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저자 박경철의 일곱번째 책 '자기혁명' 두런두런 생각들

순수한 열정! 그 자체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매우 좋아하는 박경철원장과 나눈 글이다. 정리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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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는 해도 깃발은 못해… 난 구멍 난 난닝구니까"

출간한 지 1주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책 곳곳 인문학 심어 인문학 인용만 100권
책 한 권을 읽더라도 한 줄 남으면 좋은 책… 내년 키워드는 '위로와 격려'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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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전병근 기자 | 입력 2011.10.08 03:16 | 수정 2011.10.08 09:43 | 누가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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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혁명

박경철 지음 리더스북 400쪽 1만6000원

콘서트는 끝이 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조명 한가운데에 있다. 6일 인터뷰 중에도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려댔다. 그 때마다 그는 "죄송합니다"란 말을 면전의 기자에게, 그리고 수화기에 대고 반복했다. "드릴 말씀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모든 언론사에 똑같이 이렇게 답합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 [조선일보]



[조선일보]시골의사 박경철은 트위터 팔로어 수만 33만9000명이 넘는 영향력 1위의 파워블로거다.

하지만“나는 깃대는 될 수 있어도 깃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이게 요즘 일입니다" 하며 웃는다. 작은 눈이 감길 듯하다. 그 눈에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안철수 원장이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도전권'을 양보하던 날. 안 원장과 청춘콘서트로 돌풍을 일으킨 파트너였던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걸 두고도 온갖 억측이 돌더라.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니다. 안 원장으로서는 정말 힘든 기간이었다. 정치라는 게 권력게임을 즐기는 사람들한테야 흥미진진한 드라마였을 거다. 하지만 안 선생은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고 나는 하필 그때 곁에서 그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김미경 교수(안 원장 부인)보다 바깥 일은 내가 더 잘 알 거다. 그에 대한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아프게 했다. 그게 끝나니까 모든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눈물이 쏟아졌을 뿐이다."

약속대로 '책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로서는 일곱 번째 신간. 출간 전부터 예약판매 1위를 기록하더니 출간 1주만에 교보·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선두다.

"6년 전 지방 강연 중에 한 학생이 이러더라.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도 제가 좋은 대학을 가거나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선생님 말대로 살면 희망이 있을까요?' 듣는 순간 가슴이 콱 막혔다. 그 전까지 성인 상대로 경제 강연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과의 만남에 점점 끌렸다. 그러다가 2009년 여름 안 원장이 대담 토론을 제안했다. 이대에 모인 2000여 학생들 눈빛을 보니 그 때 고교생이 생각났다. 안 원장에게 즉흥 제안했다. 지방에도 기회를 주자고. 그때부터 주 3~4일 전국 순회가 시작됐다. 빡빡한 일정에 마지막 경북대에서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자발성이 뭔지 체험했다. 나비 효과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인력과 비용 거의 전부가 학생들 자원으로 이뤄졌다. 현장에서의 감응은 함께 있었던 사람들 아니면 모른다. 내 나이 마흔 여덟에 인생의 가장 뜨거운 삶을 살았다. 이 책은 그 때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자, 청년들의 눈빛을 담은 앨범이다.'

―그 와중에 책까지 쓸 시간이 있었나.

"1년여 전부터 강연 중 질문에 제대로 대답 못했던 것을 메모해 뒀다가 그날그날 밤에 써서 모은 글이 원고지 2500매, 지금 책 분량의 3배였다. 탈고하던 날 내 심신도 탈진 상태였다."

―20대를 겨냥한 책들로 우석훈의 '
88만원 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있었다. '기성세대의 벽'을 말할 때는 우석훈과 겹치고 '내 안의 혁명'을 처방하는 대목은 김 교수와 비슷하다. 좌파적 진단에 우파적 해법이랄까.

"나는 사실 인문학책을 겨냥했다. 자기계발서처럼 보이지만 곳곳에 인문학 코드를 부비트랩처럼 심어놨다. 가능하면 다른 분야에도 호기심을 가져보라는 취지다. 인용된 책만도 100권쯤 될 거다. 나는 사회 현상을 아주 비판적으로 분석하지만 해법은 점진적이다. 사회는 뒤집는 게 아니라 개선해 가는 것이다. 바꾸자는 쪽과 바꾸지 않으려는 쪽 사이 간극을 좁혀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합리적 보수' '합리적 중도' '중도 좌파' 여러가지로 불린다."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방송도 그만두고 약속된 일간지 칼럼 말고는 다 정리했다. 안동에 내려가서 자전거도 타고 딸 등교도 시키고
봉정사바람도 쐬러 갔다오곤 한다. 병원 일도 친구에게 맡긴 지 꽤 된다. 쉬면서 특별한 여행기를 구상 중이다. 책에서는 낯선 곳 여행하라고 하면서 정작 내가 못 했다. '체게바라의 눈으로 쿠바를 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눈으로 그리스를 보다' 그런 기행문?. 자료 모으고 공부하는 중이다."

체 게바라도 의학도 출신인데 남미 모터사이클 여행 끝에 쿠바 혁명주역이 된다. 안 원장이나 당신도 의사다. 안정된 직업에서 출발해 사회 문제에 눈떠가는 변화의 궤적이 비슷하다.

"나도 대학 때 별 생각 없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안에 초월성이 있다. 의사든 변호사든 사회의 주어진 틀 안에서 성실하게 사는 게 범용적 삶인데, 가슴 속엔 누구든 초월성이 잠재한다. 자기 분야에서 혁신을 거듭하면 대가가 된다. 그 분야 혁신 능력이 떨어지거나 권태감을 느꼈을 때 그냥 머무는 사람도 있지만 틀을 과감히 넘어서는 사람이 있다. 거기엔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있는데 내적 요인은 날 때부터 초월성이 강한 경우이고, 외적 요인은 사회나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그쪽으로 나가버리는 경우다. 내게는 인문학이 요인이었다.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다양한 인문학적 체험을 통해 현상을 비판적으로 파고드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내 삶을 '인 더 월드'(세상 속에서 균형잡고 사는 사람)로 규정한다. 많은 사람이 '포 더 월드'(세상을 위해 산다는 사람)를 자처한다. 나는 내 그릇을 알기 때문에 '인 더 월드'로 사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자각을 못 하면 그냥 '오브 더 월드'(생각 없이 세상의 일부로 사는 사람)로 살게 된다."

―이미 '포 더 월드' 쪽에 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토대나 깃대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깃발은 못 한다. 깃대에 찬란한 깃발이 걸려야지 걸레가 걸려서는 안된다. 멀리서 보면 깃발처럼 보이는데 구멍난 난닝구도 있다. 그런 부류가 되면 안된다는 걸 안다."

―자기혁명을 권하지 않았나.

"개인 혁명이란 삶의 방식과 태도의 틀을 깨고 넘어서는 것이다. 의과대생이었지만 경제를 공부했고 의사에서 경제평론가로 강연자로 변신했다. 남들이 보면 좌충우돌로 보이겠지만 나로서는 끊임없는 초월의 과정에 있었다. 반면 사회 혁명은 개인의 선택을 벗어나 사회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 시스템 전체가 함께 움직여질 때만 이뤄지는 것이다. 다양한 자기 혁명이 일어나면 그때 손과손을 잡는 연대가 생겨나고 사회를 바꾸는 혁명이 되는 것이다."

―트위터 팔로워 수만 33만9000명이 넘고 영향력으로는 1위다. 사회 변화에 활용할 생각이 안 드나?

"용도가 바뀌면 폐기된다. 빨래비누로 세수를 하면 안된다. 나는 내가 구멍난 난닝구란 걸 안다. 깃발이 될 수는 없다. 행주 정도밖에는 효용도가 없다."

―자기 역할을 뭐라고 생각하나?

"중간다리다. 글을 쓰고 방송을 하고 트위터도 하면서 오랫동안 대중을 봐왔다. 대중에 굉장히 민감하다. 내가 읽어낸 대중의 뜻을 '포 더 월드'로 살아가는 사람에 전달하는 역할은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한다. 브릿지가 아닌 다른 역할에서는 쓸모가 확 떨어질 것이다."

―투자 분석가 시절 '평균 움직임을 잘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 감각이 남다른 것 같다.

"사실 정의 열풍이 불기도 전에, 김영사 박은주 사장과 밥 먹으면서 '내년 키워드가 뭐겠느냐'길래 서슴없이
저스티스라 했다. 왜냐. 시대의 화두는 가장 부각된 게 아니라 그 시대의 결핍분이다. 샌델 책이 나오자 대박이 났다. 그 후에 박 사장과 밥을 먹는데 또 키워드 묻길래 '공정'이라고 했다. 정의를 떠들어봤지만 관념에 지나지 않고 실천적으로 공정한 룰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대통령까지 공정을 이야기했다. 얼마 전 한 시사잡지에서 오피니언 리더100명에게 내년 키워드를 물었는데 대개 복지라 했다. 나는 '위로와 격려'라 답했다. 공정은 쉽게 달성되지 않는다. 일정 정도 좌절하고 지치고 체념할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이런 게 대중읽기다."

―자신을 가학적 독서가라 부른 적이 있는데.

"고교 때부터 광적인 독서가다. 아내가 질환이라고 할 정도다. 요즘은
로마제국쇠망사를 다시 읽고 있다. 1년 내내 고전을 읽고 있다. 난 독서에 대한 강박이 있다. 독서는 나로 하여금 고민하게 하고 책을 펴고 덮을 때 내 삶이 달라져야 한다. 읽었다는 사실 자체는 의미가 없다. 한 권을 읽고 딱 한줄이라도 남으면 좋은 책이다."

―자기혁명은 그런 책인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누구를 수신자로 생각했나?

"고민하는 사람이다. 나이 세대 관계 없이. 고민이 없는 사람에겐 별로일 수 있다."

―새 책에서 '딱 한줄'을 꼽는다면?

"초월성이다."

―종교적으로 들린다.

"성실하진 않지만 가톨릭이다. 집안에서 성직자가 나왔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독실한 가톨릭이다. 하지만 종교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경찰로 일찍 순직한 아버지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많다. 집에서도 아버지 역할 생각해 졸아도 서재 의자에 앉아 존다고 했다. 등 뒤의 아버지 눈을 의식해 사는 삶이라고나 할까.

"
정신분석입장에서 보면 그런 강박이 있다. 부친이 48세, 올해 내 나이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돌아가시면 회한과 여한이 얼마나 많을까. 돌발적인 떠남에 대한 무의식 중의 공포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나는 여한, 회한을 가능한 한 덜 남겨야 한다는. 집사람이 끔찍히 싫어하는 건데 5년 전부터 매년 가족사진 찍고 뒷장에 애들한테 남기는 말 적는다. 건강한 건 아닌데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시골의사에서 인기 경제평론가로, 130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방송인으로, 강연자로 변신을 거듭했다. 언제가 가장 나답다고 생각하나.

"(한참 생각한 후) 올 여름 청춘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어 기분 좋다. 48년 살면서 가장 대가 없는 일에 가장 뜨겁게 가장 진지하게 살았다. 내 에너지 마지막 한방울까지 소진했다. 이건 도모하고 계획해서 되는 것 아니다. 나도 모르게 어떤 우연 속에서 흥이 나고 몰입돼야 가능한 일이다."

―요즘도 매일 쓰나.

"매일 수학 정석 한 페이지 푸는 것과 원고지 20-30매 쓰는 게 나를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틀이다. 지금 써놓은 것도 이미 책 한 권 분량이 있다. 삐딱한 시선으로 주류나 강단 경제학에 대해 야유하는 저잣거리 경제학 같은 건데. 이번 책에 이어 2편으로 낼까 하다가 독자한테 무성의한 것 같아 좀 더 다듬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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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1주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자기혁명'의 저자 박경철이 이야기 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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