

그가 작년 6월 귀농을 목적으로 사업을 접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료공장 취업이었다. 그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사료공장만큼 노동 강도가 센 곳은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사료공장에서 6개월을 버텼다. 장차 농사일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동안도 꾸준히 체력을 길렀지만 귀농이 임박하자 노동으로 몸을 단련시킬 필요가 있었다. 5년 전부터는 서울 인근 주말농장에 5백여 평을 분양받아 농사를 지으면서 흙에 대한 감각도 서서히 익혔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그는 육체적, 심리적으로 시골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내가 예전에 보석세공기술을 제대로 익히려고 호주로, 캐나다로 세계 곳곳을 안 다녀본 데가 없다. 그렇게 32년 동안 내 일에 최선을 다했지. 덕분에 업계에 최고라는 평판과 더불어 자부심도 컸어. 귀농도 마찬가지로 그만큼 꼼꼼하게 준비하고 노력했다."

"그동안 귀농에 소모된 비용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8천 정도? 집은 내가 직접 수리했어도 1200정도 들어갔는데 중장비 대여료 같은 거지. 현재 논은 1800여 평 확보했고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은 논을 구입할 예정이다. 적어도 오륙십 마지기 정도는 지어야 중장비를 구입해도 효용가치가 있겠어서."

"벼농사 이외의 다른 계획은?"

"어지간한 나무와 약초들은 다 심어볼 생각이야. 친환경 농법을 최대한 유지해야 하니까 퇴비 얻으려면 소도 몇 마리 키워야 하고, 식품위생법 관련 법규 알아보고 유기농 과일이나 약초를 이용한 발효 효소도 만들 계획이다. 다양한 유기농 식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생산해 내고 싶어."

그는 자신의 귀농은 성공적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귀촌, 귀농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스스로 부대끼고 일할 각오가 되어있지 않는다면 귀농은 성공할 수 없어. 여기 와서 살이 11킬로나 빠졌다. 그만큼 농촌 일이라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내 몸 움직이지 않고는 거저 되는 일이 없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귀촌,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충고해 주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농촌에서 살려면 지출을 최대한 줄여라. 둘째 고향이나 연고지로 귀농해라. 마지막으로 고향이나 연고지가 없다면 차라리 마을이 형성되지 않은 외딴집을 선택해라."

고향이나 연고지가 없을 때는 차라리 마을과 동떨어진 외딴집으로 귀촌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했다. 낯선 동네에서 마을주민으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에너지를 낭비하다보면 귀농 자체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고향이 없고 연고지가 없을 바에는 차라리 마을과 동떨어진 외딴집에서 자신만의 귀농에 집중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라고 했다.

 친구가 귀농한 고향,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어느 골짜기에 위치한 고추밭입니다. 승기의 귀향을 계기로 뜻있는 친구들의 귀농, 귀촌이 이어져서 예전처럼 오손도손 모여살면 좋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어 봅니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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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킬로 빠질 정도로 부대낄 각오해야 귀농 성공"

그는 이야기 도중에도 쉼 없이 부엽토와 두엄을 섞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삽질을 하는 손놀림이 능숙하다. 농부로 전업한 지 이제 겨우 팔 개월째. 그런 그에게서는 몇 십 년 묵은 농부의 체취가 묻어났다. 익숙한 솜씨로 삽질을 하는 그의 모습 어디에도 과거 숙련된 보석세공업자로, 화려한 보석상인으로 명성을 날리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화려한 금은보화를 제련하던 그는 지금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대신 흙속의 진주를 캐는 농부가 되어 열심히 두엄을 헤집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은 무척 근사해 보였다.  

"허이참. 토끼탕 끓여놨는데 그냥 간다고? 친구 온다고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서 토끼탕을  끓였구먼. 진짜 맛있게 끓여놨는데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가라니까."

시골의 밤은 일찍 찾아와서 오후 다섯 시에 벌써 마을은 어둠에 휩싸였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도시로 돌아오는 길. 광주로 향하는 도로에 진입하고 나서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친구, 고향으로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친구야말로 우리 가문의 보배다ㅋㅋ'

그러자 답장이 왔다.

'어이 토끼탕을 못 먹여 보내 아쉽네. 다음에 오면 꼭 저녁 먹고 가야 해'

40명 넘는 한마을 친구 중에 한명쯤 귀농을 하고 보니 참 든든하다. 요즘도 농촌에서 울력이라는 걸 하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는 울력도 앞장서서 잘할 사람이다. 누구처럼 울력에 빠져서 괜히 동네 이장한테 찍히거나 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 친구라면.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지저귐이 귀에서 머리로 전해지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새들은 용케도 자신들이 머무는 곳을 찾는다. 제초제와 살충제로부터 자유로운, 먹이가 풍부한 우리 집 앞의 풀밭은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 덕택에 아침 동이 틀 무렵부터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들이 자명종을 대신한다.

"새소리 들었어? 너무 예쁘지 않아?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본 것 같아."

아침 환상곡. 자연속 도시촌놈들이 처음 느끼는 향수랄까.

이곳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지 2~3년 됐을 때 새소리의 전율에 잠을 깼다. 그런데 그 느낌도 점차 무뎌진다. 요즘은 새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작년부터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 때문인가(고양이는 때로 새도 잡는다). 아니면 시골생활 7년, 호기심이 무뎌져서일까. 이젠 더이상 '시골'이 특별하지 않다.

학생 때는 방학, 직장생활 때는 휴가를 이용해 바다와 산으로 향하면서 느꼈던 해방감. "공기부터 다르다"는 느낌을 만끽하며 짧은 시간을 아쉬워했던 그 시간이 아련하다. 7년 전부터 오늘까지 매일 휴가가던 곳에서 살았더니, 이젠 '휴가'나 '출장' 등의 이름으로 다른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이미 도시에서 살던 '난' 변했다. 치유되었거나 익숙해졌다.

 귀농운동본부 텃밭(자료사진)
ⓒ 김병기

나는 이제 도시에서 살 수 없다

나는 이제 도시에서는 살 수 없다. 정체된 차량 속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나 푸른 숲도 보기 힘든 콘크리트와 금속, 유리로 둘러싸인 풍경, 신호 아래 길게 줄 선 자동차 사이에 끼어 있는 일도 견디기 어렵다. 출퇴근시간에 사람에 둘러싸여 어두운 터널을 이동하는 지하철, 매일 저녁이면 시커멓게 때가 앉은 소매도 견디기 힘들다.

그때가 그랬다. 7년 전. '한 번 도시를 벗어나 볼까'하고 간절히 생각했다. 그러려면 준비를 해야했다. 인터넷으로 관련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공부를 하고 모임이나 교육 등에도 참석해 정보를 나누었다.

도서관에 붙박이하며 <귀농통문>, <민들레>같은 잡지를 섭렵했다. 부안에서 공동체와 시골 출판사를 운영하는 윤구병씨가 쓴 <잡초는 없다>,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 등을 읽으며 감탄하기도 했다. 지금 그 시절을 떠올리면 쑥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 나이 30대. 급여가 급속히 오른다면 재테크 등을 통해 운 좋게 목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경쟁을 통해 누군가를 누르고 위로 오르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흔히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는 것은 내 성격상 불가능했다. 그렇게 나의 삶을 "사는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본래 '한 번 부딪쳐보자' 스타일은 아니다. 신중하게 재고 또 재고 되도록 보수적인 결정을 내려 실천하는 것이 나였다.

생각보다 삶의 전환은 쉽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후배가 자기 어머님 집이 비었다며 가서 그냥 살라고 한 것이다. 오래된 한옥에 벽돌을 덧대고 알루미늄새시를 입혀 보완한 집이었다. 일 년간 살았다. 너른 들에는 때때로 제초제를 뒤집어쓴 붉은 풀밭만 눈에 띄었다. 반경 30킬로미터 내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와 이웃한 냇가는 원래 내가 생각한 '시골 살이'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는 곳을 옮겨야 했다. 전국을 다니며 찾았다. 산골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착을 위해 땅값이 싼 곳으로 골랐다. 지금 전라북도 산골 진안으로 옮긴 것은 만족할 만한 선택이었다. 대부분 험준한 산지로 이루어진 고원지대로 개발의 영향을 덜 받아 산림이 풍부하고 물도 깨끗했다.

공기의 신선함이 좋았고 공장이나 산업단지도 거의 없는 곳이었다. 정착한 마을의 경우 축사도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귀농귀촌 연착륙을 위한 마을간사제도(마을 간사가 귀농귀촌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 적용시키는 것)가 막 시작되어 그곳 마을과 주민과 교류하면서 정착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매일 마을을 어슬렁거리면서 주민을 만나고 어디서 차를 권하거나 술을 권하면 마다않고 받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의적이긴 해도 긴 시간을 할애하여 나와 이야기 나누어줄 이들은 정해져 있었다. 이미 나보다 몇 년 전, 혹은 십년 전에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내려와 터전을 꾸미며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위로가 현실을 가리기도 했다.

그냥 흘러가는 구름마냥 사람 만나 이야기 나누며 느리고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일이 지속되었다. '저 놈 여기 와서 뭐하는 거여' '마당에 풀 좀 봐' '개는 먹지도 않을 것 같은데 세 마리씩이나 키우고' 등의 말이 돌아 내 귀로 들어올 때 즈음 마을 간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림 같은 집짓기?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귀촌을 결심하고 도시를 떠난 뒤 2년 만에 꿈을 이룰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뭐한 김에 쉬어가자고 '저 푸른 초원'은 아니지만 밭을 농지 전용해 '그림 같은 집'을 짓겠다고 말이다. 물론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결혼하면 도시에 아파트 전세라도 얻어 주려고 모아놓은 돈을 받아다가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집짓기. 5년 만에 고백하건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수없이 공간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하고 능률과 조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살면서 후회가 쌓이기 마련이다. 재료를 무엇으로 하느냐부터 시작해 벽 두께며 화장실과 창의 위치, 크기, 전등의 종류와 콘센트 개수 등을 고민하지 않으면 살면서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도시생활 당시 꿈의 공간으로 여겼던 한옥을 짓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가 무리였다. 돈이 없어 벽이며 바닥이며 전기, 설비 등을 공부해가며 혼자서 다 했다. 완공을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내부의 마감은 엉성했고 공간도 나누지 못했다. 외부 벽은 3년 만에 미장을 마쳤지만 기단과 조경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난, 30킬로미터 떨어진 직장을 매일 출퇴근한다. 그러다보니 '그림같은 집'은 어디로 가고 "그냥 바람만 막아주면 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집을 지을 당시, 무려 6개월 동안 건축노동자가 되어 새벽밥 먹고 현장 나와 일하고 저녁 먹으러 들어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터를 다진 지 일년 만에 입주했다.

 계량기 한쪽을 분리하고 상수도가 들어오는 곳으로 증기호스를 삽입한다. 물이 얼지 않았다면 고압의 상수가 흐를 수 있으니 조심.
ⓒ 임준연

집을 짓고 사는  일은 아파트에서 사는 것과는 달리 불편함이 따른다. 보일러 운영과 기본적인 정비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겨울이면 얼어 터질지 모르는 상수도 관리도 필수적이다. 매번 이웃이나 전문가의 손을 빌리기 힘들고 수리 비용도 만만치 않다. 흙으로 만든 집의 벽과 바닥은 들쥐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매년 겨울이면 정비와 관리, 경계가 필요하다.

집 주변을 가꾸는 것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보이게 좋은 정원을 가꾸는 일은 사철, 매일 둘러보고 손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움직이는 것이 싫다면 시골살이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겨울이 왔다. 일거리가 늘었다. 높은 천정과 얇은 벽, 나무문은 외기를 그대로 집안으로 들여 훈훈함을 느끼기 어렵다. 기름 값이 올라 보일러로 훈훈함을 주기는 힘들기에 거금을 주고 벽난로를 구입해 설치했다. 귀촌하고 는 것은 도끼질이다. 이웃의 힘과 또 그 이웃의 산의 나무를 트럭에 싣고 와서 전기톱으로 잘라 토막을 내고 타기 좋게 쪼개야 하는 일은 겨울의 주된 일과다.

엊그제도 오랜만에 반나절 도끼질로 몸살이 났다. 나무를 자르고 옮기고, 쌓는 일들은 몸에 익지 않으면 힘이 배로 든다. 팔, 다리, 어깨, 허리 근육을 단련시키고 익숙해져야 좀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겨울이 휴가다.

그럼에도 불편함의 기쁨을 기꺼이 즐기는 이들은 늘고 있다. 역시 자연과 가까워져서 얻는 기쁨이 크기 때문이다. 매해 같지만 조금씩 다른 농촌의 풍광은 내가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산과 들에 펼쳐지는 숲의 변화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공감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만들어준다.

지금은 계절의 변화를 따뜻함, 차가움 등의 감각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다. 집 앞의 느티나무가 싹을 틔우고 잎과 가지를 펼치는 매일이 다르다. 그곳에서 같이 사는 벌레들이 변해 나비나 나방으로 날아다니는 모습 속에서 세상의 조화로움을 배운다. 아침 구름과 해의 위치를 파악하고 저녁이면 변화하는 별들의 위치와 매일 변하는 달의 모습도 도시의 삶에선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웃집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면 서리가 내리는 가을을 넘어 겨울로 들어서고 있음을 깨닫는다. 도로마다 널어놓은 나락이나 콩, 들깨 등을 타작하는 늙은 농부의 모습에 눈물짓게 된다. 도심의 후미진 곳과 어두운 곳을 바라보는 내모습도 이랬을까. 사람 많고 활기찬 도시를 떠나 차도 인적도 드문 촌에서의 생활은 인간 본연의 감각을 깨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5년 전에 도시에 갇혀 사는 삶이 싫어서 무작정 귀농을 하려했던 나. 10년 후에나 다시 생각해보자는 아내의 반대와 설득으로 포기했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귀농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매우 신중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동안 다양한 귀농교육과 귀농인 탐방을 다니면서 보고 들은 현장학습의 영향이 컸다. 최근에 만나본 귀농인들의 삶을 소개한다.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길 바란다.

[사례1] 40년 조종사 김씨의 반도반농 나홀로 귀촌

20살에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전투기와 민항기 조종사로 40여 년간 하늘에서 보낸 김정수(60, 가명)씨, 정년퇴임 후에는 농촌에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10년 전부터 했다.

"결혼을 한 딸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한 기억이 없다는 말을 가끔 합니다. 군인과 민항기 조종사로서 바쁘게 살아온 탓입니다. 남은 삶은 시골에 내려가서 맑은 기운을 받으며 살고 싶다고 했더니 가족들이 흔쾌히 이해해줬습니다."

올 4월에 경기도 여주의 한적한 농촌마을로 귀촌을 하기까지 김씨는 1년 동안 정착할 집을 구하기 위해 이 지역 곳곳을 찾아다녔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한 이유는 홀로 귀촌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가족들과 쉽게 교류하려면, 왕래가 편해야 했다. 

지난 8월 김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작은 돌멩이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제 위치에 있는 것을 보았다. 군인과 조종사로서 오랫동안 몸에 밴 직업적인 습관이 집안 곳곳에서 보였다. 마당에는 각종 야생화가 앙증맞게 피어 있었고, 뒤뜰에는 20평 정도의 텃밭에 30여 가지의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농사는 처음인지라 인터넷과 책을 통해 조금씩 배웠다고 했다. 귀촌에 필요해 보여서 커피 바리스타와 도자기 공예도 배웠다. 지금은 나무에 그림과 글씨를 조각 하는 서각을 배우느라 일주일에 반은 서울을 오가는 반도반농(半都半農)의 귀촌생활을 하고 있다.

 두려움없이 다 내려놓아야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김정수(가운데)씨가 텃밭의 작물을 돌보고 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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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에서 은퇴를 앞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지위와 직업의식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면 두려움 없이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고민과 준비기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새로운 삶에 대한 준비를 미리 했기 때문에 즐겁고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들려주고 싶다는 말은 '다시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울림이 있는 말이다.

[사례2] 농촌에 홀로 귀농한 여성...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여성의 귀농은 남성에 비해 여러 가지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특히, 농촌에서는 홀로 귀농한 여성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는 것도 넘어야 할 벽이다. 권명심(36)씨는 대학 졸업 후에 외국계 은행을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녀가 사표를 내고 귀농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멘붕'이었다.

그녀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은 2년 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다. 흙, 나무, 숲이 전달하는 기운을 느끼고, 마을 주민과 직접 만날 기회도 있어 농촌마을을 풍경이 아닌 생활의 영역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농촌에서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며 귀농학교도 다녔다. 흙을 밟으며 하는 노동을 통해 자연이 주는 치유력에 대한 새로움을 경험했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다는 게 여성의 체력으로는 힘든 일임을 경험하면서 홀로 하는 귀농보다는 여럿이 함께 하는 공동체로 방향을 돌렸다.

"티베트 난민을 후원하는 단체의 소모임인 록빠작목반 활동을 하면서 6개월 정도 두물머리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농민들과 함께 농사를 지었던 것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체험이었어요.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하는 농사를 통해 삶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도시가 주는 다양한 편리함과 속도와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귀농을 하면 실천하고자 했던 단순 소박한 삶과 정신적으로 풍요한 삶은 주변의 시선과 물질적 욕구로 좌절되곤 했다.

▲ 논둑길을 따라 걷고 있는 귀농인들. 다같이 살아가게 하는 힘도 못살게 하는 힘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 권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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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홀로 하는 귀농에 대해 현실적인 방안을 찾던 권씨는 전북 남원 산내여성농업인센터에서 회계와 행정을 맡을 사람을 구한다는 정보를 듣고는 곧바로 내려갔다. 바로 면접을 본 후에 센터에서 제공하는 주거지까지 얻었다. 그렇게 해서 초보귀농인이 되어 이제 두 달에 접어들고 있다.

"이곳에 들어온 것을 귀농의 연착륙단계로 보고 있어요. 센터에서는 맡은 일 외에도 지역주민들과 다양한 행사와 교류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역에 대해 알게 되고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저에게는 적절한 일터인 것 같아요."

권씨는 귀농인들이 많은 지역이라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새로운 사람에 대해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마을에서 유지되고 있는 질서와 관행에도 무조건 맞춰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람들에게서 감동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혼자 해결하게 놔두지 않고 내 일처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농촌에서는 혼자 잘 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권씨는 아침마다 빌딩숲과 '지옥철'이 아닌 다랭이논이 펼쳐진 풍경을 보면서 논밭 길을 따라 출근한다. 이곳은 전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드라이브 길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길목이어서 일상이 곧 여행이기도 하다.

[사례3] 귀농 경제난, 전 이렇게 극복했어요

누구나 낭만적인 일상을 꿈꾸는 귀농(귀촌)을 꿈꾸지만 경제적인 부분으로 곤란을 겪는 경우도 많다.

귀농 1세대라고 할 수 있을 우정미(58, 가명)씨는 20여년 전, 남편을 따라서 농촌으로 일찍 내려갔다. 처음에는 공동체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지만, 현재는 독립해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라는 직업을 얻어 반농반업 귀농인으로 살고 있다. 우씨는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갖추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큰 규모의 농사가 아니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것이 농촌의 현실이기 때문에 기존에 가졌던 직업을 귀농지역에서 활용해 일정 소득을 확보하는 게 안정적 귀농에 도움이 됩니다."

우씨도 농사만으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방과 후 교사 자격증을 땄다. 특히 직업을 가지고 귀농하면 주민들과 교류하거나 유대를 맺는 데 수월하다.

공동체에서 오랜 생활을 해온 그녀는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귀농을 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동체와 함께 하는 귀농도 막연한 환상에 집착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며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관심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먼저 자세히 알아보고 직접 방문해서 실제 공동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마다 각기 지향하는 목표가 있고 특성이 있는데 그것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부합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귀농푸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땅을 소유했더라도 빚으로 묶여있는 경우가 많다. 우씨는 귀농인에 대한 보조금이나 대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농자금을 대출받아 농사를 시작할 때, 적게는 몇 천만 원에서 몇 억까지 빌리는데 대부분 상환을 못 하고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농사로 돈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농촌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확실한 상환계획이 없어도 안 되지만 상환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귀농하려는 분들이 도시를 떠날 때, 손에 쥐고 있는 돈에 맞춰서 귀농생활을 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삶을 위한 귀농을 결심했다면 스스로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살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빈집을 얻어서 수리하여 살고 있는 어느 귀농인의 집.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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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성공비결? 다 비우고 내려놓아라

<자연달력 제철밥상> 책의 저자로 알려진 전북 무주의 귀농 16년차 장영란(54)씨도 "귀농을 생각한다면 준비를 단단히 할 것"을 주문했다. 농사를 전업으로 생각한다면 영농조합이나 작목반으로 운영되는 지역에 정착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텃밭 수준의 작은 농사를 하는 귀촌을 준비한다면 직업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갖고 가야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고 했다.

불교귀농학교를 운영 중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유이상(36, 살림팀장)씨는 "요즘 귀농, 귀촌은 세대를 불문하고 속도전 도시를 벗어나 대안적인 삶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것"이라며 "스스로 농촌에서 살아가려면 직접 농사를 지을 수도 있지만 권명심씨 경우처럼 농업인센터나 영농조합 같은 곳에서 일을 하다가 독립하거나 자신의 직업을 살려서 정착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한다. 중요한 것은 귀농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지 않는 것과 도시와 같은 소비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란다.

귀농과 귀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만나본 경험으로 볼 때, 성공적인 귀농, 귀촌은 철저한 사전 준비와 마음을 비우고 시작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무한경쟁과 속도를 강요하는 도시를 벗어나서 몸과 마음에 여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농촌이 희망을 줄 수 있는 힐링캠프가 된다면 갈수록 쇠약해져가는 농촌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원시 서둔동 농촌진흥청 내에 개설된 귀농귀촌종합센터 건물 입구.
ⓒ 김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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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귀농귀촌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만503가구(2만3415명)가 귀농 귀촌했다. 2010년(4067가구)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상반기에만 8706가구(1만7745명)가 귀농귀촌을 선택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귀농귀촌 가구는 지난해 수준을 가볍게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귀농귀촌 인구가 크게 느는 배경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전원생활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있다. 더불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정책도 한몫한다.  

하지만 귀농귀촌에는 여러 시행착오가 따른다. 귀농귀촌을 하고 싶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심을 못하고 고민하는 사례도 많다. 이럴 때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도움을 청할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농어촌에서 새 인생을 설계하려는 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경기 수원시 서둔동 농촌진흥청 고객지원센터 내에 개설된 '귀농귀촌종합센터'(홈페이지 www.returnfarm.com, 전화 1544-8572)가 그곳이다.

정부 운영 원스톱 종합상담

지난 3월 초 문을 연 이곳은 정부가 통합 운영하는 '원스톱' 종합상담 지원센터다. 이곳에서는 귀농귀촌 희망자들에게 농업정책, 품목별 전문기술, 금융정보, 농지 및 빈집정보, 희망지역 동향 등 귀농귀촌에 관한 모든 것을 상담하고 교육도 실시한다. 또한 지방기관과 연계해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여보세요? 귀농귀촌종합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난주 찾아간 귀농귀촌종합센터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문 상담사 6명이 연신 걸려오는 전화 상담에 여념이 없었다. 상담실에서는 한 방문자가 상담을 받고 있었다.

현재 농진청 고객지원센터 근무자는 모두 34명. 이 가운데 12명이 귀농귀촌종합센터 운영을 맡고 있다. 사업관리, 정책 등 종합상담, 정보·콜시스템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농진청, 농어촌공사, 농협 소속 직원들로 구성돼 합동근무를 한다.

 수원시 서둔동 농촌진흥청 내 귀농귀촌종합센터 출입구.
ⓒ 김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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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종합상담은 농진청 소속 민간위원들이 맡고, 농지 및 주택정보 상담은 농어촌공사 파견 직원이, 농정 및 금융상담은 농협 파견 직원이 맡는 구조다.  

"지난 3월 센터 개설 이후 10월 말까지 모두 1만6402건을 상담했습니다. 하루 평균 100여 건을 소화한 셈이지요. 전화 상담이 대부분인데, 센터로 직접 찾아오는 방문 상담자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귀농귀촌종합센터 운영 실무를 맡고 있는 김부성 농촌지도관의 얘기다. 김 지도관은 전화 상담이 여전히 많지만, 센터 개설 초기 하루 평균 2~3명에 불과했던 방문 상담자가 최근 들어 적게는 6~7명, 많을 때는 10여 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센터 입구에서 만난 이아무개(70, 군포시 당동) 할아버지는 "건설업을 했었는데, 공기 좋은 곳에 들어가 특용작물이나 재배하며 살려고 하는데, 뭐가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아 상담을 받으려고 찾아왔다"면서 "자세히 알아본 뒤 귀촌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3월부터 1만6400여건 상담...귀농귀촌 성과는 '저조'

센터 측이 지난 3월부터 10월 말까지 8개월간 1만6402건의 상담실적을 분석한 결과 전체 90.2%인 1만4798건이 전화 상담이었고, 방문상담 916건(5.6%), 인터넷상담 688건(4.2%)이 뒤를 이었다. 상담자들 중 절반 이상은 정부 지원에 관심을 보였고, 다음으로 귀농귀촌 교육, 주택·농지 매입, 농업기술 관련 순이었다.

하지만 귀농귀촌 희망자들의 정부 지원 관심에 비해,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물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또 농지은행 등에서 알선할 수 있는 농지와 주택정보도 일부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다.

그렇다면 귀농귀촌종합센터를 통해 지금까지 귀농귀촌이 이뤄진 사례는 얼마나 될까. 센터가 개설된 올해의 성과는 기대보다 낮은 수준이다. 센터 측이 전체 상담자 가운데 전화연락이 가능한 23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월 말까지 155명이 귀농했고, 112명은 올해 안에 귀농할 예정이다. 

 귀농귀촌종합센터 전문 상담사들이 모두 전화 상담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 김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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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사 대상자 중 3분의 2가 넘는 1658명이 현재 귀농을 준비중에 있다고 밝혀 내년에는 센터의 도움을 받아 귀농하는 가구가 대폭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 귀농귀촌 결심을 못하고 보류한 인원은 405명이다. 

김 지도관은 "올해는 센터 개설 첫해로, 심층적인 상담과 전체 상담자 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귀농귀촌 사례가 많지 않다"면서 "앞으로 상담자들을 사례별로 특별 관리하고, 관련기관 업무와 연계한 네트워크 구축과 홍보 강화 등이 이뤄지면 귀농귀촌 인원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지도관에 따르면, 상담자들을 분석한 결과 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으로 이주하는 귀농 희망자는 베이비붐 세대인 40~50대가, 농사가 아닌 전원생활을 원하는 귀촌 희망자는 60대 이상이 많았다.  

센터를 찾은 상담자의 70%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거주자다. 주로 자영업·사무직·생산직 등에서 종사하다 은퇴한 이들이다. 귀농자들은 전남·북과 경남·북을, 귀촌자들은 강원과 충북을 많이 선호했다. 

귀농자들은 상대적으로 농지가격이 낮고, 농업 여건이 양호한 전라도와 경상도를 좋아한다. 강원·충북은 수도권과 가까워 귀촌자들이 좋아한다.

"귀농귀촌 열풍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전원생활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맞물려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지역균형발전과 도시 인구 분산효과도 기대됩니다. 그러나 귀농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귀농은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합니다."

귀농귀촌 5계명... "철저히 준비하고, 자만심 버려라"

특히 김 지도관은 "귀농귀촌은 정착지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면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염두에 둬야할 '귀농귀촌 5계명'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귀농귀촌종합센터 상담실에서 한 방문자(사진 오른쪽)가 전문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
ⓒ 김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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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실에서 방문자 상담이 이뤄지는 동안 또다른 방문자(사진 왼쪽)가 사무실 안쪽에서 전문 상담사에게 귀농귀촌 상담을 받고 있다.
ⓒ 김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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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철저히 준비하라 : 귀농에 성공하려면 목적과 계획을 분명히 세우고, 5년 정도 영농체험을 통한 농업기술 습득 등 준비를 거쳐 확신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 그림같은 전원주택 짓고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겠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원주민들의 텃세를 극복하라 :
원주민들의 텃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3년 동안 인내하며 그들과 상생을 위해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특히 원주민과 부딪힐 가능성이 높은 까칠한 성격은 위험하다.

지난친 자만심을 버려라 :
농업에 대해 뭐든지 잘 알고 있다는 자만심은 금물이다. 농업은 태풍·가뭄·폭우 등 기상재해로 한 번에 실패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항상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블루오션을 노려라 :
기존 농업인과 차별화된 시각과 전략이 필요하다. 성공사례를 참고하되,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토피 치유농장이나 시대 흐름에 맞게 특화된 관광농원 운영 등을 고려해 볼 만하다. 또 농사와 사업(농산물 유통·가공업 등)을 병행할 수 있는 '반농·반사' 계획을 세워 도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⑤고정관념을 깨라 :
농촌에서 새벽 5시는 잠자는 시간이 아니라, 일하는 시간이다. 도시생활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빨리 농촌생활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이웃과 담을 쌓고 지내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귀농귀촌종합센터 복도 벽에 나붙은 귀온귀촌 안내 및 홍보물.
ⓒ 김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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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도관은 "귀농귀촌은 앞으로 10년 이상 새로운 트렌드로 이어져 농업 인구 유입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고향을 떠났던 젊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우리 농업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 측, 20~30대 젊은층 귀농 반긴다

그는 이어 "국가에서 귀농인에 대한 물질적 지원과 함께 정확한 귀농정보를 안내하고, 초기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젊은 귀농인들이 다시 농촌을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센터 측은 20~30대 젊은 층의 귀농 지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센터 측은 이들이 30~40년 이상 농업에 종사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특별 관리와 행·재정적 지원 등을 통해 귀농인으로 정착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 9일 '귀농귀촌 활성화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귀농귀촌인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세제지원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귀농인만 받던 농지와 주택 융자를 퇴직 예정자와 귀촌인까지 포함해 최대 2억 원까지 지원하고, 도농복합지역에서 귀농해도 농지취득세를 50% 감면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과 달리 올해 농식품부와 농진청의 귀농귀촌과 관련된 예산 규모는 1163억 원에 불과하다. 증가하는 귀농귀촌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때문에 추가예산 확보와 함께 교육·교통·의료시설 등 기본 인프라 확충을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귀농에 관한 환상과 진실 1 귀농의 길

귀농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지니면 실패하기 쉽다고 한다.
나도 그 한 예가 될지 몰라 이 기사를 스크랩하여 수시로 되뇌이고자 한다. 
농촌에 거주하면 몸도 마음도 한가할 줄 알았는데 몸은 정말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또한 독서와 메모도 많이 하여야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본격적인 귀농은 하지 않았지만 텃밭농사를 지으며 공부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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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인구가 매년 최고치를 기록중입니다. 2012년 상반기 귀농귀촌인구는 8706가구 1만7745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왜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것일까요? 귀농귀촌인 절반 이상은 4050세대이지만 2030 세대의 귀농귀촌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생태적 삶'을 살고자 귀농을 결심하는 이들도 많지만, 상당수는 자영업에 실패하거나 명퇴를 당했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귀농귀촌의 리얼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개인의 선택 차원을 떠나 뚜렷한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귀농귀촌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적 뒷받침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전형적인 농가주택으로 석면 지붕으로 오래된 집이다. 나중에라도 리모델링하려면 최소한 수천만 원이 든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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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다가 낮에는 소일거리 삼아 텃밭을 가꾸고, 저녁이면 마당에서 고기 구워먹으며 사는 것을 꿈꾸는 귀촌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2001년에 880가구에 불과하던 귀농,귀촌 인구가 2005년에는 1240가구, 2010년에는 4067가구, 2011년에는 1만503가구로 계속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필자가 사는 제주에도 올 7월 말까지 3052명이 다른 지방에서 제주로 순유입됐고, 매달 400~500명 가량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렇게 귀농, 귀촌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정착해 사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막상 귀농, 귀촌해서 현지에서 살아보니 어렵고 힘들어 다시 도시로 간 사람들도 꽤 되기 때문입니다. 귀농은 말할 것도 없이 힘들고, 그나마 쉽다고 여겼던 귀촌도 귀농만큼 힘듭니다.

귀농, 귀촌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40~50대의 귀촌 생활 중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일들을 모아봤습니다.

농약때문에 창문조차 열지 못하는 집

귀촌을 하는 40~50대 남자들의 로망은 평생 자신이 꿈꾸었던 그림 같은 집을 짓는 일입니다. 통나무집, 황토집, 조립식 주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만의 공간을 머릿속에서 설계하다 보면, 하루빨리 시골에서 살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집 구하기에서부터 깨져버립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각종 부동산 사이트와 귀농, 귀촌 카페입니다. 이런 곳에서 정보를 얻어 직접 답사도 하고 부동산 업자와 함께 땅주인이나 집주인을 만나 가격도 조정하다 보면 금방이라도 멋진 집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집이나 땅이 실제 어떤 곳인지 모르고 덜컥 샀다가는 평생 모은 재산을 일순간에 날리기 십상입니다.

▲ 귀촌집짓기 농촌에서 집을 구할 때는 주변에 어떤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를 잘 알아봐야 한다. 요즘은 농약을 기계로 뿌리기 때문에 주변에 집이 있다면 그 집은 농약이 섞인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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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주자모임에서 나온 사례를 한번 보실까요?

"부동산 업자가 소개해준 집을 봤더니 넓은 들판에 4가구가 옹기종기 각자 개성이 담긴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었다. 확 트인 모습에 도시 생활에 넌덜머리가 난 아내와 나는 덜컥 계약금을 치르고, 서울에 올라왔다. 이삿짐센터와 연락해서 이사 갈 날짜를 앞둔 어느 날, 아이들에게 자랑도 할 겸 우리가 살 집에 잠시 가봤다.

이사 갈 집에 도착했더니 갑자기 매스꺼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자욱했다. 알고 보니 그 집은 대규모 농사를 짓는 밭 한가운데 있어 날마다 농약을 살포하고 있으며, 쓰레기 차가 들어오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쓰레기를 밭에다 태우고 있었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전원주택 4채 중 2채에 살던 이웃들은 이미 그 집을 버려두고 도시로 도망치듯 나갔고, 다른 한 채도 월세로 돌려서 근처 일용직 사람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퇴직금을 몽땅 털어 그 집을 샀던 우리 가족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집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매일 불어오는 농약 냄새에 창문조차 열지 못하고 집을 산 지 한 달만에 다시 집을 내놓았다." 

기획부동산들은 귀촌 인구가 늘자 저렴한 농지를 대규모로 사서 대지로 전환해 필지를 나누어 순진한 도시인에게 수십 배의 차익을 받고 팔기 시작했습니다. 멋모르고 이런 기획 부동산에 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불했던 가격을 건지기 위해 다시 집을 내놓지만, 그 집을 사는 사람은 어수룩한 귀촌 희망자이기에 이런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귀촌집 구하기 아직도 시골에는 소를 키우는 곳이 많다. 이 때문에 마을 안쪽이라도 축사가 있는 집이 있는지, 그 축사에서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꼭 따져봐야 한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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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는 아직도 '축사를 새로 만들기 어렵지만, 있는 축사를 없애기는 더 어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축사 주변에 집을 구하면 아침, 저녁으로 오리지널 농촌 냄새를 아주 진하게 맡을 수 있으며, 계절에 상관없이 파리, 모기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집을 짓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건축 사무소나 업자를 부르는데, 잔금 달라고 해서 줬더니 남은 공정 안 해주며 미루기 일쑤이고, 설계도면과 전혀 다른 자재를 사용하거나 부실 공사로 수도가 터지거나 벽이 갈라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처럼 귀촌을 생각하며 멋진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던 생각은 집을 구하는 과정이나 집 짓기, 어느 것을 해도 힘들고 어렵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지네만 보면 죽여야 사는 남자'

필자가 사는 제주 산간지방은 습기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여기에 근처에 축사까지 있는 탓에 각종 벌레와 나방, 지네가 집 주변은 물론이고 집 안까지도 등장합니다.

▲ 지네와 도마뱀 싱크대와 이불 속에서 나온 지네, 욕실 바닥의 도마뱀, 벽과 옷장 속의 거대한 바퀴벌레들. 그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자고 있는 이불에서 나온 사인펜 크기만한 지네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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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모기는 애교 수준이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각종 벌레가 여름이나 겨울에 상관없이 나옵니다. 손바닥만한 나방을 시작으로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 않는 바퀴벌레에 뭔지도 모를 이상한 벌레들 때문에 우리집이 마치 곤충박물관이 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파충류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도마뱀이 볼일 보고 있는 화장실을 지나갈 때면 군대까지 다녀온 남자도 깜짝 놀랍니다. 우리 집은 지네가 가장 무섭습니다. 제주에서 뱀에 물려 병원에 갔다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지만, 지네에 물려 응급실에 간 사람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지네는 물리면 간혹 물린 부위가 퉁퉁 붓고 열이 날 수도 있는데, 이런 지네가 두 살짜리 아이와 함께 자는 이불에서 나오면 그날은 잠을 포기하고, 지네 색출 및 박멸 작업을 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평생 자란 사람들이 이런 벌레와 지네, 나방, 도마뱀을 집 안에서 보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요? 필자의 아내도 농촌에서 자랐지만 처음 지금 사는 농가주택에 이사했을 때는 각종 벌레 등이 약을 쳐도 기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걱정하다 도시로 그냥 가려고도 했었습니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살면서 그 공간에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은 그 집을 나가고 싶어집니다.

넓은 창문으로 폼나게? 난방비 월 50만원 이상

잡지나 TV에서 보면 바깥 풍경이 보이는 넓은 통유리가 있는 거실이 너무 멋있게 보입니다. 그러나 농촌에서 살면 현실은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물론 비싼 고급 자재를 사용하여 새로 지은 집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농촌주택은 단열이 되지 않아 겨울이면 밖의 풍경보다 오로지 집 안 온도를 유지하는데 급급합니다.

아직도 대한민국 농촌 지역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지역에서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데, 요새처럼 기름값이 비싼 경우 한 드럼에 27만 원에서 많게는 29만 원까지 듭니다. 서울에 살 때처럼 따뜻한 난방을 하려면 최소한 한 달에 기름을 두 드럼 이상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달에 두 드럼씩 든다고 계산하면, 최소한 5개월은(11월에서 3월까지) 난방을 해야 되는 농촌지역에서 난방비로만 연 270만 원이 듭니다.

▲ 보일러 겨울이면 방한용 비닐 차단막과 두꺼운 커튼을 출입구에도 설치한다. 세 드럼짜리 기름보일러에는 기름값이 무서워 겨우 한 드럼만 채운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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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보니 비닐로 창문을 막거나 두꺼운 방한용 커튼 설치는 필수이고. 그러고도 기름보일러 밸브를 거실 또는 방 하나에만 열어 놓고 온 가족이 전기장판을 깔고 같이 자기도 합니다. 이렇게 노력해야 겨우 겨울철 난방비를 줄일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기름값으로 쓰게 됩니다.

우리 집처럼 평수가 작고 가족이 많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두 가족이 사는 집이 평수만 넓다면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철에는 추위에 덜덜 떨던지, 아니면 돈으로 집안을 데우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 살 수밖에 없습니다.

▲ 귀촌텃밭 텃밭에 심은 대파와 배추. 농약을 치지 않은 배추는 벌레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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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텃밭을 조금이라도 가꾸어 본 사람은 그나마 괜찮지만, 농사 한 번 지어보지 못한 사람은 텃밭이라도 하려고 해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비료와 거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모종을 심어도 작물은 자라지도 않고, 농약을 치지 않으면 먹을만한 크기로 자라지도 못하고 병충해 때문에 죽습니다.

잡초는 어찌나 잘 자라는지 예초기를 사용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풀을 베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텃밭이 아니라 정글이 됩니다.

준비된 귀촌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 귀촌 석양이 지는 모습이나 일출을 보면서 자연에 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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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해서 좋은 집을 구하거나 짓고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집을 어느 정도 해놓고 막상 살아봐도 그리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시골에서 사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벌레나 추위 등이 힘들게 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자연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입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준비된 귀촌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단지, 귀촌을 아파트에 살 때처럼 아늑한 공간을 농촌으로 옮겨 놓고, 현관문을 나가면 자연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환상으로 생각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며 사는 삶으로 바꾸고 싶다면 최소한 귀촌이 무조건 낭만적이지 않다는 마음가짐은 해야 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농사짓고 살면서 안 해 본 거 없이 다 해 본 듯하다. 개집도 지어봤고 사람 사는 집도 지어봤다. 염색을 해서 옷도 지어 입었고 구들학교에 가서 구들 놓는 기술도 배웠다. 구들 학교는 말이 학교지 그냥 즐거운 여행이자 놀이였던 기억이다.

나이가 차고 때가 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농사짓고 살면서야 비로소 비행기 타고 외국에도 나가게 되었다. 외국 여행은 귀농 17년 동안에 자그마치 중국 네 번. 인도 한 번. 일본, 독일, 필리핀은 각각 일주에서 열흘 정도씩 다녀왔고 인도는 오로빌공동체에 갔었다. 북유럽 5개국을 열흘 동안 돌아보았고 호주도 갔다 왔다.

진짜 농부는 잘 놀 수 있는 사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겨울 농한기를 이용하여 석 달짜리 영화학교를 다녔는데 급기야는 내 작품이 상영되기에 이르렀다. 지방지에도 크게 실리고 영화감독(?)과의 대화라는 자리도 마련되어서 백여 명의 관객들 앞에 서기도 했던 일이다.

영화학교는 물론 공짜였다. 시골에 와서 살면서 대부분 공짜였다. 외국 여행도 공짜가 많았고 전주국제영화제도 세계소리축제도 공짜 표가 심심찮게 생겨서 매년 구경을 갔었다. 이럴 수 있었던 데는 비닐농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닐농사는 자연도 망치지만 사람도 잡는 농사다. 농한기가 따로 없이 늘 농번기라고 할 수 있다. 밤과 낮도 없을 때가 많다. 요즘 토마토농사 시설재배 하는 사람들은 일주에 세 번 정도를 선별·포장 작업을 하느라 밤 12시까지 일을 한다. 규모가 2천 평 정도면 일꾼 서너 명 고용해서 한다. 

그러나 겨울도, 비 오는 날도 비닐 농사를 안 하면 다 노는 날이다. 17년 동안 한 번도 비닐농사를 하지 않아서 다른 농부들 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어느 해 겨울은 옆 동네 풍물패에 끼어서 쇠와 장구를 쳤다. 공연은 못해 봤지만 기본 가락을 익혔고 어느 겨울은 단소 강습을 나가기도 했고 기타교실에 등록하여 청음력을 키우고 발성연습도 했다.

아쉽게도 전 과정을 마친 곳은 별로 없다. 여기 장수에 와서도 문인화 반을 다니면서 4군자도 그리고 전시회도 가곤 했지만 도중에 그만 두었다. 그냥 강박의식 없이 놀러가다시피 참여하다보니 과정을 끝내야 한다는 의지가 잘 작동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혼자서 먹을 꺼내 놓고 붓을 들곤 한다.

놀 수 있는 사람은 매여 있지 않아야 한다. 축산을 하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꼭 그 시간에 짐승 먹이를 줘야한다. 자기가 못하면 누군가를 대신 하게 해야 한다. 앞에 예로 든 비닐농사도 마찬가지다. 겨울에 돈 들여 불 때 가면서 짓는 농사를 대충대충 할 수 없다.

사실, 일에 매여 밤낮 없이 일 년 내내 일하고 사나, 자연에 기대서 무리 않고 사나 큰 차이 없다. 돈 많이 버는 쪽으로 살면 쓰는 돈도 비례해서 커진다. 그때 쓰는 돈은 대개 자연을 훼손하고 사회 공공재를 망가뜨리는 쪽이다. 도리어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사는 게 건강도 지키고 마음도 지키고 자연도 지킨다.

계절과 절기와 날씨와 기후에 따르는 생활. 거기에 영향 받는 삶. 이게 놀이와 문화의 출발지점이 아닐까 싶다. 무릇 예술이라는 것은 삶의 승화이자 차원 변환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이 굳건한 토대가 되어 그 위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는 것이 문화고 예술이라는 것이다.

농부의 달력은 다르다

대보름이나 한식, 단오, 백중 등 세시풍속이 다 그런 것이다. 계절 변화와 생활의 변곡점에서 몸과 농사일을 조절하는 행사다. 세시풍속을 월령(月令) 또는 시령(時令) 등으로도 불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태음력을 기준으로 우주운행의 주기성과 변환성을 같이 담아 낸 세시풍속은 참 농부의 삶을 담고 있다.

노동과 분리되지 않은 놀이. 자연과 나뉘지 않은 노동. 완급이 조절되는 주기성과 변환성. 이보다 완벽한 무대가 어디 있겠는가. 농사짓는 사람의 터전이 바로 이렇다. 천리를 역행하지만 않는다면 농민이야말로 가장 예술적인 존재이다. 시인 박노해도 그렇게 말했다. 농부가 예술가라고. 온 누리를 무대로 매일 매일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세상을 매일 디자인하고 쇄신하는 사람.  바로 농부다.

시골에 와서 살면서 그동안의 1주 단위의 달력이 슬그머니 장날 중심인 5일 단위로 바뀌었다. 일요일 개념이 없다. 국경일도 별 의미가 없다. 시골살이는 빨간 날이라고 공휴일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귀농해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귀농해서 요일 개념이 바뀌는 체험을 누구나 한다. 쉬는 날은 하늘이 그때그때 정해주고 스스로 삶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정하는 것이지 인간의 기념일 중심이 아닌 셈이다.

며칠 전에 우리 고장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산골마을로 쓰레기공장이 들어온다고 하여 두 달 넘게 집회도 하고 차량 시위도 벌이는 중에 열린 공청횐데 낮 두시에 열렸다. 일기예보를 보고 잡은 날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도시인들이 공휴일이나 주말에 촛불집회를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공휴일을 스스로 만들고 그 날 사람들이 모여 공청회를 한 것이다.

실내 집회를 할 때는 이왕이면 바쁜 농사철이니까 비 오늘 날을 잡고, 길거리 시위를 할 때는 맑은 날을 잡는다. 날짜부터 잡아 놓고 날씨가 어떨지 걱정하는 도시사람들과 다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것은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에 들어가 사는 장소 중심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과 생활의 흐름을 일치시키는 행위라 하겠다.

귀농해서 살려고 할 때 여러 가지 고려 사항 중 하나가 문화생활도 포함되는데 무대공연 중심의 문화를 생각하면 당연히 문화혜택이 적은 곳이 시골이다. 영화관이 없는 시ˑ군이 많고 뮤지컬이나 유명가수의 공연도 시골에는 없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도시에 살더라도 얼마나 영화관이나 연극공연장을 자주 찾으며 뮤지컬이나 유명세 있는 가수의 공연을 보는가? 실상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귀농해 살면 문화 혜택이 빈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아닐까 싶다.

지역 축제와 마을 행사

며칠 전에는 우리 마을에서 바닷가로 봄놀이를 다녀왔다. 엊그제는 아랫마을에서 봄놀이 가는 날이었는데 마침 그날은 면사무소 앞에서 주민잔치가 열리는 날이었다. 면사무소 앞 주민잔치에는 옆 면에서 응원 차 풍물패가 와서 사물놀이를 해 주었다. 응원을 온 이유는 쓰레기 공장의 사업 불허가 났기 때문이다.

면민의 날, 군민의 날, 장애인의 날, 노인의 날, 지역 축제 서너 가지, 마을 계 정기총회, 지역 문화원 행사, 사진이나 문학 동호회의 행사 등등 운동장이나 저수지를 무대로 열리는 행사들이 1년에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시골 어르신들은 장날이면 만 원짜리 한 장 들고 장에 가면 이 마을 저 마을 사는 친구들 만나 순댓국에 소주 한 병 시켜 놓으면 하루가 저문다.

면민의 날이나 노인의 날은 면 단위로 열리는 행사인데 같은 날 열리지 않는다. 이른바 유권자 관리(?) 차원이 아닐까 하는데 군수님이 오셔서 축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군청 누리집에서 행사 날짜를 확인하고 면 마다 돌면서 논적도 있다. 수건 한 장은 기본이고 푸짐한 점심에 재수 좋으면 사은품 추첨에 당선되기도 한다.

지역 축제가 천편일률적이고 무대 중심의 연애인 공연도 많지만 실내행사는 드물다. 들판이나 산기슭에서 열린다. 판에 박은 품바타령이나 한 물 간 가수들이 등장해도 관객인 주민들이 아무데서나 덩실덩실 흥을 내서 육자배기 소리를 할 수 있는 조건이라 무대와는 별도의 무대가 마당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전형적인 마당놀이 문화다.

요즘은 면 단위의 마을 풍물패 활동도 활발하다. 경연대회도 열린다. 곳곳에 큼직한 문화시설도 들어 서 있다. 주민자치센터는 갖가지 교양프로그램이 연중 진행되고 재주 있는 귀농자들이 강사로 출연한다. 삶 중심으로 형성되는 문화단위들이다. 생활과 밀착된 살아 있는 문화다.

봄에는 풍년 기원제, 가을에는 추수 감사제에 녹색당과 옛 민주노동당, 그리고 녹색평론 모임 등이 전통을 살리는 새로운 농촌문화를 일구기도 한다. 추렴하듯이 집에서 먹는 음식을 싸 와서 모임 때 공동식사를 한다든가 장구와 북, 쇠와 징이 기본으로 동원되고 누구나 소리 한 자락을 하는 모임들을 쉽게 본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강대인 선생은 농장에 갈 때는 쇠와 장구를 들고 갔다고 한다. 작물들도 신명을 돋우기 위해서인데 놀이가 일과 결합된 모습이라 하겠다. 놀이 중 최고의 놀이는 '일하는 놀이'가 아닐까.

최근에는 '교육농장'이라 하여 교육청과 연대해서 학생들의 야외학습장으로 농장이 활용된다. 다양한 생활체험을 자연 속에서 살아있는 공부거리로 삼는다.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가 되는 셈이다. 생활을 지속케 하는 노동 속에서 인류는 지혜를 발달시켰다. 현대 문명은 본래의 생활노동에서 동떨어져 있지만 원래는 공부도 생활 속에서 진행되고 완성되었다. 그것의 복원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면 좋겠다.

이제 여름이다. 도시로 나갔던 출향인들 중 고향 시골집으로 와서 부모도 뵙고 어릴 적 뛰놀던 계곡과 들판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있다. 놀이가 몸도 망치고 삶도 왜곡시키는 도시의 저급한 문화가 옮겨 오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농촌에서 겨우 명맥이 이어지는 살아있는 생활문화가 교류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농촌으로 삶의 거처를 옮겨오는 사람들에 의해 이런 교류가 더욱 촉진되길 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살림의 <살림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소박하게 살려고 귀농했는데...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귀농에 관한 환상과 진실②] '귀농푸어'가 되어버린 김씨 이야기

12.11.12 15:59l최종 업데이트 12.11.12 17:44l
오마이뉴스  오창균(ockhh) 기자



"왜 귀농하려고 합니까?"


얼마 전, 불교귀농학교 회향식에서 도법스님이 한 말이다. 귀농학교가 시작되던 때부터 귀농에 대한 꿈을 가진 이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스님은 30여 명의 귀농교육생들 앞에서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

누구도 선뜻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야 몇 사람이 왜 귀농을 하려는지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서, 무한 경쟁하는 자본주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는 즉답들이 나왔다. 그러자 스님의 즉설이 이어졌다.

"도시에서 행복하지 않는데 농촌으로 귀농한다고 저절로 행복해지거나 경쟁하지 않는 삶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여러분들의 착각입니다."

일순간 또 다른 침묵이 흘렀다.

올해 귀농인구가 사상 최대인 1만 가구를 넘었다고 한다. 농촌인구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귀농했다가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 지인 김선일(43, 가명)씨가 바로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이다.

 귀농에 대한 섣부른 기대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귀농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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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2년만에 다시 서울로

김선일씨는 16년 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귀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도법스님의 말씀을 품고 귀농학교에 다니면서 착실히 귀농을 준비했다. 정착할 지역을 찾아다닌 지 몇 년, 드디어 강원도 어느 농촌마을에 폐가를 얻어 아내와 갓 돌이 지난 아들을 데리고 서울을 떠났다. 때는 IMF의 검은 망령이 중산층 아래의 삶들을 파괴하던 1999년, 반지하 전세금 2500만 원이 새 삶을 펼칠 종잣돈이었다.

김씨는 품팔이 농사일과 궂은일도 마다않고 나섰다. 동네사람으로 빨리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농촌의 인심도 각박한 시대를 피할 길은 없었던지 굴러온 돌이 알아서 피해가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1년 뒤 옆 동네로 집을 옮겼다. IMF로 인해 평탄한 삶에서 튕겨져 나온 노숙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벌목하는 일을 하면서 살림살이를 꾸려나갔다. 그러면서 농사지을 땅을 알아보았지만, 때마침 펜션 투기바람이 불어닥쳤다. 전세금 250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땅 값이 치솟았다. 안정적 수입조차 없어 경제적으로 쪼들렸던 김씨는 정착이 불가능하리라 보고, 미련 없이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왔다. 2년만의 리턴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서울에는 전세대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농할 때 땅 사려고 가져갔던 반지하 전세금 2500만 원을 그대로 가져왔건만 그 돈으로 전셋집을 구하기란 불가능했다. 선택할 것도 없이 처갓집 방 한 칸을 얻어 다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전에 다니던 직장에 취직이 되었고, 아내도 보험설계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도시로 다시 돌아온 생활이 행복할 리 없었지만 귀농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기에 1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휴일이면 다시 정착할 귀농지를 찾아서 전국을 누볐다. 한창 귀농 열기가 뜨거웠던 시기라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다양한 지원 사업이 쏟아졌고, 지원금 액수를 놓고 정착지를 결정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귀농인구를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경쟁도 뜨거웠다.

 귀농정착대출금은 집을 짓는데 쓰였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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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정착금 받아 2차 귀농을 실행했지만

2002년, 김씨는 1년여 만에 서울생활을 다시 청산하고 두 번째 귀농을 실행했다. 첫 귀농의 경험을 떠올려볼 때, 처음부터 내 땅을 가지고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아껴둔 전세금 2500만 원으로 산중턱의 비탈진 땅 300여 평을 구입하고 4% 이자의 귀농정착금 4500만 원을 10년 뒤에 갚는 조건으로 대출을 받아서 가족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아담한 집과 농사지을 밭을 개간했다.

귀농을 하게 되면 동네 사람이 빨리 되어야 한다는 첫 귀농지에서의 경험 때문에 여기에서도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고 찾아다녔다. 조금 손해 보는 일이라고 해도 묵묵히 참아내며, 마을일이라면 '내 일'보다도 먼저 거들고 나섰다.

농사가 점차 손에 익을 무렵에는 여러 귀농인들과 함께 협동 작목반을 만들어 농산물과 발효효소 등을 공동 생산했다. 이를 도시 소비자들과 직거래하거나 장터를 통해 판매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나 작목반도 지자체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사업내용이 많아지고, 작목반의 방향을 놓고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김씨는 몇몇 귀농인들과 함께 탈퇴를 하게 됐다.

 수세미 농사를 지어서 발효효소를 만들기도 했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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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한 김씨 부부는 인터넷카페를 통해 알게 된 도시민들과 지인들에게 농산물 직거래를 하게 됐다. 많게는 한 달에 40~50가구에 정기적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등 순조롭게 출발했다. 부족한 농산물은 지역의 특산물과 농산물을 받아서 보내기도 하고, 두부와 된장 만들기 같은 체험을 진행하기도 하면서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이는가 싶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김씨가 허가 없이 된장을 판매한다며 군청으로 식품위생법 위반 고발장이 접수됐다. 공무원이 집에 다녀가고 법조항의 압박을 받게 되자 김씨 부부는 허탈감을 넘어 분노했지만, 현실은 가난한 귀농인을 변호해 주지 않았다. 이후 경찰 조사를 거쳐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 후로 직거래는 중단되었다. 이후부터 김씨는 산림벌목을 하는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여 일을 하고 있다.

귀농 성공자보다 '귀농푸어'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귀농 방식은 사람들의 생각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규정할 수 없다. 내 귀농은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김씨에게 자신의 귀농을 성공이나 실패로 규정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10년 전, 귀농할 때 받았던 정착지원금 4500만 원은 다 갚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농협에서는 원금상환을 못할 처지에 놓인 농민에게 또 다른 대출상품을 권장한다.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7% 이율로 대출을 받아서 4%로 받은 처음의 대출금을 갚았다. 앞으로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한 이자만 갚다가 원금상환일에 또다른 대출을 받아서 갚아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렸다. 신용카드 돌려막기와 다름 없다."

 단순 소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그에게 빚은 큰 짐이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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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한 지 20년이 넘은 어느 농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억대 수익 올렸다고 언론에 소개되는 농민들이 실상은 빚의 덫에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고. 늘어가는 빚 때문에 한탕주의 농사가 아니면 헤어나올 수 없어 도박 같은 농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 농부 또한 현재 가진 것을 모두 털어내야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했다.

충분한 준비 없이 귀농을 한다거나 정착지원금 대출을 받았다가는 '귀농푸어'가 될 수도 있다. 김씨는 자신의 경험과 그동안 겪어본 귀농인들을 보면서 '빚' 없는 귀농을 하라고 충고한다. 도법스님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도시적인 소비방식을 버리는 내면의 깨달음이 먼저 선행되어야만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귀농하려고 합니까?"



[귀농에 관한 환상과 진실③] 농림부 귀농귀촌의 꿈, 믿지 마십시오

12.11.15 15:47l최종 업데이트 12.11.19 11:18l
오마이뉴스   김병기(minifat)       장지혜(jjh9407)

귀농초보 월수입 최대 50만원...그래도 할래?


 농림수산식품부 '귀농귀촌의 꿈' 광고 일부
ⓒ 농림수산식품부

"여보, 우리 귀농할까?"
"귀농이요?"
"어때?"
"좋죠? 근데 공기만 먹고 살 수 있나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귀농귀촌의 꿈, 준비된 귀농으로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귀농귀촌의 꿈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공중파를 통해 나오는 농림수산식품부의 40초짜리 광고 '귀농귀촌의 꿈' 일부다. 광고를 보고 있자면 영농교육도 해주고 자금지원도 해주니, 귀농해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의 도움으로 말이다.

하지만 ㈔전국귀농운동본부 박용범 사무처장은 농림수산식품부가 틀렸다며 "귀농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옮겨 놓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의 자금지원도 담보 등 조건이 까다롭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문가도 어렵다는 '귀농귀촌의 꿈'. 그냥 접어두어야 할까. 그는 꿈을 접는 대신, 마음가짐을 바꾸라고 말한다. 박 사무처장은 "귀농의 최종 목표는 욕망을 그대로 두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욕망 자체를 줄이는 데 있다"며 "소득보다는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1년 차 귀농자가 월 50만 원을 벌면 많이 버는 것"이라며 '자발적 가난'을 강조했다. 시골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므로 고향집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도시의 소비 패턴도 버려야 한다.

이쯤 되면, 귀농의 꿈? 그냥 접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귀농학교 첫 수업 후 환불받는 학생도 종종 있을만큼 귀농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게 그의 주 임무다. "기대치를 낮춰서 내려가야 귀농에 실패할 확률도 줄어든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도 귀농이 매력적인 이유? 바로 자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 박 사무처장은 "귀농을 하면 자기 인생을 스스로 해결하고 판단하는 것, 즉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갖게 된다"며 "먹고 입는 걸 직접 생산할 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전국귀농운동본부 박용범 사무처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도시가 살만하지 않아, 자영업자 붕괴도 한 몫"

 박용범 사무처장
ⓒ 김병기

- 꾸준히 귀농·귀촌현상이 늘고 있다.
"생태 가치를 중요시해 자급자족의 삶을 살겠다는 사람은 꾸준하다. 사회가 말하는 증가추세에 속하는 사람들은 경제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 도시가 살 만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고, 자영업자가 붕괴하고 있는 것도 한 몫 한다. 1997년 IMF가 발생했을 때도 귀농·귀촌자가 많이 늘었다."

- 1996년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창립됐다. 창립 취지 및 하는 일을 소개해 달라.
"IMF가 터지기 1년 전, 자본의 거품이 극에 달했을 때 답은 '반자본'에 있다고 생각했다. 생명과 평화를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시골로 내려 보내야 한다고 말이다. 가톨릭농민회, 정토회 등 14개 단체가 모여서 만들었다. 주로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을 상대로 교육에 집중한다. 귀농학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두 달간 진행된다. 텃밭농사도 지어보고 농가로 현장실습도 간다. 1기수에 50, 60명 정도이며 강좌비는 20만 원이다. 궁극적인 교육의 목적은 정착에 있다."

- 귀농운동본부를 통해 귀촌한 사람은 몇 명 정도인가.
"지금까지 5천여 명이 교육을 받았는데 그 중 20~30%가 귀농, 귀촌했다."

- 주로 어떤 직종 종사자가 이곳을 찾나.
"IT쪽이 많다. 연령대는 40대로 치과의사, 학교 선생님, 기업인 등 다양한 직업인들이 온다. 사회의 정년이 빨라지고, 직장의 미래가 어둡다보니 찾아오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아토피를 앓는 아이를 둔 부모들도 많이 찾는다.

얼마 전 강남에서 예약제로 치과를 운영하던 치과의사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지금은 봉화로 내려갔다. 현직 검사도 농촌생활을 하고 싶다며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귀농했다."

- 귀농자와 귀농운동본부와의 네트워크는?
"귀농지원센터가 전국에 6개 정도 되는데 귀농학교 출신 선배들이 맡아서 일을 하고 있다. 선배들을 통해서 알음알음 귀농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정착률도 그만큼 높다. 귀농학교를 수료한 사람에게는 귀농자인증 마크가 찍힌 스티커를 준다. 보통 귀농자들은 생협 생산자로 들어가기 힘든데 귀농자인증이 있으면 좀 수월하다."

"귀농할 땅 선택은 운명, 그러나 '5W'는 고려해야"

 텃밭을 설명하고 있는 박용범 사무처장
ⓒ 김병기

- '귀농' 성공과 실패의 지침서가 있다면?
"귀농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5천여 명 중 1500명이 내려갔고 그 중 150여 명은 실패하고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귀농에 성공하려면 일단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농촌의 현실은 옛날과 다르다. 외갓집 같은 고향을 생각하면 안 된다. 기대를 많이 하다보면 텃새도 그만큼 심하다고 느낀다.

도시의 소비패턴을 그대로 가져가서도 안 된다. 1년 차 농사자는 월 50만 원을 벌면 많이 버는 거다. 귀농은 소득보다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해 가는 거다. 그래서 '자발적 가난'을 많이 이야기한다. 귀농학교 첫 시간에 '내가 귀농을 해야 할 10가지 이유'를 꼭 쓰게 하는데, 귀농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옮겨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귀농해야 할 이유 10가지를 쓸 수 있으면 빨리 내려가는 게 좋다."

- 귀농할 때 장소는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
"지역의 선택은 운이다. 결혼할 때 인연을 만나는 것과 같다. 꼭 어느 지역에서 어떤 작목을 하겠다는 계획이 없다면 지역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5W'다. 5W의 첫째는 'WATER'. 우선 물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하수조차 부족한 곳이나 상류에 오염원이 동네가 있다. 둘째는 'WON'이다. 이유가 있다. 싼 땅은 길이 안 나있거나 전기가 안 들어오기도 한다. 무조건 싼 땅을 찾으면 낭패보기 일쑤다. 다음은 'WITH'. 누구와 가느냐다. 함께 내려가서 살 사람과 함께 결정하는 게 낫다. 그래야 불만이 줄어든다. 네 번째 'WAY'. 길이 없는 땅이 많다. 지적도를 떼 봐야 한다. 도로가 없으면 집도 지을 수도 없다. 마지막 'WORK'. 그 지역에 맞는 작목을 선택해서 들어가는 게 좋다." 

-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잘 정착했다고 볼 수 있나.
"보통 3년차 이상 돼야 고비를 지나 시골에 정착했다고 말할 수 있다."

- 1~3년 버티는 데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외롭다. 도시에서는 친구들이 옆에 있는데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다. 귀농을 하고도 서울에 자주 가거나 시골로 친구들을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별로 좋지 않다. 그 마을 공동체로 들어가야 한다. 아니면 주변 귀농자들과 교류하면서 외로움을 풀어야 한다."

- 아이들을 데리고 귀농할 경우, 치안과 교육 등을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극단적으로 두 가지 중 한 개를 선택해야 한다. 어느 정도 교육에서 욕심을 내려놓던지, 아니면 직접 학교 운영위원회로 들어가서 학교의 운영방법을 대안학교처럼 바꾸던지."

'생태귀농'만이 정답... 자립자족의 삶 살아야

 귀농운동본부 텃밭.
ⓒ 김병기

- 귀농운동본부는 생태귀농을 강조한다. 생태귀농이라는 말이 좀 생소한데.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는데 사람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것이다. 비료, 농약 등 외부 자원을 들여와서 농사를 짓고 마을을 지속시키는 게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농사를 짓자는 것이다. 여기서 자립적인 마을 공동체도 나온다."

- 정부는 대농과 기업농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반면, 귀농운동본부는 '소농'을 권장한다.
"대농일수록 기계를 써야하고 그러면 단작을 해야 한다. 대농은 비용이 많이 발생할뿐더러 땅도 심각하게 훼손한다. 현재 토양의 평균 유기물 함량이 2%밖에 되지 않는다. 땅의 지력이 훼손되고 있다. 대농은 생태적이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소농만이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생각이다. 보통 3천 평 정도면 소농이라고 이야기 한다."

- 귀농·귀촌자들을 위해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귀농자들이 내려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의료, 문화 등 서비스 말이다. 개개인에게 지원하는 것보다 마을 살리기를 통해 공동체 전체에 지원하는 게 낫다. 마을 살리기를 하려면 인적자원과 조직이 필요한데, 그 대표적인 예가 홍성의 문당리의 마을이다."

- 귀농의 가치에 대해 한 마디 해 달라.
"자연과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귀농은 곧 자립적, 전인적인 삶을 영위하는 거다. 먹고 입는 걸 직접 생산할 때 행복할 수 있다. 도시에서의 욕망을 그대로 두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욕망 자체를 줄이자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해결하고 판단하는 것, 즉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갖는 게 진정한 귀농이다."

10년 전부터 귀농을 꿈꿨던 박 사무처장은 맡은 일 때문에 자신의 꿈을 미뤄둔 상태다. 무조건 2년 안에 자신을 받아주는 땅으로 내려갈 계획이란다. "시골에 내려가면 가족이 먹을 것을 심고, 남는 것은 이웃과 나누며 절대 매이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박 사무처장의 말이 귀농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최근 보도된 바에 의하면, 지난해 귀농가구는 6500여 가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농촌으로 이동한 인구가 12배나 급증했다고 한다. 비단 정부의 부추김 때문만은 아닐 터.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라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귀농, 귀촌. 하지만 박 사무처장의 말처럼 내려놓아야 할 것도, 버려야 할 것도 생각보다 많다. 먼저 펜과 메모지를 준비하시라. 그리고 '내가 귀농해야 할 10가지 이유'를 적어보시라. 답은 보다 쉬운 데 있을지도 모른다.

 도심에서 월 400만 원 벌었으니, 귀농해도 200만 원은 벌겠지?
귀농자가 조심해야 할 5가지
 (사)귀농운동본부 명함
ⓒ 김병기

박용범 사무처장은 명함부터 달랐다. 전국귀농운동본부 6명 활동가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빼곡하게 적었다. 앞장을 보니 큼지막한 글씨로 '국민 모두가 농부'라고 써 있다. 취지를 물어봤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부가 아니다. 농부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책임감있게 먹는 것도 농사의 일부다. 도시에서 상추 하나를 키우는 사람도 농부다. 자연 생태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모두 농부다."

박 사무처장의 말처럼 귀농운동본부는 '생태 귀농'을 중시한다. 몇만 평 규모의 대농보다 3000여 평 정도의 소농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추천하기도 한다. 귀농운동본부 사무실 근처에는 소농 학교가 있기도 하다. 농사 초보생 학습장이다.

다음은 박 사무처장이 말하는 귀농자가 고려해야 할 5가지다. 

1) 도심에서 월 400만 원을 벌었으니, 농촌에서 200만 원은 벌겠지?
천만에! 수익에 대한 기대는 버려라. 도시생활 청산하고 시골 내려가면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더불어 지출도 줄어드니 수입이 반정도로 줄어도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금물. 처음엔 수입이 없을 수도 있다. 배 굶으면서 절약할 생각을 하라.

2) 배산임수가 귀농하기 좋은 곳?
귀농희망자들은 배산임수를 희망하는 경향이 있다. 무주, 진안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그런데 산이 많은 곳은 땅이 비교적 험하다. 마을이 형성 안 된 곳도 많고 인적도 드문드문하다. 불편할 수 있다. 귀농지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3) 개량한복 입으면 왕따?
여러분이 생각하는 귀농자 복장은? 개량 한복 입고 수염 기르고, 큰 개 한마리 끌고 다니는 모습인가. 물론 괜찮다. 하지만 여기서 팁 한 가지. 처음 귀농해서는 개량한복보다 옷장에 넣어둔 오래된 점퍼를 꺼내 입으시라. 새마을운동 때나 썼음직한 모자 하나는 덤. 길 가다가 이웃 주민이 먼저 친구하자며 다가올 수도 있다.

4) '팔랑귀'를 버려라.
귀농하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대부분 '팔랑귀'다. 옆에서 잘 된다는 작목이 있으면 앞뒤보지 않고 투자를 한다거나, 겁 없이 덤빈다. 어떻게 보면 '욕심'이다. 겁없이 덤비지 마라. 그러다가 금방 쪽박 찬다.

5)농사만 고집하진 말자.
농촌으로가면 무조건 농사만 지어야 한다? 아니다. 자기가 가진 문화적 능력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귀농가수'가 있다. '귀농인의 날' 등 우리 행사에도 초청된다. 또, 번역을 할 수도 있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다. 이런 능력을 지역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면 다양한 생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도시의 베이비붐 세대 66%가 농어촌 이주를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최근 들어서 귀농·귀촌 인구가 늘고 있다. 지금도 숨 막히는 도심을 떠나서 하루 빨리 떠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박 사무처장은 강조한다. 귀농은 도피처가 아니라고. 목가적인 삶이 아니라 자연을 벗삼아 지역공동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만한 자세가 된 사람들이 귀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외투 소매자락은 닳아서 너덜너덜했다. 흙먼지가 뽀얀 그의 트럭 안은 농촌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건넨 명함에서도 여럿이 함께하고 있다는 온기가 전해졌다.




'더 무서워진' 육군 3사단…백골 마크로 바꿔 국군 소식과 소리

군에서도 디자인이 강한 단결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최근 육군 전방사단에서 군의 부대마크를 변경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간결한 모습이 보기 좋다. 해골 모습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부대의 상징이라는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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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webmaster@kado.net
승인 2012.12.02

▲ 중부전선 최전방지역인 강원 철원군에 있는 육군 3사단이 부대 마크를 오는 3일 백골로 변경한다. 사진은 새로 바뀌는 부대 마크.

중부전선 최전방지역인 강원 철원군에 있는 육군 3사단이 부대 마크를 변경했다.

3사단은 오는 3일 사단사령부에서 새로운 부대마크를 선보이는 '부대 표지·부대기 선포식'을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3사단은 삼각형 안에 별이 3개 그려진 기존의 마크가 부대의 특성을 살리지 못해 백골로 변경했다.


부대 측은 백골 마크가 '죽을 각오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정신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 부대를 거쳐 간 지휘관이나 장병은 북한과 대치하는 최전방의 부대로서 마크가 용맹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동안 개선을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골부대는 6·25전쟁 당시 자진 입대한 서북청년단원들이 죽어서도 고향땅을 되찾겠다는 의미로 철모에 백골을 그려 놓은 데서 유래했다.

지난 1950년 10월 1일에는 38선을 처음으로 돌파, 국군의 날 제정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최근 천안함 사태 이후에는 '북괴군의 가슴에 총칼을 박자'는 강경 구호를 내걸었다가 북한군 최고사령부로부터 군사적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주민 일각에서도 부대 담벼락 등에 내건 각종 강경구호가 미관을 해친다고 지적해 일반인들이 다니는 도로 주변은 지역 명소 그림으로 교체했다.

인사계획장교 지성준 소령은 "적이 가장 무서워하는 백골 마크로 부대 표지를 개선, 적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강한 부대로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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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3사단 신 부대표지·부대기 개선 선포식

강원도민일보 진교원 
승인 2012.12.04


▲ 육군 3사단은 3일 오전 사단 사령부에서 사단 예하 부대 지휘관 및 장병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운 부대표지·부대기 개선 선포식을 가졌다.


육군 3사단이 ‘백골’ 을 새겨 넣은 신부대마크(사진)를 선보였다.

육군 3사단(사단장 윤완선)은 3일 오전 사단 사령부에서 사단 예하 부대 지휘관 및 장병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단의 상징인 ‘백골’ 을 강조하는 부대정신을 담은 새로운 부대표지·부대기 개선 선포식을 가졌다.

이날 새로 선보인 부대표지는 기존의 표지에 백골을 넣어, 부대 상징의 의미를 살린 가운데 부대표지의 삼각형은 3개 연대의 강력한 전투의지를, 청색은 청결과 순수를, 백색은 백의민족·평화를, 3개의 별은 별과 같이 영원한 조국의 발전을 각각 상징하고 있다.

특히 백골마크는 ‘죽을 각오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필사즉생)’,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수사불패)’, ‘전우가 내 형제요, 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골육지정)’ 의 백골정신이 담겨 있다.

철원/진교원 kwchin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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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신부가 폐백할 때 절은 누구한테까지 하여야하나 세시풍속과 문화

폐백이나 결혼 예식에 대하여 궁금한 것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다음사이트 홈&리빙에서 스크랩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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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신부 폐백할 때 절은 누구한테까지?

폐백은 새신부가 시댁어른께 드리는 첫 인사

베이비뉴스 | 웨딩뉴스팀 신세연 기자 | 입력 2012.11.3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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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백 음식으로 쓰이는 대추·밤 고임. 대추와 밤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해 폐백 시 시부모가 신부의 치마에 던져주며 덕담을 건넨다. ⓒ베이비뉴스

많은 사람이 결혼식 하면 하얀 웨딩드레스와 검은 양복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조상의 결혼식은 달랐다.

먼저 용어도 '결혼(結婚)'이 아닌 '혼인(婚姻)'이라 칭했고, 신부는 하얀 웨딩드레스 대신 공주나 옹주가 대례복으로 입었던 원삼과 활옷을 입었다. 신랑은 양복 대신 관리가 입던 모자와 관복인 사모관대를 입었다. 결혼식 장소도 오늘날처럼 예식장이나 종교시설 등이 아닌 신부의 집 앞마당이었다.

신부는 결혼식이 끝난 후에 시집으로 가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신부가 시집에 가서 시부모님과 시집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폐백'이다. '폐백'은 오늘날에도 서양식 결혼식이 끝난 뒤 예식장 내 별도의 공간에서 전통을 지키며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현대의 결혼문화는 서양식 결혼문화와 전통적 결혼문화가 섞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베이비뉴스 웨딩뉴스팀은 ①폐백 ②이바지 ③함 ④예단 순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혼례 문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획기사를 싣는다.

[베이비뉴스 기획 - 전통혼례 문화의 속뜻] ① 폐백

◇ 폐백(幣帛)

'폐백'은 앞서 언급했듯이 시집온 새신부가 시댁어른들에게 처음 드리는 인사다. 새신부가 폐백을 가지고 와서 처음으로 시부모에게 인사하는 절차를 현구고례(見舅姑禮)라고 한다.

혼례가 신부의 집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시집식구들은 폐백을 통해서 처음으로 새신부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 폐백 음식의 의미

폐백을 할 때는 폐백상을 차리게 되는데 종류와 차림이 다양하지만, 통상적으로 밤·대추 고임과 구절판(마른안주), 술을 기본으로 한다. 예산이나 지역 풍습에 따라 폐백닭, 육포, 한과, 곶감, 떡, 전통 엿, 홍삼 정과 등을 더하거나 뺀다.

폐백음식에는 각각 의미가 있다. 밤·대추 고임은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드리는 음식이다. 열매가 많은 밤과 대추처럼 아이를 많이 낳고 돈을 많이 벌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구절판도 시아버지께 드리는 음식으로 '9'는 '가득 찬', '완전한'이라는 의미가 있는 숫자를 통해 부를 상징한다.

육포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드리는 음식이다. 육포의 평평한 면처럼 평안하게 살자는 뜻이다. 폐백닭도 시어머니께 드리는 음식이다. 닭은 예로부터 새벽을 알리는 성스러운 동물로 닭의 부지런함과 다산, 성실함을 본받으라는 뜻이다. 특히 닭은 남쪽 해안지방에 마른오징어로 만든 오징어 닭도 쓰이고 있다. 시조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쌍닭을 올리는데 최근에는 격식에 상관없이 화려하고 풍성한 폐백상을 위해 쌍닭을 올리는 신부도 있다.

이 밖에도 곶감은 관직에 나가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며 엿은 부부가 엿처럼 딱 붙어 금실 좋게 살라는 뜻이다.

어른들은 신부에게 밤과 대추 등을 던져주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덕담을 건넨다. 이는 오늘날에도 전해져 내려오는 풍습이다.

◇ 폐백을 받는 범위

폐백은 신부가 시집에 와서 드리는 인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집식구들만 받는다. 하지만 최근 서양결혼문화와 결합되며 친정부모도 폐백을 받기도 한다. 전통적으로는 시집식구들 중 5촌 친척까지 예를 올린다.

가장 먼저 시부모님께 절을 하고, 그 다음으로 조부모님이나 백숙부 내외, 시삼촌, 시고모 등 3촌계열 식구들에게 절을 한다. 이어 5촌 당숙정도까지 절을 하면 항렬이 같은 형제자매내외와 사촌들까지 절을 한다. 항렬이 같은 형제자매들에게는 서로 맞절을 한다.


ㆍ부모가 알아야 할 똑똑한 훈육 방법 밥상의 지혜

내가 키워왔던 아들과 딸이 이제 성장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태어날텐데 아이양육에 관한 좋은 글이 있어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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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망치기와 버릇 잡기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레이디경향|입력2012.11.26 14:59

ㆍ부모가 알아야 할 똑똑한 훈육 방법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나의 잘못된 양육 방법이 아이를 망치고 있지는 않은지, 내 훈육 방법이 맞는 것인지…. 이런 고민에 빠진 부모들에게 전한다.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인 전략으로 무장한 우리 아이 버릇 코칭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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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열거하는 모습이 혹시 평소 당신의 아이는 아닌가? 아이는 끊임없이 우는 소리를 하고, 졸라대고, 불평한다. 쇼핑몰에서 비명을 질러대고, 식당에서 악을 쓰고, 집에서는 뭔가 못마땅하면 바라는 대로 될 때까지 얼굴이 파랗게 질리도록 울어댄다. 부모가 해주는 것에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히 여기며 심지어 더 해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한다.

이런 일들을 일상처럼 겪는 부모라면 지치고 힘들어 자녀가 원하는 대로 해줘버리기 십상. 이런 일상의 반복이 자녀의 버릇을 망쳤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잘못된 버릇은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응석받이로 자랄 경우 더욱 심해진다. 부모의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지도가 없다면 아이는 결코 만족할 줄 모르며, 자신을 존중할 줄 모르는 존재로 생각하고, 이기적이고 미숙하게 자랄 위험성이 크다.

아이가 지나치게 요구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로 난폭하게 굴어야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아이의 이런 성향을 파악해보면 아이는 한층 단호한 양육 방식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부모들은 이런 아이의 심리를 파악해서 양육을 실천해야 한다.

자녀의 버릇을 잡을 준비가 됐다면 먼저 부모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자. 일단 '사회 비평가'가 되어보자. 이를 테면 쇼핑몰이나 공원에 가서 아이와 함께 있는 다른 부모들을 관찰한 뒤 그들의 양육 형태를 비판하거나 칭찬해본다. 이는 다른 부모들의 양육 형태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양육 기준을 세우는 데도 필요하다. 또 집에서 자신이 아이를 관대하게 대하지 않았을 때의 모습과 그때 자신의 기분을 미리 생각해둘 필요도 있다. 이는 일종의 연습 과정으로, 추후 아이가 버릇없이 굴 때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세운 기준에 따라 아이를 훈육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버릇 코칭 프로그램을 시작하려면 아이에 대한 생각부터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는 아이의 미래가 불안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캠프, 음악 교사, 휴가 등을 사전에 철저히 조사해 부모가 직접 챙긴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결정을 내릴 때는 부모가 모든 것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외식을 하더라도 아이에게 직접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친구의 집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놀았는지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걱정하지 말며 그냥 아이를 믿고 "친구와 재미있게 잘 놀았느냐"라고 말해주자. 그래야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의지하고 기대려는 습관을 하나씩 버릴 수 있다. 버릇 코칭을 할 때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이때는 지나치게 자책하지 말고 다시 원래 궤도로 돌아가야 실패하지 않는다.

또 앞으로 하고 싶은 양육 방식에 대한 몇 가지 단어를 골라보자. 그 단어들을 일기장이나 수첩, 아이 사진 테두리에 적어두고 버릇 고치기를 시작할 때, 그리고 버릇 잡기를 실천하는 기간 내내 들여다보며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동시에 아이스크림, 장난감, 텔레비전 등 부모가 지나치게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는 상징물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는다. 그런 다음 그림이나 다운 받은 사진 둘레에 붉은색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한가운데에 사선을 긋는다. 이는 일종의 '버릇 망치기 금지' 표시로, 이를 작은 표지판이나 포스터, 메모, 컴퓨터 바탕화면 등으로 만들어 수시로 눈에 띄게 한다.

훈육할 때 자주 사용하는 전략 10가지에 대한 장단점


흔히 부모는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전략을 찾아내면 그 전략이 통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부모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거나, 피곤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무기력할 때, 자녀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모를 때 이런 방법을 쓰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반복되거나 상황에 맞지 않을 때는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부모들이 훈육할 때 자주 사용하는 10가지 전략의 장단점을 살펴보자.

1 셋까지 세기

이 방법은 가끔 아이를 움찔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아이들은 금세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 단점이 있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 경우는 아이의 태도를 바로잡도록 경고할 때다. 셋까지 세기는 속임수가 아니라 목적이 분명하고 권위 있는 양육도구로 사용할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전략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강화한다면 아이도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 역시 부정적인 결과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2 타임아웃

이 방법은 아이와 부모에게 잠시 떨어져 흥분을 가라앉힐 귀중한 공간을 마련해준다. 짧고 현명하게 사용할 경우 아이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일관성과 분별력 없이 순간적인 혼란이나 좌절 상태에서 사용한다면 아이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수치심을 안겨줄 것이다.

3 약속하기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모든 것을 해주고 싶어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이라도 따다 주겠다고 약속하고 싶다. 하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반복적으로 받는 아이의 기분은 어떨까. 나중에 부모는 아이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지킬 수 있는 것들만 약속하자.

4 거래하기

"파란색 잠옷 입을래, 초록색 잠옷 입을래?" 부모가 이런 언어 전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결정을 내리고 권위를 행사하는 힘을 잃어버린다. 물어보는 것에 익숙해져 요구사항을 단순하게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기 때문. 선택을 제공하는 것만큼 명백하고 뚜렷한 지시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5 울며 떼쓰기와 벅찬 요구 보상해주기

공공장소에서 울고 소리를 질러대며 떼쓰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쉽게 굴복하게 되고, 아이들은 손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하지만 이것만큼 아이의 버릇을 망치는 길도 없다. 부모가 아이의 떼쓰는 목소리와 행동에 결코 굴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평소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네 말을 더 잘 들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보자. 아이들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 차분하고 단호하게 기다리면 아이 역시 빠른 시간 안에 진정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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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적절해!"

이 단어는 어린아이에게 쓰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이상한 말이다. 아이의 말이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면 "그렇게 하는 건 옳지 않아", "그런 일은 마음에 들지 않아"라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게 좋다.

7 말뿐인 위협


부모는 아이에게 별 생각 없이 위협을 한다. "한 번만 더 옷에 주스를 흘리면 혼날 줄 알아." "장난감을 치우지 않으면 앞으로 장난감 못 가지고 놀 줄 알아." 이렇게 말하면서 부모는 자신이 주스를 닦아주고 장난감을 치워준다. 결국 자신이 직접 해버릴 일로 아이를 위협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자.

8 뇌물 쓰기

이 방법은 대체로 함정이 많은 전략이다. 오늘 숙제를 하는 대가로 비디오 게임기를 사준다면 아이 스스로 숙제를 할 수 있는 동기를 찾기 힘들게 된다. 또 뇌물은 부모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무기력하게 보이게 한다. 뇌물이 좋은 선택일 경우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으려 하는 등 아이의 안전이 위태로운, 극단적인 상황일 때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와 극단적인 상황을 잘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9 충격과 공포 전략

한 번만 요구하고, 그 다음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 아이가 매번 학교에 지각하거나 꾸물거릴 때, 다정하고 참을성 있게 한 번만 "학교에 갈 준비를 하라"라고 말하자. 딱 한 번만이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가 이런저런 일을 해주지 않아서 지각하게 됐다고 소리 지르며 부모 탓을 하면 "벌써부터 준비하라고 말했어"라고 차분하게 대답하자. 그리고 학교 선생님에게는 아이가 제때 준비를 하지 않아 늦었다고 말한다. 선생님을 신경 쓰는 아이라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주의할 점은 '왕따', '학교 부적응', '선생님 기피' 등 뚜렷한 이유로 학교 가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아이에게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부모가 세심하게 아이의 문제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10 떼쓰기

부모에게 좋아하는 것을 빼앗긴 아이들은 엄청나게 악을 쓰고 떼를 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도 굴복하지도 말라. 아무리 시끄럽게 난리를 피워도 적당한 떼쓰기는 건강한 아동기의 일부이다. 떼쓰기는 아이들이 좌절감이나 분노를 배출하고 정서적 평형 상태를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아이가 떼쓴다고 벌을 주거나 비난하지 말고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자. 떼쓰기를 통해 아이가 비합리적인 요구를 하기 시작하면 단호하게 꿋꿋이 버티자. 위협하지도 말고 아이의 화에 맞서지도 말자. 떼쓰기가 끝나길 조용히 기다렸다가 다정하게 아이를 인정하고 말로 부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아이를 지지하자. 버릇 코칭을 하는 동안 떼쓰기의 빈도는 점차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처음 얼마간은 오히려 떼쓰기의 강도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효과적인 훈육 방법 8가지

훈육은 아이의 품성과 도덕성을 가르치는 것으로, 훈육을 할 때는 순간적으로 아이를 혼내거나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인품을 제대로 형성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특히 훈육을 할 때는 아이들이 어떠한 행동을 할 때 어디에서 끝을 내고 시작해야 하는지 명확한 한계와 경계를 정해야 한다. 이는 아이가 자기 조절 능력과 감정 표현, 문제 해결 능력 등의 기술을 배우고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특히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1 공정하게 훈육하라

여러 자녀가 있을 경우 한 아이에게만 훈육이 집중돼서는 안 되며, 아이를 흥분시켜놓고 과잉 행동을 했다고 벌주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또 훈육이 아이가 저지른 잘못의 크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가 던진 작은 눈덩이에 대포알 연타로 받아친다면 뭔가 좋은 생각을 심어주기보다 오히려 분노와 상처만 안겨줄 것이다.

2 합리적으로 훈육하라

부모가 아이의 행동에 적절한 한계를 정하지 않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버럭 고함을 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아이 잘못이 아니다. 부모가 짜증스럽거나 하루 일진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이를 훈육하지 말라. 올바른 훈육은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다.

3 분명하게 훈육하라


부모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똑똑하게 알아야 한다. "착하게 굴어라"와 같은 애매모호한 잔소리보다 "숙제를 하고 나서 친구와 놀아라"라는 식으로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말해준다. 아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말과 언어를 써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의 말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고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4 개별적으로 훈육하라

아이의 구체적인 상황과 본성 및 발달 단계 등에 따라 훈육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아이는 부모의 못마땅한 표정으로도 충분하지만 어떤 아이는 좀 더 적극적인 훈육이 필요하다.

5 일관성 있게 훈육하라

같은 잘못에 대해 같은 방식의 훈육을 규칙적으로 한다는 뜻이다. 똑같은 일에 대해 부모 혹은 양육자가 순간적인 화나 분노 때문에 훈육의 강도를 달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6 분별 있게 훈육하라

사려 깊고 충분한 이유를 갖춘 양육을 말한다. 분별 있는 부모는 자신의 양육법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건강하고 시의적절하며 효과적으로 훈육하고자 노력하자. 좌절감에 빠져 자기 자신을 원망하기보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자.

7 온정적으로 훈육하라


온정은 훈육이 지닌 비장의 카드다. 부모는 종종 분노와 위협으로 훈육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넌 끝났어"라는 식으로 매몰차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의 행동에 대해 적절하고 효과적인 한계치와 그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미리 정해놓으면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이 룰을 지키고 분노와 상처가 가라앉으면 다정함과 공감하는 마음을 드러내라.

8 관용으로 훈육하라

부모는 아이가 좀 더 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더 좋은 감정, 공감, 존중으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 아이가 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는 우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엄마가 너에게 화를 낼까봐 걱정되니?"라고 물어보며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또 완벽하고자 하는 아이들은 아주 사소한 실수에도 낙담해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으므로 부모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얼마든지 극복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다치게 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아이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해 책임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준다.

버릇을 망치는 양육의 징후 14가지
1 자녀가 부모를 무시한다.
2 자녀가 부모를 함부로 대한다.
3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4 부모가 어떤 결과에 대한 자녀의 잘못을 면제해준다.
5 부모가 자녀의 허드렛일이나 학교 숙제를 대신해준다.
6 부모가 소리를 지르고 잔소리를 한다.
7 부모가 자녀에게 상처를 입히는 모진 말을 한다.
8 부모가 자녀를 어르고 달래 협력을 이끌어낸다.
9 말뿐인 협박을 한다.
10 자꾸만 부모의 입장을 해명한다.
11 부모가 "안 돼"라고 말하지 못한다.
12 부모가 자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두려워한다.
13 자신이 끔찍한 부모라는 생각이 든다.
14 스스로 되고 싶은 부모의 모습을 이따금 잊어버린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시작과 끝의 한계를 정해줘야 하는 이유 9가지

1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2 부모와 또래, 다른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3 가정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4 아이에게 어디까지 용인되고 어디까지 용인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5 부모가 아이의 분노와 거부 반응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보여준다.
6 아이가 가정 밖에서 규칙과 법칙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7 아이의 자제력과 인내심을 강화해준다.
8 충동을 파괴적 분노와 폭력이 아닌, 놀이와 말로 배출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
9 부모가 두려움 없이 자기 의무를 떠맡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에게 보여준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 협찬 / 스튜디오밥(02-545-1452) ■모델 / 정희제 ■참고 서적 /「2세부터 12세까지 우리 아이 버릇 코칭」 (리처드브롬필드 저, RHK)>

[경/공매] 현장답사에서 돈 되는 경매물건 찾는 법 부동산 NewS & 상식

공매나 경매에서 물건을 골라 좋은 물건을 만들기는 쉽지않다. 다음 부동산이야기에 게재된 메트로 (metro***)님의 글을 스크랩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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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metro***)님  2012.11.21 07:05

“임장활동에서 돈이 보인다. 경매는 현장에 많이 다녀볼수록 수익을 높인다.” 실전 고수들이 강조하는 투자격언이다. 실제로 현장 안에서 이뤄지는 임장은 경매 투자수익률과 직결되는 중요한 활동이다. 임장이란 경매에 나온 물건들을 직접 가서 살펴보고 물건 상 여러 문제와 돈 되는 정보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현장 조사'인 셈인데 현장 속에 훨씬 많은 투자정보들이 숨어 있어 경매로 돈을 벌려면 현장답사를 잘해야 한다.

경매 초보자는 주로 경매 서류상의 권리분석에만 치중하는 데 급급해 한다. 권리분석과 세입자 분석 등 경매 낙찰 후 권리를 넘겨받기 위한 기초 단계 조사를 통해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경매 입찰을 결정한다. 따라서 돈 되는 물건보다는 안전한 물건 위주로 입찰하다보니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권리 상 안전한 경매물건은 입찰경쟁률이 10대 1을 넘어서기 일쑤다. 한마디로 들러리 서기 좋은 경매물건 위주로 입찰에 나선다.


그러나 경매 고수들은 다르다. 권리분석 등 기초적으로 조사해야 할 체크사항은 이미 한번 걸러내고 바로 현장을 찾아 나선다. 서류상의 내용보다 실전적인 임장활동이 더 유용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실제 서류상으로만 경매물건을 들여다보면 돈 되는 경매물건을 찾기 어렵다. 경매에서 진짜 돈 되는 정보는 현장을 중심으로 찾아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진흙 속 진주를 찾는 마음으로 현장을 다니다보면 우량 경매물건을 찾아낼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실전 고수들이 즐겨하는 현장조사 노하우는 어떤 것일까. 우선 관심을 갖고 있는 경매물건은 지역 ‧ 종목 ‧ 금액대별로 프린트해놓고 답사 준비를 해놓는다. 관심 가는 물건 모두를 현장답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미리 찍어둔 관심지역 개발호재 물건을 중심으로 투자 적격한 물건을 정해 둔다. 실제 임장에 나서기 전 인터넷, 지역 중개업소, 자치구 자료를 통해 답사할 자료 몇 개를 선정하는 게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현장의 함정부터 찾아라

현장답사 전에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두는 등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경매 법원이 비치한 '현황평가서'와 '감정평가서'를 참고해 중요한 내용들을 토대로 조사목록을 미리 만들면 투자성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초보 투자자가 현장 답사할 때는 공적서류와 현황의 일치 여부부터 체크해야 한다. 서류와 실제 이용 상 차이점을 발견해내는 게 임장활동의 기초이다. 또 감정서를 바탕으로 경계확인, 경매 대상 포함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경매 법률에 정통해 권리분석에 관한한 내로라하는 고수라도 현장에서 기초조사에서 실패하면 성공하는 경매투자라 할 수 없다. 특히 10년 경력의 경매고수라도 경계 확인과 위치 파악을 소홀히 했다가 법적인 분쟁을 겪는 사례를 여러 번 봐왔다. 관리가 소홀한 지방 농지나 임야의 경우 도랑이나 개울, 구거 등 자연지형으로 경계가 정해지거나 상속과정에서 지적도와 실제 사용관계가 다를 수 있어 정확한 위치와 경계확인은 필수 체크사항이다.


세입자 탐문도 임장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확인내용이다. 주택 점유자를 직접 만나보고 명도 저항여부를 탐문하는 것 외에도 폐문부재일 경우 전기‧수도 계량기와 우편물, 이웃주민 탐문을 통해 실제 점유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임대차관계 성립 여부 체크도 서류 상 권리분석 만큼 중요하다. 경매에 부쳐진 지역에 찾아간 이상 해당 주민센터에 들러 전입세대 열람내용을 체크하는 것도 중요한 조사항목이다.

서류상에 보이지 않는 함정 여부도 체크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법원의 매각물건명세서 비고란에 ‘유치권 신고’가 이뤄졌더라도 점유사실이 없거나 경매개시일 이후 점유사실을 현장답사를 통해 밝혀냈다면 유치권 부존재 내용을 밝힘으로써 값싸게 낙찰 받을 수 있다. 또 진입로, 도로문제, 주변 시세와 수용 여부 등 직접 그 부동산을 찾아가 살펴본 뒤 하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감정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낙찰 받아 고수익을 챙길 수 있다.

‘현장 답사’ = 성공 경매 지름길

현장조사에서 기초 사항을 체크했다면 이제는 돈 되는 경매물건인지 여부를 알아낼 차례이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경매투자에서 시세파악을 정확히 하는 것이 관건이다. 경매의 감정가는 기준가격이기 때문에 맹신해선 곤란하다. 호가와 시세, 급매가와 최근 낙찰가를 참고해 최근 통상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가격을 알아내야 한다. 투자 예정지역 내에 개발, 호재가 이어져 가격이 오르는 지역이라면 감정가 수준에 입찰가를 써내도 무방하다.


현장조사에서 빼놓지 말고 탐문해야 할 곳이 공인중개사사무소이다. 지역 중개사는 그 지역 부동산전문가다. 현장답사 시 몇 군데를 들러 그 지역사정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중개업소 벽면에는 예외 없이 자세한 지번도가 붙어있는데 그 앞에서 지역상황에 대해 질문해보자. 블록별 지가, 집값의 형성도와 거래가를 물어보고 최근의 부동산 수요와 거래동향 등 흐름을 탐문하면 지역 트렌드를 읽는데 유용하다.


또 해당지역 내 거래동향과 함께 분양률과 청약률, 공실률 등 기본통계에 대해 조사해보자. 중개업소에는 분양 또는 임대 팸플릿을 가지고 있다. 양해를 구해 구하게 되면 분양가와 시설의 특성, 프리미엄 형성 정도를 알아낼 수 있다. 유사개발 사례에는 건물의 분양시기와 분양 전용율을 확인해보자. 만약 초기분양률이 높다면 이 지역의 부동산수요는 넉넉하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당분간 수요는 정체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장을 답사할 때 지역 공인중개사 말만 의지해서도 안 된다. 중개업자는 그 지역 상황에 대해 호의적으로만 생각해 전망도 밝게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럴 때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영업한 상인이나 지역 유지 및 주민들로부터 탐문을 해보는 게 좋다. 현지 중개업자보다 투자물건 분석에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경매물건의 장단점 등 물건분석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얻어 입찰을 결정하고 가격을 써내는 데 최대한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경매 정보에 건축연도가 오래된 부동산이라도 현장답사를 통해 개보수를 통해 부동산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입찰을 고려할만하다. 일반적으로 오래돼 낡고 허름한 주택은 투자자들이 지레 입찰을 포기해 유찰횟수가 늘어난다. 부정적 인상 때문에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임장활동을 통해 값싸게 낙찰 받아 리모델링하여 양도하거나 임대하면 훨씬 실속 있는 투자처가 될 수 있다.

마지막 현장답사를 마친 후에는 지역정보지나 매물정보지를 종류별로 수집해 매물란에 나온 유사 매물의 시세형성 및 호가와 급매가 수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최근 중개업소에서 실제 거래된 몇 가지 사례나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정보를 파악해 두는 것이 좋다. 최소한 3군데 이상 중개업소에서 거래시세를 알아낸 후 객관적인 가격 형성대를 구한 후 제세금과 비용을 빼고 어느 정도 시세보다 값싸게 낙찰 받을 수 있을지를 산출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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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이름 | 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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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마련] 내가 만드는 부동산 (배우고 부자됩시다) 부동산 NewS & 상식


땅에 대한 좋은 정보인 것 같다. 나도 산을 사보고 했지만 용도가 부적합하여 매도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부동산은 매입하기 전에 그 쓰임새와 주요 내용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아래 글은 다음 부동산노하우에 게시된 전원지기 (pok0***)님의 글이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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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지기 (pok0***)님  2012.11.20 07:55

내가 만드는 부동산 (배우고 부자됩시다)

1) 땅은 역시 최고는 되는 곳의 땅을 사는 것이다

흥해서 나가는 부동산이 최고이다. 망해서 나가는 곳에 들어가면 망할 확률이 80%이다.

미국대사관 옆 E빌딩은 입주자들의 95%가 망한다고 한다.

되는 곳의 부동산에 둥지를 트면 좋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도와주고, 안 되는 곳의 부동산에 둥지를 트면

나쁜 사람들이 찾아와서 망쳐 놓는다. 그래서, 길하고 흥하는 곳의 부동산을 찾아야 한다.

2) 형질 변경

산을 개간해서 밭을 만든다. 딱딱한 산을 깎아서 물렁한 밭을 만들어 놓으면 땅값이 3배 오른다.


3) 큰 나무가 있는 땅을 만든다

내 땅 안에 아주 멋진 나무가 있으면 내 땅은 부르는 게 값이다.

우리는 마을을 지나가다가 수 백년 된 느티나무를 자주 본다. 머리를 쓰는 것은 알아서 할 일

4) 아파트가 생기는 곳의 앞 땅을 산다

이 곳에 아파트 단지가 생길만 하면 주 출입구가 될만한 곳에땅을 산다.

미리 가설계라도 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 내 땅의 용도도 정해 놓으면 좋겠다.

5) 사업 부지 중 개천을 산다

구거: 부동산 용어로 개천. 땅 가운데에 구거만 전문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구거는 전.답의 10%~20%로 아주 싸다.

메울 수 있거나, 돌릴 수 있는 구거이면 사업 시행 시점에 평균 5배 오른다.


6) 야산을 깎는다

야산을 깎을 수 있는 것들이 가끔 있다.

깎아서 평지를 만들 수 있으면 10배 오른다. 포크레인을 한 대 빌려서 열심히 땅을 깎아 내리면 된다.

그 대신 땅 평수가 줄어든다. 그 이유는 자면서 생각해 볼 것.


7) 길을 따라가면서 싼 땅을 산다

몇 번 땅을 사야 할까? 땅은 정가가 없어서 똑같은 땅인데 반 값인 것이 반드시 나온다.

도로를 따라가면서 땅값을 물어보고 그 중 싼 땅을 사면 된다.


8) 맹지를 사서 길을 낸다

몇 번 땅이 맹지일까? 맹지는 길이 없는 땅이다. 맹지를 사서 길을 낼 수 있으면 돈을 번다.

좋은 이웃을 만나면, 길을 내는 만큼 땅을 판다. 사정은 아주 많이 할수록 좋다.


9) 별을 네모로 만든다

땅은 네모날수록 가치가 있다.

별처럼 생기거나 삼각형처럼 생긴 땅을 사서, 동그랗게 만들거나, 네모나게 만들면 된다.

네모나게 만드는 방법은 밥을 먹으면서 생각해 보자.


10) 축구장 옆에 땅, 농구장 옆에 땅을 산다

축구장 옆에 있는 땅이 있다. 축구장은 공용 시설로서, 양평에 1개, 수지에 한 개, 지방은 엄청 많다.

축구장을 내 집 마당처럼 쓸 수 있다. 농구장이 있는 땅도 서너 개 있다.

반포와 송파에 정말 좋은 자리를 봐둔 게 있다. 근처 땅은 사 놓으면 부르는 게 값이다.

몸도 튼튼해지고 내 자식도 "차두리" 될 수 있다.


11) 꺼진 땅을 메운다

푹 꺼지고 물 고인 못 쓰는 땅을 사서 아까 포크레인으로 퍼낸 흙을 주어 담아라.

꺼진 땅이 평지가 되면서 땅 값이 3배가 된다.

울퉁불퉁한 땅도 운동장처럼 평지로 만들어 놓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테니스장 미는 롤러로 문질러 놓으면 더 올라간다.


12) 땅을 합한다

땅은 합할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내 땅에 물린 뒷 땅을 사서 모으면앞 땅 값이 된다.

단, 주의할 점... 쉿! 아주 중요한 것은 분할된 필지를 합해서 1필지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완벽히 된다. 이화여대 앞에서 이런 걸로 돈 번 사람들 무지 많다.


13) 길을 막아서 윗 땅을 싸게 산다

내 길을 통해서 윗 땅 사람이 항상 다닌다. 내가 아랫 땅을 사고 길을 없애 버린다.

윗 땅 사람이 싼 값에 팔고 떠난다.

떠나면서, "내 원 참 더러워서....

"아니면, 밑에 땅 산 가격 만큼으로 길을 팔아서 수익을 챙길 수도 있다.

"돈은 벌었지만, 좀 개운하지는 않다.

개발이 많은 임야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14) 남의 땅을 내 땅처럼 쓴다

내 땅 옆에 놀이터나 공원이 있어서 그 땅은 내 꺼나 다름없다.

골프장 옆 골프하우스나 대학교 옆 캠퍼스 하우스도 아주 매력적이다.

옆에 고궁이 있거나 사적지가 있다면 나는 거의 왕이다.

내 집 뒤에 다른 사람 산이 있어서 내 산이나 다름 없다. 그산주인은얼굴도못봤다.

이런경우를만들었다면정말로Nice Play 했다.

BMW 본사처럼 랜드마크형 건물이 있으면 내 집은 끝내준다.

15) 요 땅 없으면, 아무 것도 않 되는 땅을 산다

A씨나 B씨나 땅은 큰데 서로 합치지 않으면 둘 다 손해다.

가운데 내 땅이 있어서 부르는 게 값이다.

사업계획이 서서 땅 팔라는 연락이 오면 그냥 A씨나 B씨 땅 가격만큼만 불러 볼수도...


16) 저수지를 메운다

저수지를 낀 땅이라 싸게 산다. 저수지를 빼고 나면 땅 모양도 이상했다.

난 통이 크다. 저수지를 메워서 아주 큰 땅을 만들었다.

가격은 10배 뛰었다. 돈 받으면 Bay를 메꿀 만한것을 찾아 나서야겠다.

17) 대수선 공사를 한다

1층을 사서 2층을 만들거나 비슷한 빌딩 2개를 사고 사다리를 연결해서 시너지를 낸다.

지저분한 부동산을 사서 삐까뻔쩍 광을 낸다.

헌 건물을 사서 벽을 뚫고 창을 만들거나,

허룸한 1층을 주차장으로 만드는것도 좋은 방법이다.

18) 전철역 빌딩을 사서 지하도를 뚫는다

위와 같은 방법들을 여러 번 해서 돈을 좀 모았다.

이제는 Main 전철역의 큰 빌딩을 샀다.

이 빌딩은 지하철에서 나와 수십 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 가야한다.

지하도에서 바로 건물로 들어가 수 있는 빌딩인지 잘 살펴본 다음, 사서 뚫으면

건물 값이 100억원 올라간다. 뚫는 데는 보통 20억~30억 든다.

서울시에 잘 알아보면 친절히 상담해 준다.


19) 집이나 축사, 공장, 병원, 묘지를 땅을 보고 산 다음 용도를 업그레이드 한다

아주 낡은 집을 사서 맨 땅으로 만든 다음 빌딩 용지로 판다.

내 눈에는 이런 땅이 아주 많다. 보통 사람들한텐 좀 어렵다.

부동산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20) 입구는 작게, 쓰는 공간은 크게

스타벅스나 커피빈이 주로 쓰는 방법이다.

임대료 비싼 1층의 입구에 작은 매장을 내고, 임대료가 싼 2층이나 지하를 메인 매장으로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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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이름 | 전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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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20년, 어떻게 살까 ?? 귀농관련 자료와 사례

귀농귀촌을 할 때 참고할 사항을 모아둔기로 하고 준비하다 보니 좋은 글이 보인다. 다음 부동산노하우에 게시해준 전원지기님의 글을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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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20년, 어떻게 살까 ??


|2011.08.19 08:25    다음 부동산노하우   전원지기 (pok0***)님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수 있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 를

(꿈꾸고 있는 미래)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미 ‘경제적인 안정’은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준비하는 필수 조건일 뿐, ‘꿈’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여기 진정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과 꿈꾸던 미래를 이룬 사람들이 있다.

미래는 준비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사실이 어쩌면 감사한지도 모르겠다.

귀농을 위해 직업을 바꾸다


토지 컨설턴트가 되어 자기 집 설계하는 A 씨
“이제 집 지으면 평생 살 집인데, 아무렇게나 지을 수 없잖아요. 내 손으로 벽돌 올리고,

내 손으로 꽃나무 심은 진짜 내 집을 짓고 싶어요.”
A 씨가 귀농을 결심한 건 10년전 사업에 실패해 가족과 함께 아무 연고 없던

강릉으로 내려가 살면서부터다.

힘든 시기였음에도 바다가 있고 텃밭이 있어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 알았어요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호박씨 심으면 호박 이 열리고,

오이씨 심으면 오이가 열린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무슨 진리처럼 다가왔지요.”


강릉에서 5년 동안 귀농 준비를 틈틈이 하면서 그는 땅 전문가가 다 됐다.

강릉이라는 지역 특성상 통나무집이나 펜션을 짓는 공사는 흔한 풍경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자주 찾아오는 건축회사 사장과 친분을 쌓으면서

건축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주말이면 건축 현장에 밥 싸들고 찾아가 집 짓는 것 구경도 하고,

업계 사람들을 소개 받으면서 집 짓기는 물론 땅 고르는 법까지 귀농을 위한 준비를

하나하나 공부하게 됐다.

좋아하는 일에는 금세 도사가 되기 마련이듯 자금을 모아 회사를 창업하고

토지 컨설턴트로 이름을 올렸다.

향인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새 터를 잡고 자신과 같이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토지 매매를 알선하거나 전원주택 건축을 대행해 주며

좀 더 구체적인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땅을 소개해 주었더니 집도 지어달라고 하대요.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사실, 남의 집으로 내 집 짓는 연습을 하는 셈이잖아요.

” 짬을 내서 각종 건축 박람회에 가 친환경 건축 자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농사철엔 주변 농가에 가 일을 거들어 주면서 그야말로 실전에 가까운 귀농 공부를 하고 있다.


1 귀농은 삶의 연장이지 다른 삶이 아니다

처음에는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말마다

친구들을 불러내려 바비큐 파티를 하거나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시골 생활에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근거지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인연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갑자기 무릉도원에 안착한 듯 착각에 빠진다면 귀농한 의미가 없어진다.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의미가 있다.

2 내 집은 내가 짓는다는 생각을 갖는다

무턱대고 건축업자에게 내 집 짓는 일을 일임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관여해 진짜 내 집으로 만들어야 애착도 생기고 내가 살기 편한 집을 꾸밀 수 있다

건축법도 어느 정도 공부하고, 관련 책도 많이 볼 것. 또한 무허가 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케이스도 비일비재하므로 주의한다.

귀농을 허(許)하노라

토박이가 인정한 이방인, k씨 부부


‘이도 저도 아니면 시골 가서 텃밭이나 가꾸며 살지 뭐.

전원생활이야말로 노년의 안락을 지켜줄 마지막 보루인 양

입버릇처럼 내뱉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고쳐먹을 것. 벌어놓은 돈이 아주 많거나

조용한 전원에서 외톨이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10년 전 사업을 정리하고 홀로 강화도로 내려온 k씨는

외지인이 아닌 온전히 ‘덕하리 사람’으로살아가기 위해 7년의 준비 기간을 가졌다.

강화도에 내려가자마자 마을 이장댁을 찾아 주민들과의 물꼬 트기부터 시작한 그. 처음엔

시큰둥하던 마을 사람들도 마을의 경조사, 대소사는 다 찾아다니며 아는 척을 해오는

그를 보고. 언제부터인가 막걸리 한 사발, 소주 한잔을 건네며 마음을 터오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마을 사람들 눈에 그가 괴짜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산자락에 집터를 닦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7년을 생활했으니.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얻은 후에 집을 짓자는 심사도 있었고 집을 짓게 되면

내 손으로 설계하겠다는 마음에 집터와 똑같은 크기의 비닐하우스 안에 살며

소꿉놀이 하듯 화장실, 주방, 거실의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경향 하우징 페어,

동아전람과 같은 건축 박람회도 7년 동안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따라다녔다.

아카시아나무 천지였던 산비탈에 자그마한 텃밭이 생기고,

정원이 생기고 자리를 잡아가자 서울에 남기를 고집하던 아내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내의 이름을 따 ‘양화농원’이란 자그만 문패까지 내걸고 완성한 부부의 투박한 흙집.

앞뜰엔 여느 시골집과 같이 상추며 고추며 오이가 자라는 텃밭이,

뒤뜰엔 주말마다 찾아오는 도시 손님들을 위한 조경 잘 된 정원이 숨겨져 있다.

진짜 농사꾼이 되기 위해 지난해 농업 학교까지 수료했다는 k씨.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제집 찾은 손님을 어찌 빈손으로 보낼 수가 있냐며

손수 기른 채소들을 잔뜩 손에 들려주는 인심은 영락없는 시골 사람이다.


1 마을 이장을 찾아가라

무턱대고 집을 짓기보다 마을의 어른인 이장을찾아 양해를구할것.

내 땅에 내가 집을 짓겠다는데 무슨 양해를 해야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

눈엔 생판 처음 보는 외지인이 달가울 리 없다. 시골에서 외톨이로 살 게 아니라면

이장을 통해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터나갈 것.

2 귀농을 경험하기 전엔 귀농을 꿈꾸지 마라

최소한 사계절은 농사를 경험한 후 귀농을 결심하자 벼농사까지 지어 먹는

거창한 것은 아니어도 텃밭에 쌈 채소 키워 먹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

귀농 학교처럼 전문적인 교육 기관의 힘을 빌리거나 현지 주민들에게 자문을 구할 것.

3 전원생활, 현대 문명과 병행하라

전원생활이 은둔 생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 있는 자녀와 친구들과의 지속적인 왕래를 위해서는

자동차와 컴퓨터는 전원에서도 기본이다.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고, 배울 만한 것은 배우고 떠나라.

감사 합니다. 하단에 추천추천하기한표.부탁드립니다.

고수이름 | 전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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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let3*** 신고
   좋긴한데.. 겨울에 외풍 진짜 세다는 것...아무리 이중창 해봐도..겨울에 외풍 막 들어오고 기름값 수십만원 나오고..기름보일러 못떼고...얼어죽죠..한달에 50만원은 나오지 않을까?? 11.08.21 21:22  맞습니다..시골 사람들 못배우고 할배 할매 밖에 없고 가진 것 없고...성질 드럽고 정신 이상자 많습니다... 착한 사람도 많은 대신에 정신나간 꼴통 고집불통도 많다고 봐야 합니다... 못가진 자들이 성질 이상한 것 다 아시죠?? 가진자는 여유롭고 못가진자는 꼴통인겁니다.. 11.08.21 21:24  시골에서 병원도 없는데 개고생 하지 마시고... 중소도시 변두리에 보면 전원마을 단지 있습니다..그런 곳이 ㅇ좋을 것 같아요..도시도 가깝고 시골 느낌도 나고...깡 시골은 못써요...병원 없어서리...무식한 사람 천지고요.. 11.08.21 21:25

전원지기 pok0*** 신고
  말죽거리님은 단열이 안된 옛날 움막같은 집을 생각 하시는 군요. 요즘 전원주택 잘 짓읍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난방비 걱정 뚝 임니다. 지열 보일러를 시공했을경우 45평(아파트의 55평 크기)의경우. 추운 겨울3개월 평균 난방비 12~15만원. 심야전기 시공 경우. 추운 겨울 3게월 평균 난방비 20~25만원. 기름 보일러 시공 경우. 추운 3개월 평균 난방비 30~35만원 정도 이면 실내온도 25도 이상 유지 합니다. 그대신 봄가을은 한겨울의 3분의1 정도 이고 여름에는 한푼도 안들어 가며 관리비가 전혀없고 텃밭에서 무공해 채소를 가꾸어 먹으니 생활비가 전혀 안듬니다.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종합병원. 전철역. 5일마다 열리는 시골 5일장인터넷 쇼핑 으로 주문 하면 다음날 배달되는 택배. 아주 쾌적한 생활을 함니다. 아파트는(55평형 크기)의경우. 추운 겨울3게월 평균 난방비(도시가스)의 경우 20~25만원. 일년 내내 매월 내는 관리비가 10만원. 많이내는 곳은 15~20만원 넘는곳도 있더군요. 전원 주택은 아파트 관리비 만으로도 식생활비 됨니다.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17만원 갤럭시S3' 6만원 요금제의 비밀 '충격' IT와 컴퓨터,전자상식

정말 통신요금이 과소비를 부추키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갤럭시S2를 사용하지만 핸드폰 통화이외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데
52,000원(54,000원?) 요금제로 실제는 기기할부금 포함하여 약70,000원 내외의 금액을 납부한다. 너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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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만원 갤럭시S3' 6만원 요금제의 비밀 '충격'

통신 과소비 부추기는 한국 (하)

정말 싸게 파나

약정에 따른 통신료 할인을 단말기값 할인으로 포장해 매달 1만원 넘게 더 받는 셈

소비자 선택권이 없다

평균 데이터 사용 1GB인데 1GB 넘는 요금제 무제한뿐 … 결국 비싼 약정 선택해야

중앙일보|김창우|입력2012.11.06 01:29|수정2012.11.06 06:42


정보기술(IT) 업체에 근무하는 이형주(44)씨는 올 9월갤럭시3가 17만원'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회사 근처 이동통신 대리점을 찾았다. 판매원은 "당연히 그 가격으로 드린다"며 "24개월 약정으로 6만2000원 요금제를 쓰면 단말기 값으로 월 7000원씩만 추가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제대로 스마트폰을 산 것일까? 아니다. 약정할인을 단말기 값으로 내고 있기 때문이다.

6만2000원 요금제로 24개월 약정을 하면 통신사는 월 1만6000원의 요금을 할인해준다. 결국 이씨는 38만4000원(1만6000원×24개월)과 17만원을 합쳐 단말기 값으로 55만4000원을 내는 셈이다. 출고가인 99만원보다는 싸지만 원하는 만큼 저렴한 것은 아니다. 이씨가 제대로 샀다면 매월 통신요금 4만6000원과 단말기 할부금 7000원 등 5만3000원(세금은 별도)만 내면 되는데 6만9000원을 부담하게 됐다.

 이처럼 고가 단말기와 함께 통신 과소비를 부추기는 요인은 약정과 결합한 정액요금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3000만 명의 91.7%는 정액요금제를 이용한다. 이들은 대부분 약정할인을 받게 된다. 취재팀이 서울 강남역·용산 등의 판매점 10여 곳을 둘러본 결과 대부분의 판매원이 90만원짜리 단말기를 꺼내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 "LTE62요금제 쓰시면 38만원, LTE72요금제는 43만원 할인해 드리니 단말기 값 절반만 내시면 된다"는 식으로 영업을 했다. 일부 판매원은 보급형 단말기를 보여주며 "정액요금제만 쓰면 단말기는 공짜"라고 권하기도 했다. 비싼 단말기를 구입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을 줄이는 효과다.

 약정할인은 요금 인상을 숨기는 '커튼 효과'도 있다. 이통 3사의 LTE 정액요금제는 3G와 요금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3G용 5만4000원 요금제는 음성통화 300분을 주는 반면, LTE용 5만2000원 요금제는 250분으로 줄였다. 약정할인을 적용하면 더 차이가 난다. 3G 요금제를 쓸 때보다 LTE에 적용하는 할인폭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음성통화 1분당 요금으로 나눠보니 3G에서는 1분에 121원, LTE에서는 154원으로 27%나 올랐다. 약정할인금을 줄이는 식으로 LTE 요금이 비싸지 않은 것처럼 소비자를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통신업계 관계자는 "수조원의 투자가 이뤄진 LTE는 기존 3G와 전혀 다른 서비스"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요금이 올랐다고 느낄 수 있지만, 퀄리티가 다른데 같은 요금을 적용하라면 통신사 입장에선 억울하다"고 말했다.

 정액요금제는 구성에도 거품이 끼어 있다. 음성과 데이터 양을 통신사 편의대로 묶어놓은 것이라 필요 이상의 요금을 내게 된다. SK텔레콤 가입자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은 3G에서 1.09기가바이트(GB), LTE에서 1.75GB다.애니팡 게임을 하루 1시간(월 163MB) 즐기고 짧은 동영상을 보고, e-메일·웹검색·카카오톡을 사용하면 이 정도를 쓰게 된다. 그런데 이통 3사의 3G요금제에는 1GB 요금제가 없어 무제한요금제를 써야 한다. LTE는 요금제에 따라 음성과 데이터 양을 '180분에 1.1GB' '350분에 5GB' '600분에 13GB' 같은 식으로 조합했다. 음성통화나 데이터 중 어느 한쪽만 많이 쓰는 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상위 요금제를 골라야 한다.

 올 7월 국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김희정(새누리당) 의원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매월 115분의 음성통화와 201건의 문자메시지가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월 쓰지도 않은 요금 1만6000원을 내는 셈이다. 이통 3사에는 '맞춤형 요금제'도 있다. 음성·문자·데이터를 각각 분리해 고르는 방식이다. 하지만 데이터 최대 제공량은 2GB로 제한해 놓아 이보다 더 쓰려면 1GB에 5만2000원을 내야 한다. SKT의 경우 월 1GB에 1만5000원, 2GB에 1만9000원을 내는 별도의 데이터 정액제도 있다. 그런데 선불폰과 LTE 단말기에서는 가입할 수 없다.

 이같이 비싼 정액요금제를 선택하게 한 뒤 할인해주는 방식에서 또 하나의 제약이 생겼다. SKT가 이번 달부터 위약금3'를 도입한 것이다. KT도 다음 달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약정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해지할 경우 그동안 받은 약정 할인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내놓아야 하는 제도다. SKT 관계자는 "버라이즌 같은 해외 통신사도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 통신사의 위약금은 이제껏 받은 할인을 '토해 내는' 식이 아니라 사용기간이 늘수록 부담이 줄어든다. 버라이즌은 2년 약정 시 요금 종류와 관계없이 스마트폰은 350달러, 피처폰은 175달러의 해지 위약금을 책정한다. 1개월 사용할 때마다 여기서 10달러씩 차감돼 쓸수록 위약금이 줄어든다. LTE 스마트폰을 월 10만원 요금제로 2년 약정 가입해 23개월간 사용하고 해지할 경우 무는 위약금은 국내 이통사에서는 21만원, 버라이즌에서는 10만원이다.

◆위약금3

=약정 기간을 채우지 않고 해지할 경우 할인받은 금액의 37~100%를 반환하는 제도. 24개월 약정 가입자가 12개월 사용하고 해지할 경우 그때까지 적용받은 할인금액의 80%를 내야 하고, 20개월 사용해도 52%를 내야 한다. 원래 위약금은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폰 단말기에 붙이는 제도였다. 수십만원의 위약금을 책정하고 매월 일정액을 차감하는 방식이어서 중간에 해지할 경우 남은 위약금만 내면 된다. 하지만 가입자들이 할부원금이 낮은 단말기를 몇 달만 쓰고 해지하는 경우가 생기자 이통사들은 지난해부터 위약금2라는 명칭으로 스마트폰에도 5만~10만원의 위약금을 붙였다. 이번에 도입한 위약금3는 쓸수록 늘어난다는 점에서 기존 위약금과 다르다.

김창우.정선언.심서현 기자kcwsssk@joongang.co.kr

BMW 김효준 사장 "못으로 외제차 그어댈 때, 나는…가능성 봤죠" 인물과 이야기

김효준 사장에 관한 뉴스는 자주 접하지만 이 기사는 나와 같이 하던 학창시절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 스크랩한다. 학창시절부터 존경하는 선배로 너무도 대단한 인물이 되었다. 그 웅대한 꿈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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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리더십]

 ChosunBiz

입력 : 2012.11.01 03:11

[高卒 출신의 성공 질주, BMW 코리아 사장 김효준]
책상 없어 울던 소년, 그가 핸들을 잡자… BMW 실적이 100배로
나서라, 나서라, 나서라 - 내 업무에만 얽매이지 마라, 다른 영역에도 아이디어를 내라
주변에서 질투 안하냐고? 자기 功으로 돌리지 말라… 내세우지 말라, 그러면 된다
"사장 안할래" 獨 본사와 대결 - 막상 사장 자리 앉고 보니 독일인 부사장이 4명이나…
"내가 사장 안해도 되니까 차라리 독일인을 사장에 앉혀라, 대신 우리 직원들 기회 더 달라"

"어릴 때 소원이 자동차? 車는 무슨… 책상도 없었는데… 박스에 보자기 씌워서 공부
이젠, 소외된 아이들 위해 모바일 캠퍼스 만들겁니다
책·자동차 설비 싣고 산간벽지 누빌거예요,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싶어요
하필이면 왜 수입車? 사람들이 못으로 외제차를 그어댈 때… 난 반대로 가능성을 봤죠"

"'모바일 주니어 캠퍼스'를 만들 거예요. 버스에 기계 설비, 다양한 교재를 싣고 도서 산간벽지를 누비게 할 겁니다. 교육 혜택에서 소외된 어린이들이 자동차 원리를 배우고, 직접 만들어도 보고, 환경의 중요성도 깨닫게 하고…. 이달 말에 출범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할 거예요."

김효준(55) BMW코리아 사장은 수입 자동차 회사 사장 같지가 않았다. 지난달 29일 서울 회현동 BMW코리아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 내내 그는 '모범생' 같은 답을 내놨다. 기업의 '명예'와 '지속 가능성', 기업과 사회의 상호 기여·선순환 같은, 국내 대기업들이나 강조할 법한 사회공헌론을 듣는 것 같았다.

서울 회현동 BMW코리아 본사에 전시된 뉴1 시리즈 118d에 앉은 김효준 사장. 그는“차만 파는 게 아니라 새로운 자동차 문화와 애프터서비스의 기준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그렇지만 그의 모범생 같은 경영론은 국내외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당장 한국 시장에서의 '실적'을 중시해야 할 BMW 독일 본사에서도 김 사장의 아이디어에 솔깃해하고 있다. '모바일 주니어 캠퍼스'는 물론, BMW 차를 사는 고객들에게 기부금을 내게 하고 그 기부금만큼 회사가 더 기부해 기금을 만드는 'BMW코리아 미래재단' 아이디어도 본사 이사회가 수용했다. BMW는 이 재단 모델의 전 세계 확대를 검토 중이다.

김 사장의 삶 역시 모범생 같았다. '성공한 고졸' 사례를 찾을 때마다 그는 늘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나중에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경영성적도 빼어났다. 2000년 BMW코리아 사장을 맡아 연간 300대 남짓이던 판매량을 올해 3만3000대 수준까지 늘려놨다. 실적 100배 향상, 수입차 1위 업체의 위상도 확고하다. 최초의 현지인 BMW현지법인 사장, 아시아인 최초 BMW 본사 임원, 국가별 최초의 벤츠 판매량 추월 등 보유한 '신기록'도 많다.

'가난한 고졸 출신 경영인'은 사실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덕수상고를 졸업했다는 것 이외에 개인사(史)를 밝히길 꺼려왔다. 그에게 굳이 어린 시절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질문하자 한참을 망설였다. "자동차" 같은 대답을 기대한 건 엄청난 오산이었다.

"책상이에요. 그땐 엎어놓은 박스에 보자기를 씌우고 벽돌 몇 장을 받쳐 책상으로 썼죠."

그는 서울 금호동 산동네 단칸방을 전전하며 동생 네 명과 부대꼈다. 고1 때 중3짜리 열두 명을 모아놓고 과외를 해 동생들의 학비까지 댔다. 사범학교를 다니던 부친은 6·25 전쟁통에 월남(越南)해 건축업·인쇄업·운수업 등을 했지만 늘 시원찮아 생활고에 시달렸다. 결국 직접 택시운전을 하다 큰 교통사고를 당해 10년 넘게 병석에 누웠다.

그에게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는 '가능성'이 판단의 기준이 됐다고 했다.

"입사 인터뷰 때 회사의 역사를 듣고, 제품을 보니 도전할 만하고 존경받는 회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주위에선 반대가 많았죠. 당시엔 수입차를 못으로 그어버리고 수입차 주유를 거부한 주유소에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였으니까요. 또 그땐 한 달에 10대도 못 파는 회사였는데 실적에 대한 걱정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잘 준비하면 꼭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분명히 보였어요." 김 사장은 "이 회사가 한국 자동차 산업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산차 브랜드들이 수입차와 경쟁하면서 세계적 품질을 확보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죠. 수입차가 들어오면서 ABS(잠김현상을 방지하는 브레이크), 에어백 같은 첨단장치가 장착됐습니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11개 업체가 세계시장을 휩쓸던 일본차 메이커들이 안방 문을 걸어잠그는 바람에 몰락한 것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이 자동차 시장 대신 해외에 문을 연 건설중장비 시장에서는 고마쓰라는 브랜드가 일류 중장비 회사와 경쟁, 협력하면서 캐터필러를 능가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고졸 직장인이 외국계 기업의 CEO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그는 "일을 통해 계속해서 배운 것"이라고 답했다. 일을 통해 배우기 위해선 "자기 업무 영역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영역에도 관심과 호기심을 갖는 것,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력과 소통(communication)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975년 첫 직장이었던 삼보증권(대우증권 전신)에 입사해 첫 여름휴가 사흘 동안 광주·부산·대구 지점을 돌았다. 매일 전화 통화만 했던 직원들을 만나 업무 얘기를 하면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업무 양식 표준화 방안을 만들어 회사에 제출했다. 세 번째 직장인 제약회사 한국신텍스 경리부 차장일 때에는 충북 음성에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의 허가를 받지 못해 회사가 철수하려 하자, 건설·농공단지·지방행정 관련 법전을 뒤지고 군수를 비롯한 군청 직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공장 허가를 받아냈다.

"자기 업무도 아닌데 나서면 질시를 받지 않느냐"고 묻자 "그래서 소통이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일을 배우고 회사가 성과를 내는 데에 만족해야지 자기 공(功)으로 돌리려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내세우지 않아도 김 사장의 공은 다 평가받고 있었다. 신텍스 미국 본사에서는 그를 '독특한 재무담당자(strange finance director)'라고 평했고, 당시 한국신텍스 미국인 사장은 "대단히 젊은 사람이지만 차기 혹은 차차기에 사장으로 쓸 만한 재목이다"라는 인사기록을 남겼다.

그는 BMW코리아 사장으로서 회사를 키울 수 있었던 건 마음가짐과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증해 보인 사례라고 말했다. "2000년 사장이 되면서 세 가지를 주문했어요. 벤츠를 이긴다는 뜻의 'B to B'(벤츠에서 BMW로)와 'B to C'(BMW는 고객을 지향한다), 그리고 '1 in 5'(1% 시장 점유율을 5년 안에 이룬다)였죠. 당시 우리 딜러(판매상)들은 '우리는 2등이니 싸게라도 팔아야 한다'고 했었고, 독일 본사에서도 한국 시장에서 어떻게 연간 1만대를 파느냐며 웃었어요. 그때는 우리가 300대 팔 때였거든요. 그해 바로 2100대를 팔면서 벤츠를 확실히 이겼죠. 그런 자신감이 2005년 전 세계 모든 시장에서 BMW가 벤츠를 이길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서울 아셈(ASEM) 회의 의전 차로 BMW 고급차 135대를 제공하고, 1년에 고작 한 대 팔던 대형차 L7을 13대나 보내달라고 해 본사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런 과감한 마케팅으로 시장을 점령해 나갔다.

아이디어도 많이 냈지만 본사와 '대결'한 적도 많다. BMW코리아에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독일어로 적힌 문서를 영어로 보내달라며 본사로 돌려보내기도 했고, 사장이 된 후엔 4명의 독일인 부사장이 너무 많다며 그럴 바엔 차라리 사장을 독일인으로 바꾸고, 우리 직원들이 기회를 더 갖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많이 이뤘지만 벌여놓은 일도 아직 많다. BMW 소형차인 뉴 1시리즈를 들여오는 등 라인업을 계속 확충하고 있고, 무엇보다 독일, 미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한국 영종도에 들어서게 되는 BMW드라이빙센터를 멋있게 건립해야 한다. 그는 모터사이클 면허를 따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2년 안에 모터사이클 면허를 따겠다고 본사에 약속했는데 마감이 한 달 남았다"며 웃었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그는 "나는 먼 길을, 아주 멀리 돌아왔다"면서 "후배들은 좀 더 빨리 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 글로벌 리더로 클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의 '모범생' 같은 답으로 돌아왔다. "사회와 기업이 같이 나아간다는 것,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듬어 나가고 실천하고 싶습니다."

[수입車 1등 이끄는 김효준은 누구인가]

-1957년 서울생.

-1975년 덕수상고, 1997년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졸업, 2000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 석사, 2007년 한양대 경영학 박사

-1975년 삼보증권 입사, 1979년 하트포드화재보험 경리과장, 1994년 한국신텍스 부사장

-1995년 BMW코리아 상무, 2000년 대표이사 사장, 2003년 BMW그룹 본사 임원(Senior Executive)

몰랐던 계란의 효능 하나1 먹을거리 알리미


나는 계란을 잘 먹지 않는 편이다. 집에서 자연농업으로 닭을 길러 유정란 몇개를 생산하지만 별로 자주 먹지를 않았다. 그러나 이 기사를 보면서 이제는 좀 먹어야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챙겨두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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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하루 한 번 우리 집 에그 타임

여성동아|진행 | 조윤희 프리랜서 사진 |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입력2012.10.25 09:40|수정2012.10.2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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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계란의 효능 하나 01
계란은 집중력 높이는 브레인 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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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에 도움 되는 계란의 영양 성분은 레시틴과 콜린 성분이다. 계란노른자에 함유된 레시틴은 수분을 제외한 우리 뇌의 30% 정도 차지하는 물질로 기억력을 높이고 치매를 예방한다. 레시틴은 두뇌 세포를 구성하는 필수 영양소로 혈액을 만드는 성분인 단백질과 철분이 풍부해 두뇌 산소 공급과 IQ·EQ 등 뇌기능 향상을 도와 어린이 두뇌 발달에 꼭 필요한 식품이다. 콜린은 신경 전달 물질의 주원료로 두뇌의 동작과 감각의 활동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기능이 있어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인다.

간단한 아침 식사 메뉴로 강추! 두뇌 활동 돕는 계란
지난 7월 질병관리본부의 '우리나라 청소년 식습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아침 식사를 일주일에 5일 이상 먹지 않은 중학생은 23.2%, 고등학생은 22.6%로 나타났다.
아침 식사 습관에 관한 연구에서 아침 결식은 집중력과 산수 능력 저하, 독해력 저조, 운동 능력 부진 등에 영향을 미치며, 아침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학생은 학업성취도가 높을 뿐 아니라, 아침 식사를 거른 학생에 비해 행동적 문제나 학습적 문제가 적고, 불안이나 공격성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면 혈당량이 정상 이하로 감소돼 뇌의 기능이 불균형 상태가 되고, 다음 끼니의 과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비만, 위장병, 변비 등을 초래할 위험도 있다.
이처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아침 식사는 필수다. 특히 계란은 브레인 푸드이면서 분주한 아침 시간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 아침 식사 메뉴로 좋다. 계란에 들어 있는 비타민 B는 졸음을 물리쳐 학습 능력을 높인다. 성장기 아이의 두뇌 건강과 체력 관리를 위해 하루 2회 계란 섭취가 필요하다.

계란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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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재료
계란 2개, 찹쌀가루 2큰술, 소금 약간, 마늘·양파·미니 파프리카·백만송이버섯·청경채(비타민)·숙주나물·새우·올리브오일 적당량씩, 소스(굴소스 1큰술, 물 2큰술, 간장·핫소스 1작은술), 참기름 약간
■만들기
1 계란과 찹쌀가루, 소금을 섞은 후 체에 걸러 지단을 붙인 후 키친타월로 기름을 빼고 한김 식힌 다음 돌돌 말아 국수처럼 썰어, 계란누들을 만든다.
2 마늘은 편썰고 양파, 파프리카는 채썬다. 나머지 재료들도 손질해 준비한다.
3 달군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마늘을 넣어 볶은 후 양파, 파프리카, 새우를 넣고 볶다가 비타민, 버섯, 숙주나물을 넣는다.
4 ③에 계란누들을 넣고 소스를 뿌려 버무린 후 마지막에 참기름을 떨어뜨린다.

계란밥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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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재료
계란·자투리 채소·밥·적당량씩, 소금·식용유·양념김 약간씩
■만들기
1 풀어놓은 계란에 다진 채소와 소금, 밥을 넣고 섞는다.
2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①의 반죽을 부침개 부치듯이 팬에 편다.
3 반죽 바닥이 익기 시작하면 달걀말이를 말듯이 말아서 밥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익힌다.
4 ③를 먹기 좋게 잘라 담고, 기호에 맞춰 양념김을 뿌린다.

몰랐던 계란의 효능 둘 02 계란은 S라인 만드는 다이어트 푸드다
다양한 다이어트 방법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최근에는 인체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챙기면서 탄력 있는 몸매로 가꿀 수 있는 계란 다이어트가 인기다.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계란 다이어트 효과가 잘 알려져 있는데 5개월 동안 15kg을 감량한 개그우먼 김신영은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닭가슴살, 채소 등 단백질 위주로 구성된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했다고 밝혔다. 탤런트 서우도 다이어트 할 때 계란흰자를 주로 먹고 야식을 하지 않았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계란은 저열량 식품이면서 필수 영양소 함유량이 높고, 배고픈 느낌과 관련된 호르몬인 그렐린의 수치를 낮춰 포만감을 줄인다. 단백질이 풍부해 다른 당류 위주의 식품에 비해 포만감을 느끼는 시간이 길어 식욕을 억제한다.

아침 식사로 계란 섭취하면 살이 쏙
2011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 아침 식사로 계란을 섭취한 경우 같은 양의 단백질이 포함된 시리얼을 먹는 것보다 포만감이 크며, 배고픔에 영향을 미치는 그렐린 수치가 더 낮게 측정된 반면 배부른 느낌과 관련된 호르몬(PYY) 수치는 높게 측정됐다. 또한 연구팀은 다이어트를 위해선 계란을 조리할 때 기름을 사용하는 프라이나 스크램블 대신 통째로 삶아서 먹는 것을, 노른자보다 비교적 지방 함유가 적은 흰자 섭취를 권장했다.

다이어트에 좋은 노란계란말이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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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재료
밥 2공기, 소금·참기름·통깨 약간씩, 당근·햄 ½개씩, 식용유 적당량, 표고버섯 ·게맛살 5개씩, 소스(마요네즈 1큰술, 흰 춧가루 약간), 깻잎 16장, 쪽파 20대, 계란 6개, 베이킹파우더·우유 약간씩
■만들기
1 고슬하게 지은 밥에 소금, 참기름, 통깨를 넣어 섞는다.
2 당근은 채썰어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해 기름 두른 팬에 볶고 표고버섯은 끓는 물에 데쳐 볶는다. 햄은 굽고 게맛살을 찢어 소스에 버무린다. 깻잎은 씻고 쪽파는 끓는 물에 데친다.
3 계란에 베이킹파우더와 우유를 섞은 후 기름 두른 팬에 지단을 부친다.
4 김발에 계란지단을 올리고 깻잎을 올린 후 밥을 깐다. 준비한 채소를 가지런히 올려 만다.
5 데친 쪽파로 계란밥말이를 묶어 고정한다.



도움말 | 계란자조금관리위원회


입이 즐거워지는 채소 '고구마'로 만든 요리 먹을거리 알리미

내가 심어 먹어보는 고구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잘 설명이 된 것 같다.
참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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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즐거워지는 채소 '고구마'로 만든 요리
여성중앙|입력2012.10.18 14:19

 
[여성중앙]

입이 즐거워지는 채소, 고구마

고구마는 감자보다 단맛이 강해 단감자라고도 불리는데 굽거나 찌면 열량이 다소 많아지지만 다른 채소에 비해 조리 후에도 영양분의 파괴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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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 동그랗게 생긴 밤고구마. 수확 후 바로 먹어야 제맛이며 10월 중순까지 제철이다.


고구마는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곡물보다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B%B9%84%ED%83%80%EB%AF%BC&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비타민과 섬유소를 많이 함유한 식품으로 같은 품종이라도 생육 조건에 따라 모양, 껍질의 색, 식감이 다르고 그 성분에도 차이가 난다. 더운 여름 기운을 받고 자라기 때문에 3~4월에 심어 8월 중순부터 수확을 시작하는데, 국내에서 재배되는 고구마는 크게 밤고구마와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D%98%B8%EB%B0%95%20%EA%B3%A0%EA%B5%AC%EB%A7%88&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호박 고구마, 자색 고구마로 나뉜다.

이맘때 수확하기 시작하는 밤고구마는 전분이 많고 수분 함량이 적어 삶았을 때 포실포실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호박 고구마는 저장을 통해 숙성시켜 더욱더 강하게 단맛을 들이며 삶았을 때 속이 무르고 노란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밤고구마는 튀기거나 조림으로 만들기 적합하고, 호박 고구마는 구워서 먹는 것이 좋다. 자색 고구마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장수촌 중 한 곳인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C%98%A4%ED%82%A4%EB%82%98%EC%99%80&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오키나와의 장수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생산에 열을 올린 제품으로 유명하다.

자색 고구마는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C%95%88%ED%86%A0%EC%8B%9C%EC%95%88&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안토시안 성분을 높이기 위해 껍질과 속을 보라색으로 개량한 것인데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흔히 과자나 떡으로 가공되어서 판매된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최고의 먹거리였던 고구마는 성인이 매일 1개만 먹어도 1일 비타민 C 권장량을 모두 섭취하게 되므로 영양학적으로도 가치가 있으며, 쉽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어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이쯤에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일반적으로 고구마는 뿌리와 줄기까지 모두 식용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반 농가에서는 질기고 별다른 맛이 없는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A%B3%A0%EA%B5%AC%EB%A7%88%20%EC%A4%84%EA%B8%B0&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고구마 줄기를 식용으로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탁 위에 반찬으로 올라오는 고구마 줄기는 따로 식용이 가능한 품종을 재배한 것이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구마 줄기에서는 고구마 열매를 맛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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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충남에 위치한 일등고구마농장의 대표 권태숙. 올해는 가뭄으로 인해 수확이 조금 늦어졌다고.2_감자는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B%8D%A9%EC%9D%B4%EC%A4%84%EA%B8%B0&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덩이줄기라 감자를 그대로 심으면 거기에서 감자가 달리지만 고구마는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B%8D%A9%EC%9D%B4%EB%BF%8C%EB%A6%AC&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덩이뿌리라 고구마에서 순을 내 그 순을 잘라 땅에 심는다.

색다르게 즐기는 고구마 레시피

이번 촬영을 위해 고구마 농가를 방문해보니 그들의 '고구마 즐기는 방법'이 꽤 인상적이었다. 변비가 심한 사람이라면 고구마를 갈아 생즙으로 마시는 것이 효과적인데 암이나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A%B3%A0%ED%98%88%EC%95%95&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고혈압, 심장병 등도 예방한다고 한다. 다만 이때에는 호박 고구마를 사용하는 것이 좋고 당근과 함께 갈아 마셔도 좋다.

또 고구마를 캐면 손가락처럼 가는 것도 간혹 있는데 그런 고구마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서 솥에 찐 다음 볕에 널어 꼬들하게 말린 뒤 '고구마 쫄때기'로 즐기기도 하고, 고구마를 갈아서 위에 떠오르는 물은 따라버리고 전분만 가라앉혀 말린 뒤 묵을 쑤기도 한다. 또 기호에 따라 생으로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C%83%90%EB%9F%AC%EB%93%9C&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샐러드에 활용하기도 하는데 만약 생으로 고구마를 먹는다면 물에 3분 정도 담가둬 전분기를 빼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요리할 때 색도 깔끔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구마는 식이 섬유를 감자의 2배나 포함하고 있는데, 특히 껍질 부근에 많이 들어 있으므로 껍질째 요리하는 것이 좋다. 단,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껍질을 벗기고 먹고, 생으로 먹어야 상대적으로 체내 흡수율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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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마멸치볶음

재료_

고구마 1/2개, 볶음용 멸치 1컵, 식용유 1/2컵, 양념(간장·맛술·올리고당 1큰술씩, 식용유 약간)

만들기

1_

고구마를 껍질째 씻은 뒤 채칼로 원형 모양을 살려 얇게 슬라이스해서 물에 담근다.

2_

고구마의 전분이 빠지면 물에서 건져 종이 타월로 물기를 제거한 뒤 식용유를 부은 팬에 고구마를 넣고 튀기듯 노릇하게 굽는다.

3_

다른 팬을 달궈 멸치를 넣고 한 번 볶아 비린 맛을 날려준다.

4_

분량의 양념을 잘 섞어준다.

5_

팬에 양념을 넣고 끓이다가 멸치를 넣고 잘 볶은 뒤 마지막에 2의 고구마를 넣고 잘 섞어준다.

2 고구마단호박전

재료_

고구마 1/2개, 단호박 1/4개, 부침가루·물 150ml씩, 식용유 3큰술

만들기

1_

고구마를 껍질 째 씻어 가늘게 채 썬 뒤 물에 살짝 담갔다가 꺼낸다.

2_

단호박도 가늘게 채 썬다.

3_

부침가루에 물을 넣고 잘 갠 반죽에 1, 2를 넣고 잘 버무린다.

4_

팬을 달궈 식용유를 두른 다음 숟가락으로 3을 동그랗게 한 입 크기로 떠서 올린다.

5_

약한 불에서 속이 익도록 은근히 지지다가 중간 불에서 겉이 노릇하도록 굽는다.

·

고구마 겉절이는 고구마 1/2개와 쌈배추 3장 정도를 알맞게 썰어 실파, 고춧가루, 식초, 액젓, 다진 마늘, 설탕, 간장을 넣은 양념에 무친다. 단, 양념에 무치기 전 물에 담가 전분기를 빼고 사용한다.

기획_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C%9D%B4%EB%AF%B8%EC%A0%95&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8141908816" target=new>이미정 사진_문덕관

여성중앙 2012 9월호

< 저작권자ⓒ제이 콘텐트리 여성중앙.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일본에서 불고있는 50°C 기적의 세척 방법 먹을거리 알리미

유용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것 같아 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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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조리팁

일본에서 불고있는 50°C 기적의 세척 방법

조선일보 | 입력 2012.10.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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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일본 스티밍 조리 기술 연구회의 헤이야마 잇세이(平山一政) 대표는 채소를 효과적으로 찌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40년간 지속해왔다. 일반적으로 채소를 100°C가 아닌 저온에서 찔 경우 채소의 단맛이 강해져서 맛도 짙어지고 식감도 상승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착안해 채소를 50°C에서 씻어도 같은 효과가 난다는 결과를 오랜 시간의 실험을 통하여 얻었다.

50°C 세척은 말 그대로 50°C의 뜨거운 물에 채소를 씻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B%B0%98%EC%8B%A0%EC%9A%95&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0092307932" target=new>반신욕을 할 때 목욕물이 약 39°C며 좀 뜨거운 목욕물의 온도는 42~45°C 정도다. 50°C는 손을 넣었을 때 따끈한 정도의 온도다. 보통 연한 채소나 과일은 차고 시원한 물에 씻어야 신선할 것 같고 뜨거운 물에 담그면 표면이 물러지거나 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채소의 상태를 상승시킬 수 있다.

일본의 온천지역에서는 식재료를 온천물로 씻는다고 한다. 사실 이 방법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방법이지만 일본의 온천 지역에서는 일반적인 일이다. 헤이야마 잇세이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벳부는 유명한 일본 온천 지역으로 식재료를 온천물에 씻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과학적인 증명도 없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온천지역에 사는 일본인들은 따뜻한 온천물이 지천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식재료를 씻었을 때 얻는 효과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이 세척 방법은 현재 일본 전역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50°C 세척 방법에 대해 설명한 헤이야마 선생의 책은 첫 발매 이후 일본에서 10일 만에 14만부가 팔렸을 정도로 붐을 일으키고 있다.

50°C 세척 방법


1. 볼에 찬 물과 뜨거운 물을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섞어준다.
2. 주방용 온도계를 사용해 50°C가 되었는지 온도를 잰다.
3. 손을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B%8D%B0%EC%9D%B4%EC%A7%80&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0092307932" target=new>데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채소를 물에 푹 잠가, 흔들어 씻는다.
4. 중간 중간 물이 식지 않도록 뜨거운 물을 추가해가며 씻는다.
5. 시간이 되면 꺼내서 물기를 잘 닦아 낸다.

TIP

1. 채소, 과일 등 식재료에 따라 물에 넣어 씻는 시간은 각기 다르다. 푸른 잎의 경우 1~2분, 과일은 딸기, 포도같이 작은 것은 1~2분,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C%98%A4%EB%A0%8C%EC%A7%80&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0092307932" target=new>오렌지, 감, 사과처럼 크기가 있는 것은 2~3분, 바나나는 4~5분 정도 씻어준다.
2. 씻고 난 뒤에는 바로 냉장 보관해 신선도를 높인다.

식재료의 식감, 신선도 상승시켜


50°C의 물로 세척을 하며 발생하는 Heat shock는 채소의 세포에 수분을 흡수시켜준다. 채소는 수확을 하는 순간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을 점점 잃게 된다. 하지만 세포는 살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수분의 증발을 막기 위하여 기공을 줄인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 뜨거운 물이 닿으면 열 쇼크로 인해 기공이 열리면서 수분을 흡수한다. 채소의 섬유질과 단백질, 전분 등이 잃어버린 수분을 짧은 시간 안에 흡수해 수분이 30~40%까지 증가한다.

채소가 속부터 촉촉해지는 것은 채소의 세포들이 이런 직접적인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수분이 다 채워지면 다시 기공을 닫아 증발을 억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채소가 함유하고 있는 유효성분이나 맛은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수분만 보충하는 상태가 된다.
채소 속의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C%95%84%EB%B0%80%EB%9D%BC%EC%95%84%EC%A0%9C&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0092307932" target=new>아밀라아제 발효는 50°C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 단맛을 증가시킨다. 또한 채소의 세포를 묶고 있는 펙틴의 결합을 세분화해 탄력을 높인다. 이로 인해 채소의 식감은 더 좋아지게 된다.

흔히 찬물에 설거지를 할 때보다 뜨거운 물에 설거지를 했을 때 더 효과적이다. 50°C의 물로 세척하면 표면에 붙어있던 오염 물질과 산화물질은 물론 채소가 지닌 독특한 생 내와 휘발성 물질을 증발시킬 수 있다. 그냥 물에 씻는 것보다 식재료에 묻어있는 오염 물질이 더 잘 떨어진다. 특히 고기나 생선이 공기와의 접촉을 통해 산화된 성분이나 지방분이 제거돼 신선한 맛이 살아나고 본연의 촉촉함을 되찾아 식감이 부드러워진다. 또한 떫은맛이나 쓴맛, 아린 맛 등의 원인이 되는 오염원도 씻을 수 있다. 채소를 상하게 하는 균의 번식도 억제하고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B%83%89%EC%9E%A5%EA%B3%A0&nil_profile=newskwd&nil_id=v20121010092307932" target=new>냉장고에 보관해도 선도가 오래 지속된다는 장점이 있다. 안 좋은 맛과 향의 근본 원인이 모두 제거돼 상대적으로 좋은 맛과 향이 증가한다.

이 방법은 비단 채소뿐 아니라 고기, 생선을 비롯한 모든 식재료에 활용할 수 있다. 50°C 세척 방법은 식재료의 맛과 신선도를 높이고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세척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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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男, 대기업 때려치우고 `제과점` 차리더니 은퇴자와 귀농생활

직장에서 새로운 비젼을 찾아 또는 직장에 다니면서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갖고 실천을 하려면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보다 몇배의 노력과 고통이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짜야한다.

나는 이제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을 하는 또는 젊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것은 농업에도 관심을 갖되, 직장에 다니는 틈틈이 자연농업에 관심을 갖고 주말농장을 운영해 보거나, 휴가때 농촌에 일손돕기를 하면서 농사체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몇 년 후에는 농업이 새로운 모습 즉 미래산업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바, 이를 대비해 보는 지혜가 있었으면 한다. 

다음은 한국경제 한경닷컴 재테크전략 뉴스데스크에 있는 글을 가져왔다.
2012.6.29 기사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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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男, 대기업 때려치우고 `제과점` 차리더니
조회 : 5079
직장·상사에게 비전 내놓으라는 당신…역량은 개인이 만드는 것!

Hi CEO 경영교실 - 비전에 속지마라

직장 비전없다고 과감히 퇴사…밖에 나와도 갑갑하긴 마찬가지
개인의 비전부터 세워야
 
‘자신의 향후 비전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라는 온라인 포털의 질문에 직장인의 60% 이상이 ‘현재 직업으로는 비전이 없다’고 답했다. 상사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망으로는 ‘비전 제시’를 첫 번째로 꼽았다.

#27세에 대기업에 입사한 J씨의 사연


J씨는 16년 동안 근무 후 43세 되던 2002년 명예퇴직을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했다.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여유 있는 생활을 했지만, 직장에선 더 이상 비전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사업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회사에서 나왔다.

퇴직 3개월 만에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열었다. 창업지원센터에서 안내해준 대로 퇴직금과 명퇴금을 모두 동원해 창업했다.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직장인이 아닌 오너로서의 긍지와 책임감으로 흥분에 빠진 1년이었다. 직장 출근 땐 아침에 벽을 할퀴면서 간신히 일어났지만, 창업 후에는 날이 밝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그러나 가맹점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열심히 일한 수입의 대부분이 이름뿐인 본사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뒤 학원과 집 이외에는 두문불출 수험생 모드로 돌입했다. 6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고3 수험생 이상으로 힘든 인고의 시간을 보낸 결과였다. 국가 자격증을 처음으로 손에 넣은 날, 고생은 끝난 줄 알았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비이락,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졌다. 부동산 침체가 본격화된 것이다. 2년 만에 다시 폐업신고를 했다. 그동안 명퇴금과 퇴직금 모두가 사라졌다.

#J씨의 퇴직 후 10년

중학생을 대상으로 수학 개인교습을 시작했다. 아파트단지 내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수입은 많지 않았지만 마음은 편했다. 낮과 밤을 바꾸는 대리운전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2년을 넘기지 못했다. 결국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그 돈으로 파생상품 매매를 하는 주식에 손을 댔다. 그것 역시 그의 편이 아니었다. 금융위기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다.

퇴직 후 10년이 태풍처럼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43세의 나이가 어느덧 53세가 됐다. 까맣던 머리카락은 반백으로 변했고, 안경 없이도 잘 보이던 눈은 예전 같지 않았다. 10년 만에 다시 취업 시장을 기웃거려 봤지만 가능성이 희박했다. 이렇게 또 10년이 지나면 63세가 된다. 앞날을 생각하면 갑갑하지만, 길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져본다.

#베이비부머 마지막 세대 K씨

K씨 역시 내년이면 50세가 되는 베이비부머 마지막 세대다. 그는 견실한 중견 기업에서 10년간 전문직으로 일했다. 10년 동안 너무 정체돼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렵겠다는 판단으로 규모는 조금 작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 두 번째 회사로 옮겼다. 하지만 그곳에서 1년을 버티지 못했다. 조직과 업무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새로운 회사의 시스템 속에서 버틸 수 없었다. 분위기가 바뀌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져버렸다. 좀 더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전직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렇다고 전에 있던 회사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6개월을 쉬다 더 작은 기업에 취업했다. 회사의 시스템이나 조직이 열악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퇴직할 수는 없었다. 2년 동안 가까스로 버텼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또 퇴직했다. 3개월을 쉬었다. 정부에서 주는 전직지원 수당을 신고하러 지방 고용노동부를 찾아갈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잘 알고 지내던 선배의 추천으로 국내 기업의 중국 공장으로 나가게 됐다. 적지 않은 나이에 해외 근무라는 것이 무리인줄은 알았지만,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중국에서 4년 동안 일했다. 그곳에서도 더 이상은 무리였다. 바로 귀국했다. 다시 수소문 끝에 지인의 소개로 작은 기업에 취업했다. 10명도 안되는 기업에서 임원으로 일 했지만, 그것도 2년이 한계였다. 회사의 부도를 막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3년 동안 특별한 일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비비고 들어 갈 곳을 찾을 수 없음에 한계를 느낀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최소 20년 동안은 일을 더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이렇게 마무리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매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도 이제는 질린다.

#비전, 정말 없는 건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생각보다 많은 J씨, K씨들이 있다. 비전을 찾아 스스로 직장을 박차고 나왔지만 결국 비전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욱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 정도 경력이면 나가서 충분히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일까. 검증된 아이템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자기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닌, 단지 안정된 기업에 오랫동안 다녔다는 것만 갖고 밖에 나가서 당당히 설 수 있다는 그 무모한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비전이 없다는 이유로 전직을 하는 직장인이 많다. 정말 그럴까. 혹시 연봉을 조금 더 많이 준다는 헤드헌터의 권유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시도 때도 없이 간섭하고 짜증내는 상사를 피하기 위해 전직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업무 성적이 형편없어 낮은 고과 평가 때문에 승진에 문제가 될 것 같아 미리 손을 쓰기 위해 전직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 모든 것을 비전이라는 것으로 포장해 사직을 자기합리화한 것은 아닐까.

직장인의 가장 흔한 고민 중 하나가 비전이라는 문제다. 직장인의 비전은 당연히 회사에서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업이 비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종업원 각자의 개인적 비전까지 책임을 지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개인의 비전은 개인이 세울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업무를 십분 활용해 자신의 역량을 키워가면서 개인의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회사 비전보다 중요한 것

‘우리 회사는 비전이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 회사는 비전이 없다’는 말도 믿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회사의 비전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비전과는 무관한 개인의 비전을 생각해 보라는 의미다. 개인의 비전이 있는지, 아니 내가 비전을 세웠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고 내가 세운 비전이 없다면 아무리 회사의 비전이 좋다고 해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회사의 비전보다 중요한 것이 개인의 실력, 개인의 역량, 개인의 자기 브랜드다. 담당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실력과 역량 속에서 개인의 미래 브랜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전에 속지 마라. 회사에 비전이 없다고 판단해 쉽게 전직을 한다든지, 개인의 막연한 희망 비전으로 중도에 회사를 나오는 실수를 줄여야 한다. 비전보다 중요한 것이 실력이고, 역량이고, 개인의 브랜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리=이주영 한경아카데미 연구원 opeia@hankyung.com



최종엽 <잡솔루션코리아 대표 ceo@jobsolution.co.kr>

쑥에 담긴 건강 비밀 약초&한방&산야초

조선 닷컴의 창로님의 블러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원문 http://blog.chosun.com/hanks35/568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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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에
담긴 건강 비밀



    
<< 쑥으로 중풍을 고친 이야기>>

  
첫째, 쑥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작용이 뛰어나다.

     87
세 된 할머니가 중풍으로 쓰러 져 반신불수가 된 것을


   
쑥으로 치료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평소에 혈압이 높아 최고 혈압이 180쯤 되었다고 한다.
    
   
품질 좋은 싸주아리쑥 잎을 차로 달여 조금씩 마시게 했더니

 
    7
일만에 혈전이 다 풀리고 회복되어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때 혈압을 재어보니 220이 넘었다.

   
계속 쑥을 달여 먹었으나 혈압은 더 낮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혈관이 몹시 튼튼해져서


   
다시는 중풍으로 쓰러지는 일이 없이 99살까지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셨다.

   
쑥은 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혈압이 높더라도 혈관이

    터지지 않게 한다.

   
혈관의 상태는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눈이 붉게 충혈되고 핏발이 자주 서는 사람은 중풍에

    걸릴 위험이 높은 사람이다.

   
혈압이 높고 낮은 것하고는 큰 상관이 없다.

   
혈압이 높더라도 모세혈관이 튼튼하면 뇌출혈을


   
일으키지 않는다.

   
눈의 혈관은 뇌의 혈관과 거의 같다.

   
눈이 붉게 충혈될 정도면 이미 수백 수천개의

    혈관이 터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적어도 열개 이상의 핏줄이 터져야 겨우 눈으로

    볼 수 있다.

   
눈이 충혈되었을 때나 핏발이 섰을 때 쑥잎을

    달여서 마시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핏발이 사라진다.

   
쑥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출혈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준다.

 

 
둘째, 쑥은 파혈작용이 몹시 강하다.

   
파혈작용이란 죽은 피나 어혈을 분해해서 몸 밖으로 빼내는 작용이다.

  
지방간과 간경화증에 쑥이 특효가 있는데, 쑥이 간에 쌓여 있는 어혈과

 

지방덩어리를 분해하여 간기능을 회복하여 주기 때문이다.

  
간은 벌집모양의 많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기능이 나빠지면

 

간의 아랫부분에서부터 기름이 끼기 시작하고 간이 울퉁불퉁하게

 

부어올랐다가 나중에는 딱딱하게 굳는다.

   
쑥은 이 딱딱하게 굳은 어혈과 기름덩어리를 부수어 몸 밖으로 빼낸다.
   
간경화증환자가 쑥만 먹고도 나은 사례가 많다.

 
셋째, 청혈, 생혈작용이 강하다

.
   
쑥은 피를 만들어내고 혈액이 온 몸으로 원활하게 흐르게 도와준다.

    쑥은 혈액을 간과 골수에서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

 

,

기혈의 흐름을 순조롭게 하여 빈혈을 치료하고 예방한다.

쑥을 먹으면 혈액이 매우 깨끗해진다.

 
넷째, 몸을 따뜻하게 하고 생리를 조절하며

 

낮은 혈압은 올려주고 높은 혈압은 낮추어 혈압을 조절한다.

   
쑥은 빈혈, 생리통, 생리불순, 냉증 등을 치료하고,


   
생즙을 내어 먹으면 혈압을 떨어뜨리고 말려서


   
먹으면 낮은 혈압을 올려준다.

하루 1~2g을 뜨거운 물로 2~3분 우려내어 먹거나

3~4분 끓여서 차 마시듯 수시로 복용하면 된다.

 

술로 인한 간경화증에는 소쓸개를 같이 쓰는 것이 좋고,

    화학물질이나 약물중독으로 인한 간경화증에는 

    땅 속 1m 이상의 깊이에서 파낸 품질 좋은

    황토를 이용한 지장수(地漿水)를 같이 써야 한다.

좋은 쑥은 어떤 쑥인가 쑥을 재래식 화장실에 넣어두면

 

화장실 냄새가 싹 없어진다.

   
그만큼 쑥은 나쁜 냄새나 공기 중에 있는

    이물질을 흡수하는 성질이 강하다.

   
농약을 치는 밭 주변에서 자란 쑥은 농약성분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자랄 수 밖에 없다.

   
적어도 1km 바깥에까지 농약을 치는 경작지가 없는 땅에서 자란

 

것이라야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강화도와 자월도, 남양반도, 백령도에

    자라는싸주 아리쑥이 약효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료나 농약을 주지 않고 야생으로 자란 싸주아리쑥은 백령도 말고

 

다른 지역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몹시 희귀하다.

쑥을 채취하는 시기도 중요하다.


음력 5월 단오 무렵에 채취해야 한다.


단오 이전의 쑥은 약성이 모자라고 단오가 지난 것은 독성이 있다.

   
단오 무렵에 채취해서 비와 이슬을 맞히지 않고 그늘에서 말리되

    절대로 곰팡이가 피지 않게 말려야 한다.

   
작은 다발로 엮어서 처마 밑에 성글게 잎부분을 아래쪽으로

    가게 하여 걸어서 말리면 될 것이다.

 
완전히 바삭바삭하게 말리지 말고 수분이 약간 남아 있게

  말려서 한지 같은 통풍이 잘 되는 종이로 싸두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서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두고 보관한다.

수분이 약간 남아 있어야 쑥이 미생물로 인해 천천히 발효된다.

칠년 묵은 병에 삼년 묵은 쑥을 구한다는 맹자의 기록대로

 쑥은 3년 이상 묵은 것이라야 약으로 쓸 수 있다.


쑥은 오래 묵은 것일수록 효과가 좋고 독이 없다.
 
이렇게 잘 말려서 3년이 지난 쑥은 천금보다 더 가치가 있다.

흔한 쑥은 약재시장에서 1, 000~2, 000원이면 구할 수 있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쑥은 천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쑥의 비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온 인류를 병마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잘못된 만남, 텃밭의 검은비닐을 걷어라 자연농업 유기농업

춘천으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텃밭농사를 하려는데 밭에 풀도나고 돌도 많아서 로타리를 쳤다. 풀이 걱정이 되어 3개의 두둑에 비닐을 씌우고 감자와 추가로 2개의 두둑에 토란을 심었는데 이 기사를 읽고 아차 싶었다. 이미 씌운 것은 놓아두고 앞으로는 되도록 비닐을 씌우지 않고 기사처럼 농사를 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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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 텃밭의 검은비닐을 걷어라

[오마이뉴스 오창균 기자]
비닐을 씌우지 않고 감자를 심고 있는 도시농부들
ⓒ 오창균


"감자를 왜 그렇게 심어요? 비닐을 덮어야지 잡초 때문에 농사가 안 돼요."

해마다 농사가 시작되면 귀가 따갑게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비닐을 씌우지 않는 것에 대한 주변의 다양한 목소리들이다. 한편에서는, 석유값 폭등으로 그것을 원료로 하는 비닐값이 많이 올랐다며 투정을 하면서도 농사에는 꼭 필요한 것으로 받아 들인다.


비닐 없이는 농사가 안된다?


몇년 간의 경험으로 보면, 봄 농사에서 비닐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주말농사 수준의 작은 텃밭에서는 더욱 그렇다. 5~10평 규모의 텃밭에서 비닐은 농사에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도시 농부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개가 처음 농사를 배울때 비닐을 이용하는 농부에게 배웠거나 관행 농업기술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기관에서 교육받은 경우가 많다. 비닐을 사용하는 이들은 또한 화학비료 없이는 농사가 제대로 안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도 하다.


농사는 3월 말에서 4월 초부터 감자를 시작으로 잎채소들을 파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때의 밭은 벌거숭이 산처럼 맨 흙이다. 비닐을 씌워야 하는 이유인 풀이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때는 절기상으로 소만, 망종 때인 5월 중순에서 6월 초순경이다. 그 전에 올라오는 풀들은 냉이와 같은 나물로 먹을수 있거나 농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억세지 않는 풀들이 대부분이라서 한두 번의 김매기로 정리를 할 수 있다. 한포기의 풀이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라면 농사를 짓는 목적에 대해 한 번쯤 깊은 고민을 해보기를 바란다.


감자를 심은 고랑으로 쌈채소 씨앗을 파종하면 풀자람을 억제하고 수확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오창균

감자를 캔 고랑에는 풀이 한창 자라고 있으며 풀과 함께 키운 작물은 병해충이 없다.
ⓒ 오창균


5평에서 50평만큼 수확하기


잎채소류는 파종후 한 달이 지나면 솎음을 하면서 수시로 손바닥만한 잎을 딸수가 있으며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6월 말~7월 초에 감자와 함께 최종 수확을 한다. 이때까지는 비닐을 씌우지 않고도 풀을 이길수 있는 농사 방법을 소개한다.


농사에서는 사이짓기라는 농법이 있다. 주작물 사이에 보조 작물을 심어서 병해충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이용하는 친환경농법이다. 이것에 더해서 작은 텃밭 농사에서는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서 작물 수확을 늘리고 풀도 방지할 수가 있어서 반드시 권장하고 싶은 농법이다.


사이짓기는 재배시기가 비슷하거나 병해충을 막아주는 궁합이 맞는 작물을 선택하는데, 감자를 예로 들자면 상추처럼 잎이 넓게 퍼지는 잎채소가 딱 맞는 궁합이다. 감자를 심은 두둑과 고랑사이에 상추씨를 뿌려놓으면 풀 보다 먼저 잎을 키워서 풀을 제압한다.


낮게 자라는 고구마는 신문종이를 이용해서 덮어주면 초기에 풀을 억제할 수 있다. 신문지의 접힌 부분을 오려내고 고구마잎이 밖으로 나오도록 씌워주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흙을 덮어준다.
ⓒ 오창균


신문종이를 이용해서 초기에 풀자람을 억제해주면 고구마잎이 덩쿨을 이루면서 풀을 이기게 된다.
ⓒ 오창균

풀과 함께 어우러지는 농사를 지어보자

5월이 시작되면서는 여름 작물인 고추, 토마토, 고구마를 주작물로 심게 되는데 이때 심는 작물들은 풀과 함께 성장하게 되므로 초기에 풀자람을 억제할 필요가 있으며 이때가 검은 비닐의 유혹이 가장 강할 때이기도 하다. 고추, 토마토는 어른키만큼 크기 때문에 초기에만 풀자람을 억제해주면 되지만 땅에 붙어서 낮게 자라는 고구마는 풀을 제압하지 못하면 제대로 키울수가 없다. 여름작물의 초기생육때에는 신문지를 이용하거나 풀을 베어서 덮어주면 작물이 풀과 함께 힘을 겨룰수 있을때까지 보호를 해줄 수 있다.


감자는 한 달이 지나면서 흙위로 새싹을 틔우고 점차 잎을 키워 그늘을 만들기 때문에 풀이 제대로 힘을 못쓰게 만든다. 잎채소는 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 키우더라도 감자생육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쯤 감자를 심었거나 심을 예정이라면 감자를 심은 고랑에 잎채소씨앗을 파종하여 풀 자람도 막고 텃밭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잎채소도 풍성하게 수확하는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려보는 농사를 지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다음편에는 비닐농사의 장점과 단점, 풀은 병들지 않는다(풀과 함게 농사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암 이겨낸 60대 의사 "최고의 항암 음식은…" 건강식생활

먹거리가 참 중요한 세상이다. 잘 먹으면 만병을 치료할 수 있고 잘 못 먹으면 불치의 병도 얻을 수 있단다. 자연농업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마음놓고 사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농산물, 비료와 농약으로 범벅된 농산물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특히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연농업의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부와 유통업자들에게 감사하여야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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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이겨낸 60대 의사 "최고의 항암 음식은…"

[중앙일보] 입력 2012.04.09 04:27 / 수정 2012.04.09 16:45


푹 찐 가지, 밥 위에 듬뿍 올려 10년간 꾸준히 먹었더니 암도 달아나





“암 투병 기간 내내 ‘항암식품’이라고 알려진 것을 들고 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상황버섯, 마늘 진액, 오가피 가루, 동충하초, 상어 연골가루 등등. 나이 드신 분들이 가져오는 건 거절하기가 어려워 받아두기는 했지만 세간에 알려진 항암식품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건 얼마 없어요. 항암효과가 있는 식품은 따로 있습니다.”

중앙일보헬스미디어가 3월 6일 일본 오키나와 에서 진행한 ‘5060 힐링투어’ 강연에 나선 홍영재(69) 박사의 얘기다. 그는 강남에서 잘나가는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던 2001년, 대장암 3기와 신장암을 동시에 진단받았다. 대장의 4분의 1과 왼쪽 신장을 잘라냈다. 이후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이겨냈고, 암에 걸리기 전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강연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 이제는 ‘암을 이긴 의사’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닌다. 현재 그는 암 극복에 도움을 준 ‘항암식품 알리기 전도사’가 됐다. 특히 항암효과가 있는 식품 중에서도 가지를 1등으로 꼽았다. 가지가 항암치료를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 홍 박사에게 암을 이기는 가지의 건강효과에 대해 들어봤다.

2001년 대장암·신장암 동시 진단받아

홍 박사의 아침 식사는 가지로 시작된다. 푹 찐 가지를 결대로 찢은 뒤 밥 위에 올려놓는다. 밥그릇에 절반은 밥으로, 절반은 가지로 채운다. 홍 박사는 “밥을 먹기 전에 밥 위에 올려진 가지부터 먼저 먹는다”고 말했다.

 이런 생활습관은 그가 항암치료를 받을 때부터 시작됐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매일 늦은 밤까지 일하고 곱창집에서 고기와 소주를 많이 먹었다. 홍 박사는 “몇 년 동안 이렇게 무질서한 생활을 하다 보니 암에 걸린 것 같다”고 고백했다. 신기하게도 암에 걸리고 난 뒤부터 곱창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평소에 좋아했던 짜고 기름기 있는 음식에는 손이 안 갔다. 게다가 다른 음식도 입맛에 맞지 않아 토해내기 일쑤였다. 그때 고향인 전주 지역의 토속 음식인 가지나물이 자꾸 떠올랐다. 다행히 암 환자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그때부터 그는 가지를 밥처럼 먹는다.

 홍 박사가 가지를 ‘1등 항암식품’으로 여기는 이유는 보라색에 들어 있는 파이토케미컬 때문이다. 파이토케미컬은 채소와 과일의 색소에 들어 있는 식물 활성 영양소다. 홍 박사는 “가지의 보라색에는 안토시아닌, 레스베라트롤, 알칼로이드, 페톨화합물 등 암을 예방하는 파이토케미컬이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탄 음식에서 나오는 벤조피렌, 아플라톡신 같은 발암물질이 세포 속 DNA를 손상시키면 돌연변이 세포가 생긴다. 이때 파이토케미컬은 돌연변이 세포에 있는 악성 종양에 달라붙어 암세포의 성장을 차단하고 암세포를 스스로 죽게 만든다는 것. 홍 박사는 “가지의 항암효과는 브로콜리나 시금치보다 약 2배 정도 높다”고 말했다.

 특히 가지는 소화기 계통의 암 억제에 효과적이다. 홍 박사는 “가지의 영양분이 장 내부에 초콜릿처럼 덕지덕지 쌓인 기름기를 씻어내 대장암·위암·후두암 등 소화기 계통 암 발생을 20~30% 정도 낮춰준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로의 침범을 막아 전이의 위험성을 낮춘다. 가지를 가열해도 암 억제 효과는 그대로다. 홍 박사는 “가지는 가열한 뒤에도 80% 이상의 암 억제율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가지 항암 효과, 브로콜리·시금치의 2배”

세계적인 장수현으로 알려진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도 보라색 고구마와 가지를 즐겨 먹는다. 먹는 방식도 다양하다. 홍 박사는 “일본 사람은 둥근 가지는 생채나 샐러드용으로 먹고, 긴 것은 주로 절임용으로 먹는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튀김용·불고기용·생채용 등으로 자주 먹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지 수출국이지만 가지 소비량은 일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일본에서는 1인당 1년에 2㎏ 내외를 섭취하지만 우리나라는 100g 내외에 불과할 정도로 섭취량이 매우 낮다.

 이 때문에 홍 박사는 다양한 가지 요리 알리기에도 한창이다. 홍 박사는 “가지는 기름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식물성 기름이나 육류와 함께 먹으면 맛뿐 아니라 소화 흡수율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조리 방법을 바꿔 가며 다양한 요리로 먹을 것을 권한다. 국내에서는 가지나물이나 가지 무침 등 밥과 함께 먹는 밑반찬으로 가지를 활용하지만, 서양에서는 스테이크·파스타·라자냐 등에 가지를 곁들여 먹는다. 홍 박사는 “스테이크나 떡갈비를 먹을 때 가지를 구워 함께 먹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중국 요리처럼 각종 채소와 걸쭉한 소스를 곁들어 가지를 볶아 먹는 것도 권할 만하다. 가지로 김치를 담가 먹어도 좋다.

 가지를 고를 때도 요령이 있다. 홍 박사는 “전체적으로 팽팽하고 윤기가 돌고, 꼭지의 단면이 싱싱한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한 것은 꼭지에 있는 가시를 만지면 따끔하게 찌르는 느낌이 든다. 냉장보관을 해야 하지만 보관온도가 5도 이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파이토케미컬=빨강·노랑·초록·보라·흰색 등 채소와 과일의 색소에 들어 있는 식물 활성 영양소. 항산화 작용 및 발암물질을 해독하는 역할을 한다.
 


경매로 목욕탕 산 박사장이 미소짓는 이유는… 부동산 NewS & 상식

부동산에 대한 투자매력이 시장가 하락과 함께 점점 떨어져가고 있다.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 내는 일들이 바로 건물 용도의 재발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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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로 목욕탕 산 박사장이 미소짓는 이유는…

조선비즈 | 홍원상 기자 | 입력


2012.01.13 03:11


개인 사업을 하는 박모(52)씨는 요즘 경기도 고양에서 오피스(사무용 빌딩) 리모델링 공사를 한창 벌이고 있다. 다음 달 입주를 앞둔 이 건물은 작년 9월까지만 해도 목욕탕이었다.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 값에 관리·운영비가 늘면서 적자에 허덕이다 경매로 나온 물건을 박씨가 사들여 개조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박씨는 "목욕탕 운영은 요즘 다들 꺼리는 사업이어서 경매시장에서도 인기가 별로 없다"며 "하지만 건물 용도를 사무실·요양원 등으로 바꾸면 적지 않은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침체를 거듭하자 경매시장에서는 목욕탕을 비롯한 틈새 투자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경매 투자의 주류였던 일반 주택이나 토지는 낙찰가격(경매 물건의 감정가격 대비 낙찰가 비율)이 여전히 높은 데다 갈수록 가격이 내려가면서 투자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투자자들이 새 투자처를 찾아 나선 것.

목욕탕은 3~4달 전까지만 해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고유가에 따른 운영·관리비 부담에다 경기침체로 인해 고객 수도 줄었기 때문이다. 철거·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아 작년 9~10월에는 낙찰가율이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무실·요양원 등으로 개조해 재활용하는 등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8월 법원 경매에서 13억원에 팔린 서울의 한 목욕탕의 감정가격은 38억원. 여기에 약 10억원을 들여 지난달 리모델링 작업을 마친 이 건물의 현재 가치(시세)는 30억원대 후반. 경매투자전문업체 지지자산운용 나성균 팀장은 "목욕탕은 리모델링 등 추가비용을 감안해도 낙찰가격이 감정가의 절반 이하 수준이어서 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건물의 층간 높이도 높아 개조가 수월한 편"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도 최근 경매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대안 상품이다. 단지 내 상가는 도심이나 역세권 상가처럼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수퍼·미용실·세탁소 등 주거지 배후의 편의시설로 채워지기 때문에 경기 부침(浮沈)에 따른 소비 기복이 심하지 않고, 공실(空室) 위험도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욕탕을 비롯한 수익형 부동산에 무턱대고 투자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목욕탕시설은 건축법상 2종 근린생활시설이기 때문에 사무실로 바꾸려면 관할구청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낙찰받고 나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목욕탕 안에는 매점·이발소·구두수선·피부관리 등 개별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반 주택보다 채권자도 많아 이들의 담보 설정 등 권리관계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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